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무릎까지 덮고도 쉴 새 없이 퍼부어댔지만 일행은 쉬지 않고 걸어 새벽 3시에 무등산 정상 입석대에 올랐다. 해가 뜨기에는 먼 새벽이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발과 영하의 매서운 칼바람에 얼어 죽을 지경이었다. 서로서로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도 하고 탈춤을 춘다고 잠시도 쉬지 않고 이리저리 뛰며 몸을 움직였다. 무슨 교회인지 한 떼의 젊은이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올라왔는데 등반 도중에도 연신 머리를 맞대고 기도하던 그네들은 정상에서도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구속자회는 그들과 떨어져 눈발 날리는 어두운 새벽하늘을 향해 외쳤다. “박정희 꺼져라!” “유신철폐!” “군부독재 타도!” 오랜만에 마음껏 소리쳐 보는 단어들이었다. 그렇게라도 울분을 토하지 않으면 못 견딜 시대였다. 일행의 마음을 상징하듯, 해가 뜰 시간이 되어도 세상은 밝아지지 않았다. 눈은 그쳤으나 먹구름에 뒤덮인 하늘은 좀처럼 맑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모두들 가슴 속에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그 희망대로, 무등산의 새해맞이 등산은 해마다 열렸는데 갈수록 참가자가 늘어 1979년에는 2백 명이 넘게 참가한다. 윤한봉은 이들을 ‘민주가족’이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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