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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2-병든 미국2019-01-09 09: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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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보력

 

내가 미국에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무서운 정보력이었다. 85년경이었다. 어느 회원이 자기 아버지와 잘 아는 친구 한 분이 백텔사(원자력 발전소 건설로 조국에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첨단 건설회사)에 근무하는데,그 분을 통해 들었다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백텔사에서는 재미동포사회의 운동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고 있는데 재미한청련에 대한 보고서가 최근에 올라왔다. 거기는 합수라는 별명을 가진 청년이 정치 망명을 해서 가방 하나 달랑 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1세와 1.5세 동포 청년들을 모아 재미한청련을 조직했다. 재미한청련은 급진적이고 민족 주의적이며 활동 자금은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이미 동포사회에 뿌리를 내렸고 회원들은 동포사회의 중류층 자제들이다. 후원자들은 누구누구다. 미국 정보기관과 한국 영사관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다 들어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90만 명도 못되는 재미 동포사회의 이제 갓 시작된 보잘것없는 청년운동에 대해서까지 백텔같은 다국적 기업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니… 약간 틀린 내용들이 있긴 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부격차

 

미국의 극심한 빈부격차 또한 나를 놀라게 했다. 빈곤층(90년 기준으로 4인 가족연간소득이 1만3천9백24달러이하)이 전체의 14,2%에 달하는 3천6백만 명이나 되고(91년),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집 없는 사람들(무숙자)과 거지들의 수가 3백만 명이 넘으며,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이 전체의 16,6%나 되었다(90년). 무엇보다 놀라운 건 상층 1%의 소득이 하층 40%의 소득과 같다는 것 (88년),상층 1%의 자산이 하층 90%보다 더 많을 정도(89년)로 빈부격차가 심했다.

 

인종주의

 

미국의 인종주의도 놀라운 것이었다. 백인들은 여전히 유색 인종들을,그 중에서도 특히 흑인들을 집중적으로 멸시하고 차별했다. 흑인들은 차별과 소외 속에서 신음하며 백인들을 원망하고 증오했다.

흑인들은 미국 빈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도소 수감자 50%가 흑인 남성이고(91년),20대 흑인 남성의 26%가 수감자 또는 집행유예자이다(92년). 아버지나 어머니 중의 한 분 밑에서 자라는 편부모 아동은 백인 아동이 19%이고 히스패닉계 아동은 38%인데 비해 흑인 아동은 57,5%인 5백80만 명이나 된다(91년). 인구로는 전체 12%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연방 상원의원은 1%,연방하원의원은 8,5%만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심하게 차별받고 있었다(92년 선거).

캘리포니이주의 남부 지역에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이 모여 사는 어바인(Irvine)이라는 신도시가 있다. 그곳은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신도시인데 그 도시에서는 가난한 유색인종들이 살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시에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나 햄버거 가게와 같은 업소들이 아예 못 들어오게 제도적으로 막아버렸다. 그런 가게들은 저임금 유색인종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가 난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시에서 필요로 하는 경비나 청소 등의 저임금 노동을 할 사람들은 아예 멕시코에서 고용해 가지고 버스를 이용해 국경을 넘나들며 출퇴근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미 국의 대도시들에는 놀라울 정도로 넓고 주로 흑인들이 살고 있는 빈민가(Slum)를 어김없이 볼 수 있다. 아파트나 집들은 거의 비어 있고 간혹 상점들이 눈에 띌 정도로 주민들이 적은 폐허에 가까운 빈민가들이다. 그런 빈민가 중에서도 뉴욕의 빈민가를 특히 할렘 (Harlem)이라고 부른다. 할렘은 맨하탄 북부 지역을 거의 차지할 정도로 넓은 구역에 걸쳐 있다. 약 15 만 명의 흑인들이 살고 있는 그곳은 방 하나짜리 아파트를 500불(약 40만 원)에 팔려고 내 놓아도 살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유령 도시,폐허라고 불러도 부족할 만큼 흉물스럽다. 일반시민들은 무서워서 낮에도 그곳에 잘 가지 않고 관광객들도 낮에만 자동차로 얼른 둘러보고 나온다. 정부나 시에서는 그런 빈민가를 그냥 방치해 두고 있다.

그렇게 빈부격차가 심하고 인종주의가 심해도 미국에서는 그런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있어도 정치적 긴장은 거의 없었다. 4.29 LA폭동 때도 정치적 구호는 아예 없었다. 나는 그 점이 이해가 안 돼 이유를 알아보니 미국 사회는 ‘강자 우뚝 약자 납작’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패배한 사람들은 약자요,열등자요,무능자로 평가될 뿐만 아니 라 본인들도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여 탈락과 패배에 따른 가난과 위축과 소외를 큰 불평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성공해서 승리한 사람들은 강자요,우월자요,유능자로 평가되고 본인들도 그렇게 자처하여 성공과 승리에 따른 부와 권위와 권력과 명예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국가는 파산제도나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탈락자 패배자들에게 최저선의 생존을 보장해주었다.

