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언행록

 
 
 
제목필라 한청련2018-12-22 15:33
작성자

예를 들어 필라델피아는 교민이 수천 명에 지나지 않고 영사관이나 한인촌도 따로 형성되지 않은 데다 유학생도 별로 없는 곳이었다. 세탁소를 하던 장광선, 목공으로 일하던 임용천 등 광주항쟁에 충격 받은 청년 몇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월간 <신동아>를 읽는 등 독서회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 윤한봉이 나타나 몇 달이나 체류하면서 한청련을 조직하게 된다. 그리고 곧바로 마당집 설립에 나서자 기성 운동권에서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장광선의 증언이다.

“어떤 지도자분을 찾아가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 과정에서 그 장광선이 그 근본도 없는 놈이 설친다, 이런 말을 하더라고 저한테 전해주는 거예요. 마당집을 세울 때에 선배들이 굉장히 걱정을 하신 거예요. 저한테도 걱정을 하시고. 느들 그 마당집 해가지고 어떻게 운영할라고 그러느냐, 우리가 그 마당집 필요성을 몰라서 안 한줄 아느냐, 한 달에 예를 들어서 렌트비가 이천 불 삼천 불 나가면 누가 감당할라고 그거 여느냐 걱정을 많이들 하셨어요. 그런 것 때문에 사실상 독립된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단체가 없었어요, 그 전까지는. 아무도.”

한청년 회원들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장광선은 본인의 세 동생부터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장맹단, 임용천, 이종국, 신경희, 정승진 등과 함께 모금을 위해 뛰어 다녔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