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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7-유신 저항 시위2018-12-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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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유신저항 시위


구술자: 인자 그걸 토대로 해서 인제 73년 10월에 서울대에서 10월2일 문리대 데모라는 게 있는데, 그 유신 쿠테타 이후에 최초의 저항이었어요. 그런데 그보다 전에 인자 전남대에서 시위를 계획 했어요. 우리가 이 정도 영향력을 확보했으니까 한번 붙자. 그런디 인자 그걸 몇몇 아는 선후배들하고 이야기 한디 어느 선배가 인제 그걸 이야기하면서 저러다 이놈들 또 제적되거나 감옥에 갈 건데 하는 우려하는 이야기를 한 것이 어떻게 학교 당국에 들어가 븟어. 그 소리가. 그래가지고 나하고 박형선이가 대표적으로 끌려가 가지고 형사들에게 내가 송광사, 형선이가 선암사 쪽으로 하여튼 절에 가서 한 삼일? 절 앞에 있는 여관에서 인제 연금 당했다가 풀려나왔는데, 그래가지고 인제 그 계획이 무산이 됐지. 그때 인제 서울로 청량리 시장 쪽으로 보내가지고 문덕희가 가서 등사기 사오고, 준비 다 해놓고 있었을 땐데, 그러고 인자 얼마 있으니까 서울대에서 문리대에서 시위가 터졌지. 인제 그런 식으로 해서 인제 점차 뭐랄까 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는데, 그 사이에 인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돌아가신 김남주 시인과 이강씨 두사람이 함성 고발지 사건을 일으킨거지. 그것이 이제 유신 쿠테타에서 두달인가 지났을때였을거야. 한두 달. 전국 최초로 유신에 대해 저항을 한 것이니까 그게 처음에 나온 유인물이 함성 그 다음에 나온 것이 고발. 이렇게 됐죠. 함성 고발지 사건이라고 그러는데. 고걸로 해서 이제 이강이하고 김남주가 끌려 들어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보안법으로 들어갔는데. 가까웠던 선후배

들까지해서 몽창, 인쇄한느데 돈이 들거해서 뭐좀 반지같은거 돈꿔달라고 하니까 좀해주고 했던 이경순씨, 지금 영문과 교수지? 그런 사람들부터 하여튼 십여명이 들어가서 혼났지. 국가보안법으로 해갖고 대개 일심에서 나오고 강이씨도 오래 안 있고, 74년 2,3월 경에는 나왔지. 이강씨랑 남주도 나오고. 어쨌든 간에 몇 달 있다 나왔는데, 그 사건이 터져가지고 더 이제 광주 분위기를 뭐랄까 고조시켰다할까 학생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자극을 주고,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거 있었지. 그래가지고 인자 학생들이 가서 인자 방청을 하러 광주 법원에 계속 많이들 가고. 그 일정한 영향력을 주고 우리는 뒤에서 계속 그 작업을 학내의 영향력을 키워가고. 교양독서회로 해서. 그럴때 그때 교양독서회 할때 책이 있나, 인자 뭐 최인훈의 광장, 분단 저저 육이오에 대한 공부를 한다든가 등등 분단의 아픔을 공부한다던가. 그럴땐데 그래서 이제 10월 서울대 10월2일 서울대 문리대 데모를 계기로 해서 전국 각지에서 학생 시위가 일어나요. 유신반대 시위가. 광주 전남대에서도 인제 학생회까지 나서가지고 그때만 해도 어용학생회 되기 전이었으니까 시위를 하고 그랬죠. 도서관에 뭐 점거 농성도 하고, 그런게 인자 열심히 쫓아다녔지. 그때는 인자 뒤에가 안 섰고 앞장선 족이었지. 근디 일화인데 슬픈 이야기야. 인제까지 그런 애기 안했는데, 알아두라고 얼마나 이 세상이 황당한가를. 전남대 도서고나에서 지금 하얀 건물 그걸 백도라고 하던가? 거기서 농성을 하는데 학생들이 인제 배도 고프고 담배도 없고 그러니까 학생회에서 자기들 돈 대고, 대겠다고 그래가지고 인제 담배, 빵, 이런 거 삼립빵 그때는, 그런거 인자 몽창 매점에서 이렇게 가져오는데 학생회에서 가지러 가니까 이미 벌써 학생회를 팔아가지고 벌써 싹 가져간 사람들이 있었어. 그렇게 세상들이 무섭더라고 근게 거 매점 주인은 농성하고 있겄다 학생회에서 급하다고 이래저래 한 소리 하고 하니까 믿고 준거지. 그걸 또 빼돌리는 학생들이 있더라고. 그렇게 무서와요. 하여튼 세상이. 그런데 하여튼 그렇게 해가지고 열나게 시위하고 어쩌고 그랬는데 처음에 구속하던 정부에서 유화책으로 그해 말에 다 내놔브러 학생들을. 그래갖고 방학, 그러니까 인자 방학 동안에 봄철돼서 준비한다고 플랜카드 만들기 위한 큰 것을 들고 다닐 순 없으니까 양쪽에다가 막 끼어가지고 펴가지고 들고 뛰는 그런 거 생각했었는데, 대나무 삼십센티 간격으로 짤라서 대나무 마련하고, 인자 자금 비축한다고 이야기 해 가지고 박형선이랑 이야기 해가지고, 등록금 어차피 짤리고 감방 갈 거 등록금 내지 말고 자금으로 쓰자, 하숙비 밀린 자꾸 뒤로해서 몇 달 꺼 인자 자금 마련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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