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언행록

 
 
 
제목41-그리운 사람2019-01-0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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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그리운 사람 


윤한봉은 귀국 이후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진보정당은 아직도 갈 길이 멀고, 고대했던 대동세상은 문턱도 밟지 못했다. 뜻은 변함이 없으나 뜻을 이룰 힘이 더 이상 없다. 어이할 것인가?
윤한봉의 오열 속에는 이역만리 건너와 고생했던 젊은 시절과 뜻을 이루지 못한 귀국 후의 아픈 현실이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꿈을 안고 귀국했으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의심과 경계, 비방과 중상, 무고와 음해였다.

 많은 사람들이 합수 형에게 조언을 했어요. 지금 판이 복잡하니까 일 년만 지켜보십시오. 이 얘기를 내가 간곡하게 했어요. 솔직히 말해 DJ가 형의 귀국을 굉장히 싫어했어요. “정형. 윤한봉 선생이 들어오면 우리한테 도움이 안 된다”고. 정말 한봉 형은 청장년을 아울러 존경받는 유일한 선배였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으니 윤한봉의 삶은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윤한봉의 삶은 실패했다고치자. 하지만 그의 벗들이 촌놈 합수를 진실로 그리워하고 있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홍희담-그를 마지막 본 것은 무균실에서였다. 들고 나는 숨이 끝난 그의 얼굴은 투명하고 평화로웠다. 모포 밖으로 그의 손이 삐죽이 나와 있었다.육체가 영혼이 되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형상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걸은 적이 있었기에 이 행성은 아름답다.

최권행-그 사람 안에는 시인이 있다. 시적 열정과 구수한 달변, 역사에 대한 통찰은 그의 전생이 아마도 호머 비슷한 음유시인이지 않았을까 생각케 한다.

김희택-나는 그를 만나서 청년운동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으니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를 만난 것은 나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건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그의 눈에서 뿜어 나오던 광채. 그것은 진실 그 자체였다.

최동현-마침내 81년 4월 27일 밀항 출정식 참가자들이 마산에 모였다. 윤한봉은 죽을 각오로 투쟁하겠다고 했다. 미국 망명이 국내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한국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데 작은 밀알이 될 수 있다면 온 몸을 바쳐 투쟁하겠다.”며 결의를 밝혔다.

문규현-결코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가슴과 행위가 투명하게 일치하는 사람,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사람,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울 만큼 열정으로 넘쳐나던 사람. 자신이 꾸리던 ‘민족학교’ 뒤편에 텃밭을 일궈 상추 고추 무 호박 등 채소를 직접 키워먹던 윤한봉, 광주 망월동의 흙을 모셔두고 있던 윤한봉의 모습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길주-“그놈의 담배!” 이 말은, 지금도 어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꽁초를 숨기듯 잡고 있을 그를 만나면 내가 할 소리다. 그는 역시 여전히 고개를 이리로 저리로 틀며 비시시 웃기만 할 거다. 그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언젠가 내 인생을 뒤돌아볼 때 부끄럼 없는 미소 지우며 눈감을 수 있게 해 준 사람이다.


김수곤-합수 선생은 해월 최시형 선생 같은 분이었다. 두 분 다 쫓기는 몸이 되어 떠돌며 숨어 살았다. 여차하면 뛰어야 했던 해월 선생의 소지품이 ‘보따리와 짚신 꾸러미’였듯이 합수 윤한봉이 지닌 유일한 재산은 “운동화와 똥가방”이었다.

최용탁-한청련은 실로 놀라운 단체였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헌신성이었다. 그들은 늘 ‘조국에서 피를 흘릴 때 우리는 열 배 스무 배로 땀을 흘리자’, ‘뺀들바우가 아닌 곰바우가 되자’는 말을 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록 다투어 몸을 던졌다.

조진태-선배님의 재단 설립에 대한 마음가짐은 고스란히 설립 선언문에 담겨있다. 지금 읽어보아도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고 비장했는지 짐작된다."5월은 명예가 아니고 멍에이며, 채권이 아니고 채무이며, 희생이고 봉사입니다. “

이강-1998년 내 막내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합수는 “엄마도 없는 어려운 조건에서 착실하게 성장하고 공부도 잘 했구나!”고 말하면서, 등록금에 보태라고 무려 100만원을 주면서 아이의 사기를 살려주었다.

강완모-살아있는 예수, 한국의 레닌 그는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평생 사익이라곤 추구하지 않은 사람, 오직 헌신하길 즐거워했던 사람, 촌놈의순결한 영혼을 간직한 이 사람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못다 이룬 윤한봉의 꿈, 이제 살아남은 자들이 맡자. 김남주의 전사2는 선배의 영정에 드린 만사輓詞였나 보다.


오늘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 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한 방울 한 방울의 피는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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