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 사실 윤한봉선배님에 대해서는 제 생각에는 여기 있는 해외동포들이 외람된 말씀인지 잘 모르겠지만 국내 계신 분들 보다 잘 알거 같아요. 왜냐면 저희는 그냥 무슨 행사나 조직 활동을 터서 된 게 아니라 활동과 생활을 같이 하면서. 일종의 공동체를. 마당집을 만드셔서 거기서 먹고 자고. 그니까 저희는 그분 말씀하시는 거 정치적인 역량 이런 것만 본게 아니라 생활로 운동하시는 거를 지켜보니까.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저희들이 윤한봉선배님 일생 사신 거 보면은 연령대가 저희랑 지내신 연령대가 어떻게 보면 가장 경험도 축적되신 상태에서 가장 정렬적이고 열정적으로 뛰실 수 있는 그런. 어떻게 보면은 제가 봤을 때 윤한봉선생님의 청춘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 뜻을 받들어서 일을 계속 하는데도 상당히 저희가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왜냐면 윤한봉선생님께서 망명생활 청산을 하시고. 사실 망명생활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그 망명생활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요. 망명생활은 보통 주는 느낌이 어디 조용한데 가갖고 숨어있고 유배되어 있고 그게 아니라. 엄청난 활동을 하시고 가신 거예요 여기서. 보통 그러니까 망명생활을 마치시고 국내에 들어가셨을 적에 기자회견할 때 딱 한마디 하셨잖아요. 뭐라 그러셨죠 그 때. 기자들 막 카메라 앞에서 나는 앞으로 광주를 명예로 생가하지 않고 멍에로 생각하고 지게꾼처럼 열심히 일하고. (소리 없음) 그렇게 생각 했거든요. 나는 윤한봉 선배님을 옆에서 뵀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다. 그걸 잊지 않고 살라고 그랬는데. 이제 돌아가시고 나니까 이게 정말 어떻게 보면 명예가 아니고 멍에구나. 저희가 뜻을 받들어서 어떻게 해 나갈 건가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붙이지만은 윤한봉 선배님은 저희 해외동포운동에 어제와 오늘이자 내일이에요. 왜 내일까지 얘기할 수 있냐면 ????운동화와 똥가방???? 보면은 쭉 흐름이 나옵니다만은 크게 보면은 두 가지 시기로 구분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첫 번째 시기는 제가 해외운동이라 규정을 해서 하는 시기가 있었구요. 해외운동이라는 것은 조국의 자주와 민주와 통일을 위한 운동을 호남은 호남지역에서 하고 영남은 영남지역운동 하듯이 우리는 해외에서. 그런 개념으로 조국의 자주와 민주와 통일을 위해서 일하는 운동. 처음 여기서 시작을 하신 거죠. 또 국제정세가 변화하고 또 조국정세가 변화하면서 윤한봉선배님이 한꺼번에 트신 게 아니라 쪼끔씩 쪼끔씩 바꿔나가신 거예요. 그래서 해외운동에서 해외동포운동으로 바꾸셨거든요. 지금의 운동은 해외동포로서, 물론 조국 이슈에도 평화 문제나 저희가 개입할 여지가 있으면 해야 하고 저희가 당연히 공헌할 여지가 있으면은 해야겠습니다만은 저희가 주로 일을 하는 이슈는 전부다 해외 동포들이 부닥치고 있는 여기 해외동포들의 권익 강화나 해외동포사회의 정치적 강화나 이런 부분에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1기는 해외운동이였고 2기는 해외동포운동으로 가는데 이 방향을 쭉 다 잡아주신 거예요. 우리 조직 만들 때 강령부터 시작해서 규약부터. 그분의 손길이 안 미친 데가 없죠. 청년학교, 민족학교에 걸려있는 교훈부터 시작해가지고 모든 게 그분이 디자인한 그대로 지금 됐는데. 어제 오늘이 확실하죠. 그분의 터치가 다 들어갔다는 게. 근데 왜 내일까지 얘기를 하느냐. 저희가 지금 인제 동포 사회 운동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 교육, 봉사, 문화 활동을 하는 단체로 잘 아시는 것처럼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 협의회도 만들어 놓고 각 지역의 청년학교, 민족학교 이런 기관들을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까. 아주 잘 운영이 되고 있죠. 그 기관들에 더해서 이제 조직이 따로 있었죠. 