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양편의 기성 운동권과 영사관, 교회까지 가세한 온갖 비방 속에서도 마당집 건립은 추진되었다. 1983년 새해 들어 코리아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40평짜리 건물을 세냈다. 꼭 필요한 책상과 의자만 준비하고 자잘한 비품과 생활도구는 이길주, 전진호, 문성철, 정선모 등이 자기 돈으로 사왔다. 김석만, 박무영, 장사한 등은 페인트칠을 해주었다.
현대 미국 한인사회 최초의 민족교육 기관이자 최초의 마당집이 될 민족학교 설립식은 1983년 2월 5일에 열렸다. 윤한봉이 도미한 지 1년 8개월, 준비한 지 세달 만이었다. 미국 정부에 비영리단체로 등록해 주정부와 연방정부로부터 세금을 면제받는 면세허가도 받아냈다. 치과의사 최진환을 이사장으로, 교장은 전진호가 맡았다. 홍기완은 다니고 있던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우고 불규칙한 목수 일로 돈을 벌면서 시간만 나면 학교로 출근했다. ‘바르게 살자, 뿌리를 알자, 굳세게 살자’
조국을 생각하는 의미로 교훈부터 순 한글로 지어 벽에 붙였는데 나중에 ‘더불어 살자’를 추가했다. 강당 벽에는 전봉준의 영정을 가운데 걸고 양쪽으로 장준하와 김구의 사진을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