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인 데다 반공의식에 사로잡혀 있어 장기수들의 고통이나 그 정신적 신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제 같은 사동에서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가니 감정이 또 달랐다. 윤한봉과 같은 사동에 수감된 장기수들은 모두 독방생활자들로, 모진 고문과 구타를 버텨내고 전향을 하지 않은 노인들이었다. 윤한봉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확고한 자기 나름대로의 신념 체계가 서지 않는 한, 사상과 이념이 정립되지 않는 한, 함부로 무슨 주의자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훗날의 구술이다.
“확고한 내 나름대로의 신념의 체계가 서지 않는 한, 사상 이념적으로 서지 않는 한 함부로 내가 무슨 주의자니, 마니 하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자신이 확실히 섰을 때만이 내 사상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호소하겠다. 그러한 다짐을 했어요. 그래서 함부로 그 사상, 이념에 대해 뭐라 뭐라 이야기 하는 것을 철저히 조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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