한청년, 한겨레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윤한봉 선배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저희가 상의를 드리고 했던 부분이 뭐냐면. 이 기관은 잘 돌아가고 있는데 조직을 어떻게 재편을 할 것인가. 앞으로 해외동포 운동을 담보할 수 있는 조직형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가지고 돌아가시기 한 서너 달 전에 새로 조직을 재편하는데 강령을 어떻게 만들지를 상의를 드렸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상의를 드리고 전화로 쫙. 저희들이 여기서 회의를 해서 초안을 만들어서 보냈거든요. 검토를 해주십사. 참 그런거 할 때마다 느끼는 게 이 컴퓨터 같잖아요. 이 논리력이 질서정연하잖습니까. 항상 뭐를 해도. 새로운 조직 만드는데 강령 만드는 부분을 마지막으로 상의를 드려서 그것도 지금 저희가 일은 다 못했죠. 지금 진척하고 있는 중인데. 새로 앞으로 출연할 조직의 얼개, 강령 뭐 이런 부분도 윤한봉선배님께서 다 해주신 거죠. 그러니까 해외동포운동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 윤한봉선배님이고 근데 참 중요한 거는 본인께서는 명망생활을 청산하시고, 청산이라니 표현이 잘못됐네요. 마감하시고 청산 절대 안하셨죠. 이미 그런 상황이 오실 것을 예견하시고 항상 이분은 뭐를 미리 준비하시는 분이잖아요. 본인이 정치상황이 이렇게 이렇게 풀리면 귀국할거란 걸 예상하시고 미리 다 준비를 했거든요 여기서도. 본인이 귀국하시고 나면 여기선 조직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지도부는 어떻게 구성을 할 것이며 그러니까 청산이라는 말은 말이 안 되죠. 그 때 국내 가셔서 나는 퇴비처럼 살겠다 그러셨는데 정말 해외동포사회에서는 퇴비죠. 왜냐면은 지금 해외동포사회에서는 윤한봉 존함 석자를 기억하는 일반 동포들 거의 없습니다. 왜냐면 옛날에 여기 계실 때도 한국에서도 아마 그러셨을 거 같은데 공식적인 직함 딱 하나 있었거든요. 민족학교 소사. 그거 이외에는 직함이 없으신 분이죠. 무슨 이사장 뭐 남 앞에 나서는 거는 다 우리가 하고 본인은 뒤에서 있으셨기 때문에. 지금 청년학교, 민족학교 기관 단체들은 동포들이 많이 알죠. 그리고 엄청나게 신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단적인 예로 최근에 미국 정부에서 노인들한테 주는 의료혜택 무슨 정책을 하나 바꿨어요. 엄청나게 복잡하게 바꿔버렸어요. 새로 신청서를 다 써야하는데 이거를 노인 분들이 못쓰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신청서 작성하는 대행을 민족학교에서 다 해드려요. 저희는 무료 봉사죠 전부다.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민족학교 찾아와서 우리가 다 신청대행 해주는데. 그거를 인제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신청 대행해주고 수수료를 받으시는 거죠. 동포사회에 있는데. 심지어는 사기꾼들이 등장을 했어요. 전화를 해가지고 대행을 해줄 테니까 얼마를 달라. 근데 이 사기꾼들이 노인 분들한테 연락을 해갖고 쭉 해서 돈을 갈취를 했는데 실제로는 신청 작성도 안 해주고. 그 사람들이 신문에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어디를 사칭했냐면 전부 민족학교를 사칭한 거예요. 그 신청서 대행을 해주는 기관이 민족학교 뿐만 아니라 다른데도 많거든요 LA에. 근데 왜 사기꾼들이 꼭 민족학교를 사칭했을까 그거죠. 그거는 그만큼 믿어주니까 민족학교를 사칭한 거잖아요. 그 정도로 민족학교, 청년학교, 미교협. 이름은 일반 동포들이 많이 아시고 그리고 동포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우리 이민자 권익 옹호, 정치력 강화하는 단체로 딱 자리를 잡았죠. 그렇지만 윤한봉 존함 석자를 아는 일반 동포들은 거의 없다는 거죠. 완전히 거름이 되신 거죠. 거름은 나무가 되고나면 안보이잖아요. 지금 딱 그렇게 되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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