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언행록

 
 
 
제목교육지표사건. 1978년 광주2018-12-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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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윤한봉에게 들어온 것은 성명이 발표되기 한참 전이었다. 교수들의 의롭고도 외로운 저항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몇몇 교수들이 나서서 유신정권의 이념을 비판해 봐야 연행되고 해직되면 끝이었다. 학생들이 동조시위로 사건을 키워야 했다. 윤한봉은 선언이 나온 후에 이를 받혀줄 시위를 벌일 준비를 하는 한편, 발표 며칠 전 전남대 송기숙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넌지시 말을 꺼냈다.

“교수님, 어째 하시는 일은 잘 돼가세요?”

성명서 작성과 서명은 비밀이었다. 깜짝 놀란 송기숙의 표정이 굳어졌다.

“뭔 일? 나 하는 일 없어.”

시치미를 떼고 가 버리는 것이었다. 윤한봉은 등 뒤에 대고 말했다.

“하여튼 잘 하셔야 합니다.”

송기숙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차나 한 잔 하자며 윤한봉을 중흥동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한봉이, 자네가 아는 일이란 건 뭔가?”

“아니, 이 바닥에서 제가 모르는 일도 있어요? 서명한 교수님이 열 명 조금 넘지요? 불어 김현곤 교수님, 문화사 이석원 교수님, 이홍길 교수, 이방기 교수, 명노근 교수…”

송기숙은 놀라 말을 못했다. 서명도 비밀인데 명단까지 거의 다 맞았기 때문이었다. 실은 서명자가 누구인가는 윤한봉도 들은 적이 없었으나 전남대 교수 중에 민주교육지표에 서명해 줄 사람은 빤했다. 감방에서 나와 월부책을 팔러 다닐 때 학생들 시켜서 책을 사준 교수들, 도서관 앞에서 후배들에게 노상 강연을 하고 있으면 몹시 미안한 얼굴로 지나가던 교수들이었다. 윤한봉이 추측 중에 틀린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다른 한 명은 본인이 서명하고자 했으나 해외연수를 가야할 처지라 송기숙이 말렸다고 했다.

“한봉이, 어디 가서도 이런 얘기 절대 말게.”

“교수님들이나 알아서 잘 하세요. 저는 밖에서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이 치고 나가면 학생들이 대거 동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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