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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80년 5월 19일, 윤경자의 증언2018-12-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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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자는 8개월 된 아들 찬을 들춰 업은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20일 저녁이었다. 대량 발포는 다음날 벌어지지만 이미 곳곳에서 계엄군의 산발적인 실탄사격이 시작되어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교차로 일대에서도 시위대와 계엄군의 공방전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함성과 총성이며 시위에 가담한 택시들의 경적 소리가 새까만 밤하늘을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건설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 박형선은 학생운동의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이틀 전에 체포되어 끌려갔고 오빠 윤한봉은 며칠 째 종적이 없었다. 경찰은 벌써 몇 차례나 들이닥쳐 윤한봉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갔다. 저 혼란의 와중에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까 가슴이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교차로라도 나가 상황을 살펴보고 싶은데 아이에게 최루가스를 맡게 할 수도 없고, 두고 나가려 하면 울어대니 어르고 달래며 마루 위에서 발돋움으로 바깥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계엄군이다! 도망쳐!”

고함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뛰어오는 발소리가 요란했다. 다급히 골목으로 도망쳐온 사람들은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높은 담장을 쑥쑥 뛰어 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단 한 사람, 뒷집 사는 아저씨만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네 딸을 둔 중년의 약사로, 구경만 했으니 별일 없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겉옷도 입지 않은 런닝셔츠 바람이었다. 바로 그 흰색이 계엄군의 눈에 띤 모양이었다. 약사가 집에 들어가 나무대문을 걸어 잠근 직후 계엄군이 대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윤경자의 집 안방 창문에서 발돋움을 하면 담장너머로 뒷집의 안방과 마당이 다 보였다. 얼른 안방에 들어가 내다보니 계엄군은 나무대문을 총검으로 찍어 부수고는 집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그제야 놀란 약사는 자기 안방에 들어가 문고리를 잡고 주저앉아 버티려 했으나 군인들이 총검으로 문고리 부근을 푹푹 찔러대자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가족들은 비명을 지르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난동을 목격한 윤경자는 온몸이 덜덜 떨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계엄군의 무차별 공격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밤새 계속되었다. 밤 9시 반에는 문화방송 사옥이 방화되어 불길에 휩싸이고 새벽 4시 반에는 한국방송 사옥까지 불 붙었다. 바로 그 시각이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어린 아들을 껴안은 채 공포에 질려 있는데 대문 밖에서 낮고 조심스런 음성이 들려왔다.

“찬아! 찬아!”

칼칼하게 쉬기는 했으나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화급히 뛰쳐나가 대문을 여니 한 남자가 목에는 마스크를 걸치고, 양손에는 긴 드라이버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몰골이었다.


“오빠!”

윤한봉은 동생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윤경자는 들어오라는 소리도 않고 그의 어깨를 떠밀며 말했다.


“오빠! 죽으려고 우리 집에 왔어요? 경찰이 오빠를 잡으려고 몇 번이나 왔다 간줄 알아요? 어서 달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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