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죽음의 고비
1980년 5월 21일 광주를 빠져나간 윤한봉은 이후 서울에서 어떻게 피신생활을 했을까? 일기는커녕 메모조차 남겨서는 안 되는 수배자의 삶이었기에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다. 함께 피신생활을 했던 극작가 박효선의 작품에서 그 편린을 만난다. 두 피신자는 이렇게 살았다.
“생활은 철저하게.” “식구들 잠자는 사이 화장실을 사용한다.” “재빨리 똥을 누고 세수와 양치질을 한다.” “걸레로 방을 치우고 청소를 한다.” “생활은 철저하게.” “신문을 재빨리 훑어보고 얼른 제자리에 갖다 둔다.” “식사는 재빨리 하고 담배를 줄인다.” “문은 항시 잠궈 두고 밤에도 불을 켜지 않는다.” “햇빛에 책을 보고 달빛에 잠을 잔다.” “빨래는 손수 하고 집안일을 돕는다.” “생활은 철저하게.” “운동의 대의를 위해.” “운동의 승리를 위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1981년 4월 29일 이른 아침이었다. 후배 정용화가 도피처인 서울의 석달언 씨 집으로 나를 불쑥 찾아왔다. “갑자기 웬일이야?” “형님, 지금 당장 고속버스로 마산으로 내려가셔야겠습니다.” “마산?” “오늘 배를 타야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용화는 마산에 가서 만나야 할 사람들과 만날 시간, 장소를 알려주었다. “형님 혼자 내려가면 위험하니까 은경이와 동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은경이한테 연락을 취하고, 광주에 들러 볼일 보고 마산으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남기고 황급히 떠나갔다. 김은경은 당시 내 도피 과정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도맡아 해주던 후배였다. 한 시간 후 은경이가 왔다. 그동안 방구석에만 처박혀 지내 얼굴이 해쓱하게 여윈 나는 병원에서 막 퇴원한 환자 행세를 하기로 했다. 은경이는 나의 여동생 행세를 하기로 하고 함께 고속버스로 마산으로 내려갔다.
마산에서 윤한봉을 기다리던 사람은 화물선 표범(Leopard)호의 기관사 정찬대와 항해사 최동현이었다. 두 선원은 위험한 윤한봉의 밀항을 감히 돕고자 나선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마산에 도착하자 그들은 여관방으로 옮겼다. 과연 표범호를 통한 밀항이 가능한지 꼼꼼히 분석했다. 찬대와 동현이의 설명에 의하면, 표범호는 3만5천 톤 급 무역선으로 선장을 포함해 27명의 선원이 타는 배였다. 4월 30일 빈 배로 마산을 출발해서 호주에 도착한 다음 그곳에서 알루미늄 원광석을 싣고 다시 미국 서북쪽 밸링햄 항구를 향해 항해할 예정이었다. 미국까지 가는 데는 약 40일이 걸린다고 했다.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예상되는 위험한 고비는 세 번이었다. 첫 번째 고비는 마산항의 부두에 잠입해 표범호를 탈 때였다. 두 번째 고비는 호주에 도착해 세관검사를 받는 것이고, 세 번째 고비 역시 미국에 도착해 통과해야 하는 세관검사이다. 윤한봉은 작전 계획을 세웠다. “윤한봉은 선원으로 가장한다. 정문을 통해서 외항선 부두에 잠입한다. 한봉, 찬대, 동현은 술 취한 것처럼 어깨동무하고 비칠비칠하면서 정문을 통과한다.배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 배에 올라온 동포와 서로를 확인하기 위한 암호를 정한다. 배에 올라온 동포는 성경책을 든 목사 행세를 한다. 동포는 찬대를 보며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찬대는 ‘봉선화를 좋아한다. 당신은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되묻는다. 동포는 ‘진달래를 좋아한다’고 답한다. 암호가 통하면 찬대는 윤한봉을 동포에게 인도한다.”
출항 예정일인 30일 낮에 찬대와 동현이는 비상식량과 돈을 가져왔다. 마른 멸치와 마른 새우 식빵과 잼, 그리고 치약과 수건이었다. 오후가 되자 표범호가 뱃고동을 울렸다. 저녁이 되자 동현이가 와서 조금 전에 배가 우리나라 영해를 벗어났다고 알려주었다. 아! 조국을 떠났구나. 윤한봉은 벽에 기대앉아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었다.
