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들 형편없는 촌놈인 내가 어떻게 하다 미국까지 가서 만 12년 2개월을 살다 오게 되었는데 나의 12년 생활이라는 것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산 것이 아니라 운동에서 시작하여 운동으로 끝난 생활이었다. 때문에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생활에 얽힌 이야기는 거의 없고 운동가의 눈으로 본 미국,운동하면서 느낀 미국 이야기밖에 없다. 물론 내가 12년 동안 미국의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닌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사 다니며 살았던 것이 아니고 운동 일로 그때그때 방문하는 형식으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 또한 없다. 게다가 내가 많이 돌아다녔다고 해도 한대 온대 열대의 기후를 다 가지고 있고 남부조국보다 95배나 넓고 남. 북부조국 전체보다는 42배나 넓은 땅을 가진 미국, 설원과 사막과 늪지대와 대평원과 광활한 황무지와 거대한 산맥과 호수가 있는 미국의 여기저기에 점을 찍고 그 점들 사이에 선을 그어 잇는 식으로 돌아다녔을 뿐이다. 인구밀도는 남부조국(443명)의 20분의 1밖에 안 되는 1평방 킬로미터당 22명이지만 세계 인구의 4%가 넘는 2억 6천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58개 인종 집단이 뒤섞여 살고 있고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과 정보력과 기술력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러시아의 시베리아가 제대로 개발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존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미국 사회를 나는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보았을 뿐이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야기를 정확히 할 자격도 자신도 없다. 그러나 12년 동안 미국에서 운동하고 살면서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쓰기는 쓰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명암이 교차하는 미국 사회의 일면을 요약해서 써 보겠다.
미국의 공중 화장실 미국의 공중 화장실은 문 밑이 터져 있어서 속에 앉아 일을 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신발이 다 보인다. 들어가 앉아 보면 양 옆 칸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의 발목 위까지 다 보이도록 칸막이 밑도 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칸막이 위도 천장과 많이 떨어져 있다. 은밀하게 홀로 앉아 마음 편하게 일을 보기는 애초부터 틀린 화장실이다. 화장실이 왜 그 모양인지 물어보니 화장실 안에서 마약 거래 강도 강간 사건들이 자꾸 발생하니까 범죄 예방을 위해 밖에서나 옆 칸에서 봤을 때 한 칸 안에 발이 3개 이상 있으면 금방 알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변기 위로 올라가 있으면 발이 두 개만 보일 것 아냐?” “그래서 칸막이 위도 그렇게 터놓았지. 변기에 올라서면 머리가 보이도록.” “변기 위에 올라가 쭈그리고 앉으면?” “그것까지는 발견할 수 없겠지. 젠장,어린애들처럼 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묻고 있네.”
미국의 몇 개 도시에서는 일부 우범지대의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마약거래 강도 성폭행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자 전화통이 걸려 있는 벽 하나만 남겨 놓고는 아예 박스를 없애 버렸다. LA시에서는 가끔 경찰들이 일부 우범 구역을 봉쇄해 놓고 그 구역 거주자나 방문자에 한해 신분을 확인한 후 통과시킨다. 마약 거래 등의 범죄 행위가 빈발해서 그렇다며 심할 때는 2〜3개월간을 그렇게 봉쇄시켜 놓는다. 이해가 안 돼 이리저리 물어보니 대답이 이랬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봉쇄해 놓으면 그 구역의 범죄도 줄고 범죄자들에게 큰 타격을 준다. 범죄자들이 새로운 사업 구역이나 거래처를 만들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AIDS 미국이 에이즈의 확산 때문에 온통 시끄러울 때 고교생들에게 콘돔을 나누어 주고 마약중독자들에게 남이 쓴 주사기를 쓰지 말라며 새 주사기를 나눠주는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신부나 수녀들도 끼어있었다. 또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자 마약 거래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이 한쪽에서 일어났다. 마약 판매를 합법화해서 마약 밀거래에 따른 범죄를 줄이고 거기에서 거둔 세금으로 예방 교육,중독자 치료 및 재활 교육을 시키자는 주장이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판사들을 비롯한 공직자들도 들어 있었다. 이해가 안 돼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에게 미국 생활을 굉장히 오래 하신 어느 동포 한 분이 이렇게 말해 주었다. “운동한다는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너무 추상적 구조적 정치적으로만 보고 해결도 근본적으로만 하려고 합니다. 대중의 삶과 직결된 구체적인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개탄만 하고 그러한 문제들을 부분적으로라도 해결해서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개량이니 미봉이니 ‘언 발에 오줌 누기’니 하며 비웃기만 합니다. 대증요법도 필요하고 아무리 돌아서 다니라고 해도 사람들이 마냥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니면 잔디밭에 길을 내주는 지혜도 필요한 것 아닙니까?”
노조도 비즈니스다 미국의 노조연합체인 AFL-CIO에는 전국적인 직업별 산업 별 노조 100여 개가 가입해 있고 산하에 6만 개의 지역노조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식품 및 서비스 노조 집행부가 활동을 잘해서 다른 지역보다 조합원들의 권익 증진을 잘 해주자 다른 지역노조에 속한 동일 업종 노조들이 샌프란시스코의 그 노조로 소속을 옮겨 조합비를 거기에 내고 심지어 LA 지역의 일부 공무원 노조도 샌프란시스코 지역 식품 및 서비스 노조로 소속을 옮겨갔다. 놀란 내가 공무원 노조에 소속된 한 분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업종이고 지역이고 따져서 뭘 합니까? 조합원들에게 이익만 많이 돌아오면 되지요.” “그러면 소속 노조를 잃은 지역 또는 업종 노조는 가만히 있어요?” “자기들이 잘하면 왜 소속 노조가 이탈하겠습니까,노조도 비즈니스죠. 집행부가 비즈니스를 잘하면 가입 노조가 늘어나고 못하면 줄어드는 겁니다. 경쟁이니까요.”
