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언행록

 
 
 
제목40-귀국2019-01-0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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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부 조국에 돌아와서

 

귀국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 베르롤트 브레히트 나의 어머니」

 

망명생활의 청산과 영구 귀국

 

5월 19일 꿈만 같은 2주 동안의 조국 방문을 마치고 나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회원들과 만나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민족학교에 들어가 앉으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어디 멀리 여행 갔다가 집에 돌아 왔을 때 느껴는 아늑함과 편안함이 나를 감싸 깜짝 놀랐다.

“큰일 났구나,LA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구나.”

 

한청련,한겨례 회원들은 그 사이에 북부조국과 미국이 핵문제를 가지고 제네바에서 직접 협상하기로 함에 따라 추진 중이던 UN 본부 앞 단식농성을 취소했다. 대신 오스트리아 비엔나 에서 열리는 제30차 세계인권대회에 해외한청련 대표단을 파견할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약 두 달 반 동안 미국 각 지역과 캐나다, 호주를 방문하여 개인적으로 도와주신 분들께 인사를 올리고 지역 별로 마지막 수련회를 가졌다. 나는 수련회장에서 회원들에게 운동의 생활화,꾸준한 학습, 동포사회에 뿌리내리기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통일단결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앞으로 북부 조국과 미국,일본,캐나다,호주,유럽 각국과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것,그렇게 되면 일본에서처럼 해외 각국의 동포사회 에서도 남•북간의 치열한 세력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그렇게 될 경우 한청련,한겨레는 강령에 따라 남북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말고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민족적 관점과 입장을 지키며 운동을 해 나가야 하고 동포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나는 환송식장에서 ‘해외운동이 나를 조국 운동권에 파견한 것으로 생각하고 항시 여러분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겠다는 내용의 인사말을 했다. 각 지역의 수련회와 환송식을 마치고 우편을 통해 미 국무성에 감사의 뜻과 함께 영주권 탈퇴서를 각각 제출한 나는 12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을 정리하고 정든 회원들 곁을 떠나 조국으로 돌아왔다. 꿈에 그리던 조국과 현실의 조국이 얼마나 다른지 짐작도 못한 채 속없는 나는 들뜬 마음으로 조국으로 돌아왔다. 1993년 8월 18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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