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다시 녹두서점에 모인 것은 계엄군이 철수하고 시민들이 도청 앞 분수대광장에서 궐기대회를 열 때였다. 정상용과 이양현도 녹두서점에 돌아온 사람 중 하나였다. 이들을 혹독하게 나무란 것은 보이지 않는 윤한봉의 목소리였다. 광주를 빠져나가기 위해 송정리까지 갔다가 돌아선 정상용은 훗날 이렇게 술회한다.
“막상 차를 타고 빠져나오려고 하니까 찹찹했어요. 우리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한봉 형이 했던 이야기가 많이 생각났어요. 이양현이랑 나랑은 이제 한봉 형이 연락이 안 되니까, 틀림없이 붙잡혔을 거다. 자, 한봉 형이 지금 이 현장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우리가 고민에 빠졌을 때, 한봉 형이 우리 정신적 지주였고 수장이었기 때문에, 한봉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민중들은 무기를 들고 현장에서 싸우는데, 우린 탈출해 나왔으니 비겁했다. 한봉 형이었다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이렇게 도망치다니, 나중에 우린 한봉 형한테 죽었다. 그런 이야기하면서 투쟁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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