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언행록

 
 
 
제목고문32018-12-1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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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연행 4일째가 되던 날 벌어졌다. 1979년 10월 27일 아침이었다. 밤새 시달려 녹초가 된 채 널브러져 있는데 밖에 나갔다 들어온 경찰이 이상한 행동을 했다. 수갑을 풀어주고 담배를 권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몸이 어떠냐고 걱정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또 무슨 가혹행위의 전조인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담배를 피우는데 못 보던 자가 들어와 푸념을 했다.


“나라 장래가 걱정된다, 나라 장래가…”


이때 멀리서 여명처럼 희미한 방송이 들려왔다. 유고, 계엄령 같은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순간, 박정희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침내 박정희가 죽은 것이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온몸으로 번져오는 짜릿한 희열이 느껴졌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박정희가 죽었구나, 이제는 살았다, 고문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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