핵무기 철거요청 10만 명 서명운동
88년의 4월이 되자 한청련과 한겨레는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조국에 있는 미국 핵무기 철거 요청 서명운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미국 시민들은 미군철수 문제를 핵무기 철거 문제보다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미군철수를 위한 서명에는 잘 응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먼저 핵무기 철거 서명운동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는 타민족 형제들과,우리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동포 운동 단체들도 함께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여 한국 지원연락망(KSN,KOM의 후신)에 제안하며 동의를 받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나 타민족 형제들과 동포운동가들은 자신이 없다며 상당히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목표를 10만 명으로 하되 1단계에서는 3만 명을 목표를 하고 그 성과를 본 후 2단계 서명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해서 동의를 받아 냈다.
동포들을 상대로 한 서명운동 경험은 있었지만 타민족 형제들을 상대로 한 서명운동은 처음이었다. 또 고작해야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본 경험밖에 없었다. 때문에 걱정도 되었지만 우리 회원들은 항시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고 결사적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해 88년 5월부터 89년 6월까지 14개월 동안 기어코 10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함께 한 타민족 형 제 운동가들과 동포운동가들이 받은 것까지 합하면 서명 총계는 11만 명이 넘었다. 우리 회원들이 서명을 받기 위해 쏟은 노력과 동원한 방법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정말로 값진 것이었다. 서명을 요청하면 보통 네 명 중 한 명 정도가 해주었다. 때문에 우리 회원들은 14개월 동안에 약 40만 명의 미국 시민들과 동포들을 접촉한 셈이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자동차로 다니고 밤에는 아예 보행자가 없기 때문에 직장 근무를 마친 회원들이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 낮에 시간이 있는 회원들도 사람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받아야 했기 때문에 서명접수 활동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회원들은 공연장,식료품 가게,행사장,대학 교정, 중고품 시장,공원,해수욕장 등지를 헤매고 다니며 서명을 받았다. 나성의 심인보 회원(현 한청련회장)은 야간에 대학 교정에 들어가 서명을 받다가 경찰에 쫓겨나자 오기로 어두운 대학 입구에 지켜 서서 밤늦도록 서명을 받는 등 이를 악물고 뛰어 다녔다. 그러더니 혼자서 4천 명의 서명을 받아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뉴욕 회원들은 공원에 나가 사물놀이를 한바탕하고 구경꾼들을 상대로 모자 대신 서명지를 돌리고 또 한바탕 치고 또 돌리고 하는 식으로 서명을 받기도 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어떤 회원은 해수욕장을 찾아가 수영복을 입고 앉거나 누워 쉬고 있는 해수욕객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았다. 모래 위에 유선형의 미사일과 버섯구름을 그린 후 “쾅광” 하고 외치고 나서 미사일과 버섯구름 위에 힘차게 X표를 친 후 서명용지와 볼펜을 내밀어 서명을 받았다. 회원들은 이렇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기어코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야 말았다.
우리들의 서명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는 사람들은 히스패닉 형제들이었다. 그 다음은 흑인 형제들, 그 다음은 백인 형제들 순이었다. 우리 동포들의 호응은 예상했던 대로 가장 적었다. 회원들은 못된 소수의 미국인 형제들이 서명을 거부하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고 손가락 고추를 치켜세우며 욕할 때보다 동포들이 공산당이니 뭐니 하며 욕할 때가 더 슬펐다고들 이야기했다. 어떤 만성,초특급,고성능,폭발성 및 악취성 설사에나 걸릴 못된 동포 유학생 하나는 대학교 교정에 들어가 타민족 형제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 우리 회원의 뒤를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NO SIGN!”을 외쳐 대기까지 했다. 여하튼 14개월 동안의 고생 끝에 받은 11만여 명의 서명지는 89년 7월 미주평화행진 때 행진대원들이 파란 보자기에 나눠 싸서 등에 짊어지고 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우리들의 절절한 마음과 함께 미국 의회에 전달했다. 그때 일부 못된 동포운동가들은 우리들의 서명지를 접수하기로 약속한 모 하원의원에게 우리들에 대한 모함과 중상을 하며 못 나가게 해 의원 대신 보좌관이 나와 받아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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