인종차별로 신음하고 있는 흑인 사회는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온건한 흑인 중류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인종차별의 철폐를 목표로 하며 진보적인 백인들과의 연합을 주장하는 민권운동 세력이고,다른 하나는 급진적인 모슬렘 세력인데 흑인 빈곤층의 젊은이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궁극적인 독립을 목표로 삼고서 백인들과 연합을 거부한다.

흑인 사회도 강자생존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성공하거나 승리한 흑인들은 흑인 사회를 떠나 버린다. 결국 미국 인들의 계급의식과 정치의식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강자생존의 이데올로기와 인종주의였다. 특히 인종주의는 인종간의 계급적 단결과 정치적 연합을 가로막는 두터운 벽이었다.

또 하나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미국에서 TV를 통해서 자주 볼 수 있는 국제사회 소식이 차별과 소외와 가난으로 신음하는 미국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었다. 미국 TV 뉴스에는 소말리아 난민들의 참상 장면 등을 보여 주며 구호를 위한 기부금을 보내달라고 호소하는 자선단체들의 활동이 극성스러울 정도로 자주 나온다. 가느다란 목으로 간신히 머리를 지탱하고 있다가 파리 한 마리가 머리 한쪽 위에 앉으면 그 파리 무게를 못 이겨 머리가 그 쪽으로 기울어져 버리는, 하염없이 슬픈 눈빛으로 달빛같은 시선으로 인류의 앙심을 바라보고 있는 큰 눈의 굶주린 난민 아동들의 장면을 빈번하게 볼 수 있다. 나는 두고두고 생각해 보았다.

 

“흑인을 비롯한 가난한 유색인종들과 하층 백인들은 저 TV를 통해 비춰지는 굶주린 난민 동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까? 박해와 학살,분쟁과 굶주림으로 인해 피와 눈물로 얼룩진 다른 나라들의 참상을 볼 때마다 자신들의 처지와 비교해 보지는 않을까? 그때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끝없는 타락,병든 사회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미국 사회의 타락이다. 미국의 가정은 전체 가정의 50%가 동거 가정이거나 부부 중 한 명밖에 없는 가정이고(93년) 3분의 1의 가정만 자녀가 있고(93년) 아동들의 28%가 편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을 정도(91년)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청소년 문제도 미국에선 심각했다. 20%의 학생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등교한 경험이 있고 하루 3백만 건에 이를 정도로 학교 폭력이 심각하다(93년). 거의 모든 고교 현관에 공항처럼 무기 탐지시설을 갖춰놓고 있었고 으슥한 교정 곳곳에 은행처럼 폐쇄회로 TV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있었다.

또한 미국 고교생의 25%가 4명 이상의 이성과 성관계를 유지하고 있고(92년),18세 이하 미국 시민의 12%에 달하는 750 만 명의 청소년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89년). 매년 68만 3천 명 정도의 여성이 강간당하고(92년),17세 이전에 강간당한 여성이 강간당한 전체 여성들의 62%를 차지하며 (92년),어린이 4명 중 1명이 사생아일 정도로(92년) 미국의 성문제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미국의 범죄 문제도 심각했다. 살인율이 다른 선진국들의 살인율보다 8배나 많고(90년),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10만 명 당 455명으로 수감자 비율에서 세계 최고를 차지할 정도다(92년. 2위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311명).

미국의 사회적 타락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62%가 마약관련 사범일 정도로 마약 문제가 심각하고(93년), 인구증가율의 6배나 되는 소송 증가율 때문에 미국인 성인 두 명 중에서 한 명은 언제나 소송에 휘말려 있을 정도로(90년) 인간관계가 살벌했다. 90년 현재 미국에는 전 세계 변호사의 31%에 해당하는 78만 명의 변호사가 있다. 그 밖에 늘어만 가는 총기 소유(9 년에 미국가정이 소유하고 있는 총기 숫자는 약 2억 정),늘어만 가는 10대 자살,늘어만가는 이혼,급속도로 붕괴되는 도덕관념 또한 심각한 사회 문제 들이었다.

미국 사회는 크게 병들어 있었다. 77년에 있었던 뉴욕 정전 사태 때와 92년 4.29 LA 폭동 때 드러난 미국인의 얼굴은 특수한 상황 속의 특별한 미국인의 얼굴만은 아니었다. 미국인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은 가치와 윤리도덕을 도외시한 채 편리와 효율과 이익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미국 사회가 그렇게 타락해 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다.

