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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3-월남전과 탄압국면2018-12-2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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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월남전 종결과 탄압국면


구술자: 그런데 그때가 인자 216일날 내가 나왔는데 대전에서 빨리 나온데는 215일날 그 하루전에 나오고. 그런데 잘 알겠지만 4월달에 들어와 가지고, 9일날 49일날 인혁당 관련 8분이 사형당하셨어. 8분이 그냥 사형당해브렀어. 그때 내가 전남대 거 도서관 앞에 있었는데, 백도 앞에. 그 소리를 전해듣고 얼마나 화가 나는지 거기서 또 내가 일어나갖고 또 한번 맹세를 했는데, 내 한 목숨 다바쳐 이놈의 독재정권, 학살정권하고 맞써 싸우겠다고 악을 썼는데, 약속은 지켰는데, 그것이 인자 충격적인 사건으로 왔고. 인자 이 들어가서 감옥살이 하면서 많이 수없이 되풀이해서 반성한 게 아하~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허약한 정권이 아니라는 거지. 단순한 정권이 아니라는 거지, 거짓, 그냥 막강한 하나의 체제라는 거 이것을 동시 다발적인 419식 환상을 갖고 달려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그러고 우리가 얼마나 힘이 없었고 미약했는가, 시위도 한번 제대로 못해 본 채로 세상만 시끄럽게 만들어 놓고 이거 뭔 꼴이냐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인자 그랬는데, 반성도 많이 했는데. 아 그냥 49일날 딱 그런 일이 터지고 나서 사형 집행한거 보고는 진짜 이놈들하고는 사생결단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제. 그러고는 에 이 약속했던 대로 감옥 안에서 복학이 안됐제, 안됐는데 여자후배들도 좀 의식화 시키고 옥바라지 모임도 만들고. 그래야겠다. 그게 인자 옥바라지를 솔선해서 하자 그래갖고 그때 인자 못나오신 분들 나머지 이영배씨부터 김지하씨 다시 들어가 버렸지 인자 인혁당 사건 조작 폭로했다가 다시 들어가셨는데, 김지하씨 이런 분들에 대한 인제 책 넣고 인자 옥바라지를 개인적으로 시작을 그때 했어요.


근데 글쎄 이 이야기는, 어째든 그건 인자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할까말까. 어쨌든 인자 그러고 있는데 분위기가 처음에는 영웅대접하고 여기저기서 밥 사주는 사람도 나오고, 그랬는데 교수들도 가면 환영하고 막 들어오라 그러고, 어떻게 지낸가 해쌌고 강의 시간 됐는데 십 분 늦게 들어가면서까지 나하고 앉아서 이야기할라고 그러고 그랬는데 월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러가지고 월남 베트남이 붕괴되기 시작한 거지. 그래가지고 430일 이제 베트남 통일이 돼 버린 거예요 끝나버린 거지 인자. 그러고 나니까 이제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게 된 거지. 위기감을 느낀 체 하는 거지 정부 차원에서는 그걸 빙자해 가지고, 탄압국면으로 돌아선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때 민주회복 국민회의니 무니 해갖고 인제 우리들 민청학련 관련자들이 들어간 뒤로 74년 후반기 만들어진 게 민주회복 국민회인가 있었어요. 광주지역에서는 홍남순 변호사 등 이 양반들이 주축이 되어서 만들고 그랬는데, 모조리 이제 그 민주를 외치는 모든 단체를 인자 깨기 시작한거예요. 어느 정도 심했냐면 그 해 8월에 이제 장준하선생님이 의문사를 하셨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는 완전히 암살로 봤어요 그게. 근데 내가 그때 나는 책판매관계로 다른 데가 있었는데, 광주에서 광주 출신 서울에서 학교다니다 광주 출신으로 감방에 갔다나온 친구 일부하고 광주친구들이 모여서 이 장준하 선생님 추모식 같은 것을 한 거예요. 돌아가셨으니까. 그것도 자취방에 모여서 사상계 같은거 갖다 놓고 몇 구절 읽고 그러면서 근디 그 정보를 이놈들이 이제 듣고는 잡아다가 뚜들겨 팬 거예요.


