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네는 큰방과 작은방이 나란히 붙은 작고 오래된 집으로 큰 방은 윤경자 부부가, 작은 방은 박기순이 쓰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 찾아온 윤한봉을 반갑게 맞이한 윤경자는 마침 이틀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지만 불을 따뜻하게 넣어둔 박기순의 방에서 자라고 했다. 그런데 자정이 막 넘어 박기순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박기순은 이날따라 몸살기운이 있음에도 들불야학 난로에 쓸 땔감을 줍기 위해 오후 내내 강학들과 손수레를 끌다 온 길이었다. 이날도 추운 들불야학 강의실에서 자려다가 따뜻한 방에서 몸을 녹여보려고 집에 들어온 것이었다. 윤한봉은 자기가 자려던 작은 방을 박기순에게 양보하고 큰방에서 동생 부부와 나란히 잤다. 다음날인 12월 26일 아침이었다. 윤경자가 일어나라고 아무리 문을 흔들어도 박기순은 기척이 없었다. 이상한 예감에 윤한봉이 문짝을 발로 차고 뛰어 들어가니 문을 향해 기어 나오려던 자세로 엎어져 의식이 없었다. 들춰 업고 미친 듯이 달려 병원에 갔으나 회생하지 못했다. 겨우 21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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