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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1-마당집을 만들다2019-01-0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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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의 마당집 설립


처음 계획했던 대로 나는 각 지역에 한청련이 만들어질 때마 다 가능한 한 뜻을 같이 하는 그 지역 동포 선배들과 함께 LA 의 민족학교와 같은 마당집들을 설립하여 그 마당집을 근거 삼아 활동하도록 했다.

각 지역 한청련은 운동경험도 없고 의식수준도 낮고 결성된 지도 얼마 안 돼 역량이 취약했다. 하지만 나는 학습과 실천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론과 IA 민족학교 성공 경험을 강조하며 한청련 회원들에게 마당집 설립을 적극 종용했다. LA 민족학교를 설립할 때와 마찬가지로, 밤잠을 안자고 몸소 연장을 들 고 뚝딱거렸다. 비품을 기증받거나 주워 나르고 도서 자료를 수집하는 등의 노력을 해서 차례차례 마당집을 설립해 나갔다.

민족학교와 마찬가지로,각 지역 마당집은 이사진을 구성할 때 그 지역의 뜻을 함께 하는 선배들을 많이 추대하고 한청련 회원은 몇 명만 이사가 되었다. 그리고 원장 또는 총무나 실무자는 한청련 회원이 맡았다. 나머지 한청련 회원들은 마당집의 자원봉사자가 되었다. 워싱턴 DC를 제외한 각 지역 마당집도 비영리단체로 등록하고 면세 허가를 받았다. 마당집의 상근자 들은 민족학교에서처럼 무보수로 일하고 숙식은 마당집에서 해결했다.


LA의 민족학교,산호세의 민족교육봉사원, 뉴욕의 청년학교, 필라델피아의 청년마당집,시카고의 한인교육문화마당집,토론토의 민족교육문화원,워싱턴 DC의 코리아 홍보교육원의 상근자 10여 명은 학업을 중단하거나 직장을 포기한 남녀 회원들이었다. 그 회원들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동안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성실하게 일해 주위 동포들을 경탄하게 만들었다. 각 지역 마당집은 설립 초기의 어려움을 의지와 땀으로 극복하고 서서히 동포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각종 도서와 자료 수집도 LA 민족학교처럼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모았다. 제일 적은 곳이 1500여 권의 도서 와 300여 종의 자료를 모았고 제일 많은 민족학교는 3500권의 도서와 1500여 종의 자료를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도서 자료들 은 학습용으로도 쓰고 일반 동포들에게도 무료 대출했다.


교육활동으로는 정기적으로 매월 2회에서 4회 정도의 학습을 꾸준히 해나갔다. 가끔 특별강좌나 좌담회를 열었으며 여름 방학을 이용해 여름학교와 같은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봉사활동은 지역 실정에 따라 무료 세금보고서 작성,무료법률 상담,노동 상담,노인봉사,무료 번역통역 등의 일을 꾸준히 해나갔다. 재정은 회원들과 일반 동포들의 기부금으로 대 부분 충당하고 한청련과 함께 각종 수익사업을 벌여 부족분을 메워 나갔다.

상근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식사 문제는 회원들과 동포들이 기증한 음식물로 해결했고 옷 문제는 판매용 헌옷들 속에서 골라 입어 해결했다. 각 지역 마당집들은 94년에 ‘미주 한인봉사 교육단체협의회’를 결성해서 전국적 차원의 연합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95년에는 동포들과 다른 이민 소수민족들의 반이민법 제 정 저지투쟁을 조직,주도하여 동포사회와 다른 소수민족들로 부터 커다란 신뢰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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