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황광우가 그 방에 따라간 이유는 윤한봉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방을 옮겨야했기 때문이었다. 문지방 옆의 청색 플라스틱 그릇에 편지지가 놓여있기에 꺼내 읽어보니 50여 항목의 살림도구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윤한봉의 재산목록이었다. ‘만년필, 손목시계, 팬티, 런닝구, 양말, 면도기, 손톱깎이, 고무신…’
어려서부터도 남에게 뭐든지 퍼주기를 좋아하던 윤한봉이었지만 무소유의 삶을 인생의 철학으로 삼은 것은 두 번째 옥살이에서 나온 얼마 뒤인 1978년 봄이었다. 고향 강진 집에 갔을 때 신 들렸다고 소문이 난 동네 선배 권영식이 위문을 왔기에 ‘동지’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니 ‘유무상통’이라는 한자성어를 써보이는 것이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는 진정한 동지애가 생길 수 없으니 정신적으로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서로 나눠야 동지가 된다는 뜻이었다. 크게 감동한 윤한봉은 권영식에게 큰절을 올리고 평생 유무상통의 정신으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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