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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세월의 의미--윤한봉 자작시2018-12-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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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권행의 말대로 윤한봉 안에는 시인이 들어있었다. 시대상황이 아니었다면 풍요로운 강진 땅에서 목장을 하며 바다와 산을 시로 그렸을 사람이었다. 개인적 사색에 빠질 마음의 여유가 없이 바쁜 생애 중에도 그는 고통스럽게 살다 간 이 땅의 민초들을 그린 여러 편의 썩 훌륭한 시를 남긴다. 미국에서 쓴 ‘세월의 의미’라는 시도 그 중 하나다.

 

“세월의 의미”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서산마루의 지는 해에서 보다는

동산 능선의 떠오르는 해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위풍당당한 낙락장송에서 보다는

사태 진 산기슭 향토에 뿌리내린 어린 소나무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벌판을 흐르는 강물의 도도함에서 보다는

골짜기 시냇물의 촐랑거림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의젓한 장닭의 낭랑한 울음소리에서 보다는

앙증스러운 병아리의 삐약거림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근엄한 할아버지의 새하얀 머리칼에서 보다는

수염을 만지며 키득거리는 손자의 솜털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고개 숙인 채 바람 따라 흔들리는 이삭에서 보다는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당돌한 봄의 새싹들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강심에 버티고 앉은 큰 바위의 이끼에서 보다는

그 곁을 역류하는 작은 물고기의 꼬리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검푸른 왕죽의 오만한 단단함에서 보다는

굳은 땅을 밀고 솟는 여린 죽순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흐르듯 날아가는 어미 새의 날개 짓에서 보다는

안간힘으로 퍼덕이는 아기 새의 날개 죽지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때 묻은 어른들의 몽롱한 눈빛에서 보다는

초롱초롱한 어린이들의 눈망울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안정된 어미 소의 발걸음에서 보다는

뒤뚱대는 송아지의 불안한 발걸음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야트막한 옛무덤의 정적에서 보다는

무덤 위에서 뛰노는 소년들의 고함소리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현모양처’ 호소하는 어머니의 눈물에서 보다는

면회 온 어머니를 위로하는 딸의 그윽한 눈빛에서 찾자

 

세월의 의미를 우리들은

핏줄을 등진 사람들의 표독한 눈빛에서 보다는

하나라고 외치는 민중의 결연한 눈빛에서 찾자

 

닳고 닳은 지식인들의 혀끝에서 보다는

역사의 주인으로 일어선 민중들의 꽉 다문 입술에서 찾자

 

그렇다!

 

우리들은 세월의 의미를

장구한 세월 쉬지 않고

온몸을 암벽에 부딪쳐대는 파도의 줄기참에서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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