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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42-타락한 사회2019-01-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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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충격

 

12년 만에 돌아온 조국에서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온 사회에 에너지가 꽉 차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에너지는 기분 좋은 에너지가 아니라 무언가 어지럽고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에너지였다. 나는 그 에너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 끝에 1년이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그 에너지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것은 부질서와 혼란 속의 탐욕과 경쟁에서 방출되는 에너지였다.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일당에 의해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앞세운 경제제일주의 정책, 

경제성장 정책은 정권이 몇 차례 바뀌고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세계 일류’로 구호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그 30년 동안에 우리나라는 수많은 노동자,농민, 빈민,여성,운동가들의 피눈물과 자연 환경의 오염과 파괴를 

대가로 해서 그리고 90년대부터는 가난한 나라들의 환경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의 피눈물까지 짜온 덕분에 눈부신 경제 성장을 

계속해서 이제는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내세울 만큼의 경제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30년간을 죽자 살자 돈 벌기에만 매달려 온,그리고 매달린 만큼 성과를 거둔 우리 국민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조급 해졌고 

극성스러워졌고 탐욕스러워졌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되었고 부패 타락하게 되었다. 또한 그렇게 30년을 살다 보니 탐욕과 경쟁은 이 나라의 문화로 정착되었고 돈은 최고의 가치와 목표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귀국 후 나는 변화된 조국 사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엄청나게 돈이 많은 사회,그러나 정신도 혼도 원칙도 질서도 없고 

꿈과 감동도 없는 사회,악독하고 살벌한 사회,허세와 과시와 쾌락이 넘치는 사회…

사람의 생명은 별것이 아닌 사회가 되어 버렸다. 우리들은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위험에 빠졌을 때 남의 도움을 청하는 

최선의 방법은 “사람 살려 !” 하고 외치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요즈음 주택가에서 폭행당하는 사람 아무리 “사람 살려!”하고 외쳐도,성폭행 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이 그 현장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사람 살려 !”하고 외쳐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세상,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있어도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사람의 흩어진 돈만 주워 가 버리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남의 목숨,남의 고통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국회는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 준 사람에게는 도움 을 받은 사람 또는 그 보호자가 재산의 10분의 1을 주어야 한다’ 와 같은 

내용의 법을 만들고, 국민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 살려!” 대신 자신의 재산 정도에 따라 “1억 벌어!”,이천만 원 벌어!”라고

 자연스럽게 외칠 수 있도록 평소에 연습을 부지런히 하고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위기에 처한 사람이 다급한 김에 너무 큰 액수의 돈을 벌라고 외치면 너도나도 돈 벌려고 우르르 몰려드는 소동이 벌어지게 되고 

그런 소동 속에서 밟혀 죽는 사람,물에 빠져 죽는 사람,차에 치어 죽는 사람도 가끔 나오고 서로 먼저 구하려고치고 박고 찌르고  

조르는 폭행 사건과 살인 사건도 자주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했던 사람은 그런 광경을 보 고 사람들이 자신을 서로 먼저 

구하기 위해 다투는 것으로 착각하여 생애 최초,최대,최후의 큰 감동을 안고 성폭행을 당하 거나 숨을 거두게 되겠지만….


무서운 경쟁 사회가 되어 버렸다. 문화와 정신은 도외시한 채 제한된 부와 권력과 명예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한도 끝도 없이 

경쟁하는 사회,그것도 최고와 일류와 일등을 목표로 한 무한 경쟁,극한 경쟁을 시도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더불어 살 줄도 모르고 자족할 줄도 모르고 참다운 긍지도 모르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TV에서 “당신의 경쟁 상대는 어느 나라의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동시에 그런 미친 경쟁 무모한 경쟁을 세계화니 국제화니 하며 조장하는 정부와 재벌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악독한 사회, 살벌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기는커녕 도리어 짓밟아 버리는 소름끼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돈 좀 벌어보려고 온 가난한 타민족 노동자들이나 중국 동포들에게 하는 짓들을 전해들을 때마다,

피눈물 속에서 이를 갈며 살아가는 그 분들,한을 품고 진저리를 치며 돌아가는 그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때마다 

나는 부끄러 웠고 괴로웠다. 그리고 조국이 무서워졌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돈 벌기 위해 불법 체류하고 있는 우리 동포들도

이렇게까지 악독한 취급은 당하지 않는데...


도덕적 타락과 무질서와 환경 파괴와 오염은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충격적인 사건이 터질 때를 빼고는 모두들 

잊고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장애인들은 날아다니는 초인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지상에는 그들의 불편을 

고려한 시설과 배려가 거의 없었다.

꿈과 감동이 없어져 버렸다.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꿈과 감동이 많아야 할 청소년들에게도 그것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세탁기 속의 빨래처럼, 자동차 바퀴 속의 공기처럼 학교 공부와 과외 공부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 청소년들에게 꿈이나 감동이 

있을 턱이 없다. 풍요와 쾌락의 삶이 그들의 꿈이고 유명 연예인,유명 선수를 향한 환호와 괴성이 그들의 감동이었다.


모든 평가가 원칙적이지 않고 비교적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옷이 없다.’면서 ‘작은 부정,작은 범죄는 큰 부정,큰 범죄 앞에서 상대적으로 도덕적이고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에게 원리 원칙을 말했다가는 적대적,냉소적 반발을 당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물이 너무 썩어서 맑은 물에서 사는 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흐린 물에서도 잘 사는 고기들마저 죽어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 하느냐’ 고 따졌다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놈,한심한 놈,이상한 놈 취급을 당한다.,


거의 모두가 들떠 있고 조급해 있었다. 장기적 안목과 안정과 여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두들 오줌 맞은 개미떼 같이 갈피를 못 잡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거의 모두가 ‘날 좀 보소’ 체질로 변해 버렸다. 정신적 허무와 황폐를 감추기 위한 사치 허영 허세 과시가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심해져 버렸다. 거의 모두가 ‘돈만 벌어’ 체질, ‘놀고 보세’ 체질로 변해 버렸다. 돈과 쾌락이 최고의 가치,

영원한 가치가 되어 버렸고 가난은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거의 모두가 ‘나 혼자만이’ 체질로 변해 버렸다. 

모두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최고의 가치,영원한 가치가 되어 버려서 우직하면서도 성실하고 신의 있는, 

그래서 남 괴롭힐 줄 모르는 곰바우는 만나 보기가 어려웠다.


모든 인간관계가 이해관계로 변해 버렸다. ‘선하고 훌륭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은 ‘가까이 해야 할 사람’으로 분류하여 

쓰다듬거나 꼬리 치고,자기에게 필요한 사람은 ‘이용해야 할 도구’로 분류하여 틈틈이 챙기거나 관리하고,자기에게 이익이 안 되는 사람은 ‘영양가 없는 식품’으로 분류하여 외면하거나 멀리하고,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사람은 ‘제거해야 할 악당’으로 분류하여

중상 모략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나는 72년부터 조국의 정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운동을 해 왔다. 사회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2년 만에 돌아와 보니 조국의 사회 문제는 정치 문제 뺨칠 만큼 심각해져 있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악독해지고 타락해 버렸을까? 나는 귀국 후 1년 정도가 지나서야 80년대 말부터 조국을 방문하고 오거나,

영구 귀국할 목적으로 조국에 나갔다가 못 살고 다시 나와 버린 재미동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했던 말들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무서운 사회가 되었어.”

“사람 살 곳이 못돼.”

“사람들이 다 변해 버렸다니까.”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져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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