희한한 직업들 미국에는 별의별 직업들이 다 있다. 어느 동포 한 분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얄미운 한 사람을 혼내주기 위해 밤에 LA공항 부근의 해변가로 찾아가 청부폭력배들을 만났다. 그 동포도 이들을 소문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동포를 밴(Van) 자동차로 안내했다. 차 안에는 사람의 신체 부위가 그려진 인체도와 달력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들은 동포에게 혼내 줄 사람의 사진과 이름과 주소를 받은 다음 주먹과 야구 방망이 곤봉 칼 등이 그려진 종이를 꺼내서 인체도 옆에 붙여놓고 가격 흥정을 하는 것이었다. “얼마 동안 병원 신세를 지도록 해줄까요?” “어느 연장을 사용할까요?” “어느 부위를 때려줄까요 아니면 찔러줄까요?”
이렇게 물은 다음 계산기로 해당 부위 기간을 따져 계산한 후 현찰을 받고는 타고 간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정중히 안내했다. 그 후 동포는 계약 기간인 약 한 달 동안 그 얄미운 사람이 병원에 앓아누워 있다는 소식만 듣고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 자식들 신용도 좋고 비즈니스 감각도 뛰어난 놈들이더구먼. 그림과 달력을 가지고 다니니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금방 거래할 수 있겠더라고.”
백인 주류사회에서 미국 생활을 오래 한 일부 동포들이나 타 민족 형제들과 우리 조국의 현실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나는 ‘굉장히 많은’ 구속자, ‘심각한 수준’의 산업재해,‘엄청난’ 피해,‘대다수’가 반대,‘형편없는’ 저임금,‘눈뜨고 못 볼 정도’의 빈곤,‘절대적인’ 영향력,‘극심한’ 빈부격차, ‘강력한’ 탄압 등의 표현들을 썼었다. 그러면 그들은 곧바로 이런 식으로 질문과 요구를 해왔다.
“몇 퍼센트나 되는가? 몇 명이나 되는가? 정확한 액수는 얼마인가? 구체적인 숫자를 말해 달라. 구체적인 내용을 이야기 해 달라.”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해서 쩔쩔매곤 했다. 그런 난처한 경우를 두세 번 겪고 난 뒤부터 나는 신문 잡지 등을 볼 때마다 통계 자료들을 열심히 오려 모아서 외운 후 가방에 담고 다녔다. 나중에는 남들과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문학적 표현을 쓰면 나도 답답함을 느껴 과학적 수치를 말해달라고 부탁할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나는 미국인들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놀랐고 또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무엇이든 불편하면 연구해서 개조 개선을 한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무엇이든 연구해서 기어코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다. 미국 생활 2년 정도하고 나서부터 나는 ‘미국은 없는 것이 없는 나라,필요한 것은 다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무슨 일을 하다가 이러저러한 물품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날 때마다 무조건 회원들에게 그러한 물품을 구해오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회원들은 그런 물품을 본 적이 없다며 어디 가서 구하느냐고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큰소리를 쳤다. “미국에는 없는 것이 없어. 필요한 것은 다 있는 나라야. 여기저기 알아봐.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항시 내 말이 맞는 걸로 판정이 났다.
미국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못하는 짓거리가 없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분노와 환상과 은밀한 욕구와 잠재된 욕망까지도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에는 노조를 와해시켜주는 회사,세뇌된 사람 역세뇌 시켜주는 회사,음란한 소리를 들려주는 회사,황당무계한 거짓기사만 싣는 신문사,얄미운 사람에게 골탕을 먹이고 싶은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냄새나는 양말이나 시든 꽃이나 죽은 바퀴벌레나 베어 먹다 남은 과일 따위를 소포로 대신 보내주는 회사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각종 쇼를 연출해 주는 회사도 있었다. 가령 자기 애인 앞에서 유명스타 행세를 한 번 해보고 싶은 고객이 그 회사에 의뢰를 하면 회사는 그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공항에 도착한 고객이 비행기에서 내려 마중나온 애인과 만나는 순간부터 미녀 오빠부대가 괴성과 환호성을 지르며 싸인 공세를 하고, 가짜 기자들은 TV 카메라를 돌리거나 수첩을 들고 인터뷰 요청을 하며 쫓아다닌다. 그리고 건장한 가짜 경호원들이 양 옆에서 줄지어 호위하고 기다란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다가 고객이 애인과 함께 공항 밖으로 나오면 정장을 한 운전기사가 정중히 문을 열어준다. 리무진이 호텔로 출발하면 영화에서처럼 동원된 오빠부대와 경호원들과 기자들이 10여 미터 정도를 쫓아가 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가짜 영어신문을 만들어 주는 별 희한한 사업이나 직업들도 있었다. 개똥이가 부모 따라 관광유원지를 갔다. 한 가게에서 신문을 진열해 놓고 팔고 있었다. 그 가게는 그냥 신문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신문기사와 사진을 만들어 판다. 부모는 꼬마 개똥이를 유명한 천재소년으로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가게에 돈을 내고 신청하면 가게 점원은 개똥이 사진을 찍고 ‘개똥이 라는 천재소년이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는 따위의 그럴 듯한 기사를 써서 다른 일반 신문기사들 사이의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해 진열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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