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새로운 노선
윤한봉은 한청련 운동 10년 만에 중대한 노선 변경을 고민한다. 1992년 10월한청련은 ‘해외운동 강화와 발전을 위한 해외동포대회’라는 주제로 10월 대회를 개최했다. 10월 대회에는 150여 명이 참석했다. 윤한봉은 변화된 내외 정세를 보고했다. 혁명의 시대는 갔다. 북부 조국이 UN에 가입한 것은 통일보다는 체제 유지가 급선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 통일은 장기적 과제가 되었다. 통일운동은 이제 평화군축운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자본주의 미국과 공산주의 소련이 대결하던 냉전시대는 끝났다. 윤한봉은 지금까지 주력해온 민족통일운동에서 벗어나 이제는 미국 내 동포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일에 힘을 쏟자고 역설했다. 그는 10월 대회에서 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장기적 안목을 갖자. 운동과 생활을 통일시켜 나가자. 모든 회원은 생활 속에서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살아가야 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큰 사업가로 성장하고,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가 되자. 학업을 중단했던 사람들은 학교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하자. 지금까지 운동을 위해 가족을 떠났다면, 앞으로는 가족에게 돌아가 성실한 생활인이 되자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선 운동가의 원칙과 학습태도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운동의 생활화와 꾸준한 학습은 늘 강조해온 한청련의 지침이었다. 그런데 이제 집에 돌아가고, 학교와 직장에 돌아가, 일상의 삶을 사는 조건에선 예전보다 더 치열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노선의 변화는 한청련 활동의 축을 ‘동포의 권익을 옹호하는 운동’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각 지역의 마당집을 거점으로 동포의 권익을 옹호하는 활동을 통해 동포 사회에 더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자고 윤한봉은 호소했다.
새로운 노선에 따라, 회원들은 학교에 돌아가 학업을 재개하거나 나빠진 건강을 돌보게 되었다. 강완모는 한청련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도 대학으로 돌아가 법학을 공부해 국제변호사가 된다. 그는 증언한다. 새로운 노선은 회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습니다. ‘통일운동을 포기했다, 이것은 배신이다’며 분개한 회원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신노선은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선견지명이었습니다. 학업을 중단했던 사람은 학교로 돌아갔고, 건강을 해쳤던 사람은 건강을 돌보게 되었으며, 부모형제와 관계가 소원해졌던 사람은 집에 돌아가 화해를 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운동의 시작이었지 운동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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