93년에 전 교육부장관인 윌리엄 베닛은 미국의 타락을 개탄하며 “젊은 세대에 대한 도덕교육에 나서는 길밖에 없다. 우리들은 그들에게 자기 억제,타인 존경,가정과 자기 통제의 중요성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한 적이 있다. 나는 캐나다의 토론토 시나 호주의 시드니 시에 갈 때마다 무서워서 밤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는 미국을 생각하며 늦은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즐겼다. 언젠가 토론토 시의 밤거리를 회원들과 함께 거닐면서 생각해 보았다.

 

“도덕교육만으로 미국 사회의 병을 고칠 수 있을까? 대외적으로는 ‘힘은 정의이고 미국의 이익은 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세계 도처에서 침략과 개입과 주권유린과 ,내정간섭과 경제적 수탈을 하고 대내적으로는 빈부격차와 인종주의를 방치하고 조장하면서 어떻게 도덕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설사 도덕교육을 제대로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미국 사회의 병이 고쳐질까? 캐나다가 도덕교육만 잘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밤늦게 도심을 안심하고 거닐 수 있는 걸까? 정말로 미국은 자신들의 병의 원인이 서방 선진국들 중 가장 치열한 경쟁과 가장 극심한 빈부격차와 가장 열약한 사회보장과 가장 심각한 인종주의에 있지 않고 도덕교육의 부재에 있다고,교육의 실패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미국이 마냥 문제만 안고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나는 미국 사회의 긍정적인 밝은 면들도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다. 막강한 자본과 생산력과 경쟁력과 정보력과 엄청난 부존자원,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 출신 고급 두뇌의 존재,높은 합리성과 창의성,뿌리내린 공공질서 의식,건실한 건축 건설공사,전문가에 대한 존중과 우대,직업에 대한 사회적 존중,장애인들에 대한 세심한 사회적 배려,적극적인 입양과 정성스러운 양육 및 교육,틀 잡힌 증거재판주의,합리적이고 건실한 두터운 중산층,왕성한 의회활동,수준 높은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등등.

미국은 자원봉사와 기부행위가 생활화된 사회였다. 미국인들이 1년에 자선단체나 학교 또는 자선 관련 기관에 기부한 돈은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5배가 넘는 1천 3백억 달러(101조 3천억원)나 된다(94년). 물론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누진세율 때문에 세금을 많이 내야하는 부자들이 감세혜택을 받기 위해 내는 기부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빈곤층의 48%와 흑인들의 51%가 내는 질이 다른 기부금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빈곤층이 1년간 기부하는 금액은 1인당 평균 200달러나 된다.

미국 사회의 긍정적인 면 중 나는 두 가지를 특히 부러워하며 지켜보았다. 하나는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철저한 조사 연구를 한 후 지루할 정도의 검토와 토론을 거친 다음 계획과 정책을 수립하고,일단 계획과 정책이 수립되면 그것들을 위력적으로 분명하게 추진해 나가는 자세였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는 각종 사건 사고의 원인 조사에서부터 교량이나 도로의 건설,기념비 제작이나 공원조성,군비증강이나 감축,재정적자의 축소,대외적인 군사,경제, 외교정책의 수립 및 집행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지켜지고 있었다.

내가 부러워하는 또 하나는 미국의 공직사회였다. 미국의 공직사회는 공무원들에 대한 생활보장이 되어 있고 법이 엄격하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부정 방지장치와 독립적인 내부 감찰기구들이 곳곳에 있어서 일반사회의 범죄 타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적었다. 대통령을 말할 것도 없고 연방 상. 하 의원들이나 연방공무원들도 뇌물은 물론 우리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의 보잘것없는 향응이나 선물도 받지 못하도록 법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또 그러한 법들이 놀라울 정도로 엄격히 지켜지고 있었다.

미국 사회가 얼마만큼 철저하게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다. 93년에 캘리포니아 주의 오렌지 카운터,행정구역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군’과 같은 곳인데 그곳에서 제정한 ‘공무원 선물 수수 금지 조례’가 그것이다. 그 조례에는 받아서는 안 될 선물을 받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았다. 동료로부터 운동경기 관람권을 제공받거나 초청받아 함께 관람하는 행위,친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원가로 구입하는 행위,비서가 자신이 다 읽은 책을 재미있다며 줄 때 받는 행위,이웃의 차를 얻어 타고 공항까지 가는 행위 등등.

나는 이와 같은 미국의 서로 다른 면들을 함께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없이 조국의 그것들과 비교해 보았고 미국의 미래와 조국의 미래와 세계의 미래를 함께 생각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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