이제. 그래가지고 누가 이거 제안했냐부터 시작해서 뭣 땜에 했냐고, 등등 그래갖고 뚜들겨 맞고는 그러니까 그때는 월남 베트남전 핑계로 해갖고, 엄청나게 이제 탄압을 합리화 한거예요. 그래갖고 사정없이 조여블땐데, 뭐다 갔다가 이제 강제로 두들겨 패갔고, 탈퇴해서는 탈퇴서약받고 탈퇴서 받고, 반성문 막 받고 깨질 때에요. 다 깨졌어. 전국이 다 깨졌어. 다 깨졌는데, 인자 그렇게 8월달 인데, 그렇게 장준하선생님 추모식 했다가 들어가서 뚜들겨맞은 친구들이 하도 분해갖고, 홍남순 변호사를 찾아가서 변호사님 우리가 너무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이거. 소송을 좀 제기해야겠습니다. 변호사님이 좀 도와주십시오 긍께 홍변호사님이 글쎄... 글쎄... 그래갖고 앉아있으니까 이 친구들이 처음에는 왜 이러나 그러다가 인제 계속 그렇게 사정을 해도 글쎄 글쎄하고 있으니까 배신감을 느껴갖고, 아 그럴 수가 있습니까 뭐 어쩌고 저쩌고, 인자 그라고 나가니까 허허, 계속 글쎄 글쎄하고 답을 안해븐거여. 무서운 사람들이여 무서운 사람들이여 글쎄 글쎄. 인제 나중에 그것을 변호사님이 왜 그런가를 여기저기 다니면서 변호사를 욕하고 원망하다가 알게 된 건데. 민주회복 국민회의 광주본부가 전남본부가 하여튼 그 양반이 책임을 맡으셨는데, 안기부에 끌려가갔고 정보부지? 그때는. 해체 서약을 하라 그거여. 해체한다는 각서를 쓰라고 한거여. 긍게 이 양반이 안한다고 그러니까 이 자식뻘도 안되는 이 나이 어린것들이 홍변호사님 고추를 잡고 30센티 자로 두들겨 패븐거여. 변호사를. 그것도 60이 넘으신 분을. 그래갖고 홍변호사님 도저히 못 견디고 쓰러져븐 거여. 인제 그런 분이 어디가 수를 당해 노니까 고추가 이렇게 붓도록 뚜드려 맞아브렀으니 말을 못하고 있는데 또 뚜들어맞았다고 후배들이 이거 소송을 어쩌고 하자고 하니까 이 양반이 알거든. 이게 소송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는걸. 이놈들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이라는 걸 르랑께 글쎄, 무서운 사람들이여, 무서운 사람들이여, 그라고 안하셨던거여. 긍게 변호사를 그것도 낸호고 인권 무료 변호하고, 엠네스티 활동하셨던 분을 그렇게까지 했을 정도로. 그래갖고 전국에까지 다 깬거여. 다 깨졌어. 모든 민주가 어떻고 자유가 어떻게 떠든 조직이 다 깨졌어. 우리는 4월 달에 왔제. 다시 모였는데 뭐냐믄 이 베트남전이 이렇게 싹 끝나게 되고 탄압이 심해지니까 그저 길가에서 보면 오, 하고 아는 체 하고 서로 밥산다 하는 사람들이 싹 보믄 도망가는 옆 골목으로 새 블고, 그걸 느껴 이제. 학교 들어가서 교수님 실 딱보믄 오 왔는가, 근데 어 나 좀 강의 들어가네 그래갖고 도망가 블고. 안 놀아주지, 상대를 안 하는 거지. 완전히 나병환자 전염병 보균자같이 그렇게 상황이 변해 버린 거여. 밥은 저리가고 용돈 저리가고. 그러면서 탄압이 어느정도 심했냐면 이제 학교도 복학도 안 되지, 취직은 말할 것 없지, 집에서는 애물단지지, 이제 집에서도 찬밥. 그랑께 교통 인제 버스 요금이 없어갖고 회의에 못 나올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된 거지. 그 인자 가정학습 같은, 이를테면 과외지.

 

그런 것 좀 할라고 해도 부모들한테 저거 빨갱이다, 애 장래를 버린다, 왜저런 놈한테 배울라고 하냐 그래갖고 훼방 부려갖고 막아블고. 담당이 딱 정해져가지고, 그땜나 해도 수가 많지 않으니까 아예숨을 못 쉬게 만든거야. 달달달달달 볶아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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