오월 영령들이시여! 이 못난 도망자를 용서해주시오. 살아남은 죄를 씻고 떳떳이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1981년 4월 29일 배에 올라 6월 3일 미국 땅을 밟을 때까지 35일 동안 윤한봉은 최동현이 관리하는 의무실 안의 화장실에 숨어 버텼다. 윤한봉은 술회한다.
윤한봉이 머물 곳은 병실에 딸린 한 평 반 정도 되는 공간에 양변기와 세면대가 설치된 비좁은 화장실이었다. 천장 귀퉁이에 작은 환기구가 뚫렸을 뿐, 사면의 벽이 창문 하나 없이 철판으로 꽉 막힌 가운데 천장의 백열등 한 개가 유일한 빛이었다. 갑판 쪽 벽은 열기를 뿜어내는 연통이 인접해 있어 외부 기온이 높아지면 열기가 숨통을 틀어막는 곳이었다. 표범호엔 환자가 없어 의무실에 사람이 들어올 일도 없었지만 만일을 위해 고장이라고 써 붙였다. 의무실의 화장실 한쪽 벽은 선원들의 침실이 나란히 있는 복도였다. 화장실에서 소리가 나면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 하나 새나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말소리가 새나가면 의심을 받기 때문에 거의 안 들릴 정도로 속삭이거나 필담을 나눴다. 윤한봉은 김은경이 넣어준 비상식량 외에는 일체의 식사를 거부하기로 했다. 병실에 자꾸 먹을 것을 나르다가 다른 선원의 눈에 띨까봐서였다. 비상식량이라야 식빵 두 봉지 외에는 한 끼 간식거리밖에 안 되는 양이었다. 하루에 잣 3알, 멸치 한 개, 마른 새우 하나, 식빵 한 조각을 잼을 발라 먹기로 했다. 굶주림보다 더 힘든 것은 더위였다. 한국에서 호주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기 때문에 배는 적도를 두 번 통과했다. 화장실의 갑판은 사방이 철판이었다. 비좁은 화장실은 오븐과 다름없었다. 네 벽이 철판으로 되어 바람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데다 바깥쪽 붙은 연통이 열기를 뿜어대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의무실 전체가 갑판 위에 있어 적도 부근을 지날 때는 모든 벽이 달궈져 죽을 것만 같았다. 온 몸에 기포와 수포가 생겨 따갑고 가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표범호는 예정보다 이틀 먼저 항구에 도착하고 있었다. 시애틀에 있는 표범호 관리인에게 전화를 한 하비 목사는 불과 몇 시간 후 표범호가 입항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긴급히 김동건 장로와 부인 김진숙에게 연락했다. 하비 목사에게 연락을 받은 김진숙은 미국인 목사를 대동해 배에 올랐다. 재치 있는 김진숙은 자기 집 주소를 쪽지에 적어 선원들에게 나눠주고 언제든 밥을 먹으로 오라고 했다. 쪽지를 받은 정찬대와 최동현은 윤한봉을 데리고 그 집에 갈 수 있었다. 김진숙의 집에 처음 도착한 윤한봉은 해골이었다. 한 달을 굶었으니 오죽할 것인가. 윤한봉은 다짐했다.
광주의 원혼들을 잊지 말자. 부끄러움 없이 살자. 조국에 돌아갈 때 떳떳하게 갈 수 있도록 철저하게 운동하자. 살아남은 죄, 도망친 죄를 깨끗이 씻고 갈 수 있도록 철저하게 운동하자. 항시 광주의 존엄을 지키자. 윤한봉의 별명은 ‘합수(合水)’였다. 한자어로 물이 합쳐진다는 뜻이다. 시골에서는 똥과 오줌을 합쳐 퇴비로 사용했다. 똥물과 오줌이 합쳐진 물이 바로 합수이다. 정의로운 세상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개인 생활 규칙도 정했다. 첫째 영어를 쓰지 않는다. 둘째 샤워를 하지 않는다. 셋째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넷째 잠잘 때 혁대를 풀지 않는다. 한국에서처럼 ‘내 것’을 갖지 않는다는 무소유 정신도 재차 다짐했다. 자신을 위해 허용한 유일한 낙은 담배였다. 새벽에 눈 뜨면 피기 시작해 잠들기 전까지 줄담배를 피웠다. 가슴이 아프고 숨이 차서 몇 번 끊어 보기도 했으나 결국 다시 피웠다. 이 고통스런 흡연 행위조차도 그는 부끄럽게 여겼다. 윤한봉은 이 조그만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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