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문화운동 - 극단광대
그 79년도 말부터는 이제 그 박효선을 중심으로 해서 문화운동하는 친구들 묶어서 이제 광대, 극단 광대라는 것을 만들어서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 YWCA산하에 두는 것으로 그렇게 YWCA 극단 광대.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그렇게 했다가 나중에는 YWCA를 띠어브렀는데, 이 친구들이 이제 인연을 어떻게 맺게 되었냐면은 78년 10월 11일에 있었던 북동 쌀생산자대회때 이 친구들이 이 함평고구마사건을 주제로 한 마당극을 만들어가지고 쌀생산자 대회 때 공연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아조 우뢰같은 박수를 받았지. 굉장히 효과가 컸는데 그걸 계기로 해가지고 연극반하고 전남대 탈반 애들이 묶어져서 극단 광대를 80년 1월에 출범을 해고 그러고 인자 그 3월에 유명한 돼지풀이 마당굿을 하게 되죠 광주에서. YMCA에서 했는데, 근디 인자 문제는 극단 인자 출범할 때 돈이 없으니까 북 장구 같은 악기 하나가 없는거예요, 하나가. 근게 내가 인자 그걸 돈을 구해가지고 전부사고 주고 그래가지고 이제 창단 공연을 하자 그래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가지고 그때 돼지값 폭락으로 난리가 났어요. 농민들이 돼지새끼를 시장으로 팔러 갔다가 너무 싸니까 화가 나갖고 다시 차에 싣고 오다가 집에 가면 또 사료값이 비싸니까 애물단지거든. 버스에다 놔두고 내려버리고 새끼돼지들을 그런 일들이 막 벌어질 때였어요. 피폐한 농촌의 참혹한 상황을 돼지를 중심으로 해서 해갖고 풍자적으로 작품을 해보자 그래가지고 돼지풀이 마당굿을 만들었는데, 공동창작으로. 그래가지고 서울 올라가서 이제 이 또 황석영씨의 연줄을 최대한 활용한거죠. 양희은 김민기 최희완 다 내려왔어요 이제. 그래가지고 공연하고. 아이 뭐 양희은이 올때 버스로 같이 내려오고 아 돈없는데 뭐 어떻게 기차 어찌고 버스가 더 나. 거기에서 가면서 극단 광대에 세상에 풍물도 하나도 없이 뭔놈의 문화운동을 기금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래가지고 내가 그때 백오십만원을 남겨서 주겠다 그래가지고 내가 기획을 맡았어요. 이게 80년 3월 이야기에요. 그때 기획할 때 웃긴게 구호가 결사강매, 현찰박차기 그랬죠 내가. 그래서 티켓을 이제 할당을 한거지 그래갖고 결사적으로 팔아 현찰박치기 외상 절대 없어. 그래가지고 못팔믄 돈 내놔 그대신. 돈 딱 가져가블고. 영수증같이 해갖고 딱딱해갖고 받고. 악착같이 해갖고 그 이야기를 듣고 김민기랑 서울에서 온 친구들이 세상에 요런 공연해갖고 손해 안보믄 성공하는거다. 여기서 남긴다는게 말이 경험이 없어서 그런소리한다고 나한테 글드라고. 긍게 효선이가 그래도 합심이 하면 다른데, 합심이 하면 남겨.
면담자 : 선생님 별명이 합심? 구술자 : 응 합심. 이 막 그런적이 없다. 적자 안나믄 성공하는거라고. 근데 백오십만원 남겼어요 그때. 그라고 작품이 좋았기 때문에 호응도 대단히 좋았고. 내가 앞에서 기도스다시피했는데, 극 보고 나가면서 막 나보고 좋은 작품 보여줘서 고맙다고 그라고 악수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나이드신 분들 중에서. 그래 그 이후로 이제 돼질풀이 마당극가지고 여기저기 이제 초청공연을 다녔죠. 농민단체들, 어쨌든 인자 그렇게 됐는데. 이 광주문화운동도 돈이 없어가지고 이 탈춤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은 얼마나 한가 서울에서 문화패들이 탈춤전문 강사를 모시고 자음 자봉가 스머푼가 어디 해수욕장 안가봐서 모르는디 어디로 온거예요. 와갖고 여름에 텐트치고, 자기들끼리 수영도 하고 놀다가 시간나면 탈춤 모래사장에서 배우고. 이 근디 이소식을 듣고 광주에 이 문화운동 팀들이 자기들은 이런 강사를 초청해서 배울 기회가 없으니까. 돈이 없으니까. 그걸 쫓아내려간 거예요. 내려가가지고 꽁자로 배울 수 없으니까 거기서 떨어진데다가 텐트쳐놓고 이제 동네 수영복도 안 입고 동네청년들이 뭣한가 구경한 것처럼 얼쩡얼쩡 가갖고, 인자 거기서 가르치고 배우는걸 보는 거예요. 그래갖고 눈썰미로 익혀가지고 돌아와서 안보인데 돌아와서 거기서 아까 이렇게 하던데 아까 이렇게 했어 자기들끼리 본 것을 기억해가면서 연습해가면서 그렇게 배우고 그랬다고. 비참한 이야기인데, 어쨌든 간에 광장이 뭐야 극장광대가 그렇게 성공적으로 출범을 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