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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9-해외한청련 결성2019-01-09 09: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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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한국청년운동연합(해외한청련)’의 결성

 

87년부터 재미한청련은 해외 한국청년운동연합체(해외한청련)의 건설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청년운동의 불모지인 캐나다에는 권혁범 회원을 파견하고 어느 정도 기초가 되어있는 유럽과 호주에는 내가 직접 갔다. 87년과 88년의 8월 대회에도 세 지역의 청년들을 초청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87년에 캐나다에 디딤돌이라는 청년운동체가 만들어져 재미한청련과 연대활동을 해오다가 90년 3월에 디딤돌은 재캐나다 한국청년연합(재가한청련)으로 발전하였다. 독자적으로 87년부터 한국민족자료실을 설립해 운영해오던 호주 청년들도 90년 3월에 재호주 한국청년연합(재호한청 련)을 결성하였다.

개인적 차원에서 운동에 참여했던 서독의 청년들도 90년 10월에 재유럽 한국청년회(재유한청)를 결성하였다. 그렇게 해외 각 지역에 청년운동체가 결성되자 미국을 포함한 4개 지역 청년운동체 대표들은 그동안의 준비를 토대로 해서 90년 10월에 뉴욕에서 열린 ‘조국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해외동포대회’에서 재미한청련,재호한청련,재가한청련,재유한청을 회원 단체로 하는,해외 운동 사상 최초의 청년운동 연합체인 해외한청련(공동의장: 정민,최문현,김나경,박희원)을 결성하게 되었다. 마침내 일본을 제외한 해외의 청년운동 단체 들을 하나로 묶는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해외 한청련의 목적도 재미 한청련의 목적과 대동소이하였고 사업 활동 내용 또한 동포사회 조건이 특수한 재유한청을 제외 하고는 거의 같았다. 나는 해외한청련을 결성함으로써 82년에 세운 해외운동 10년 계획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였기 때문에 기뻐하면서도 일본지역 청년운동 단체를 참여시키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재유한청은 94년에 해체되었다.)

 

제2차 국제 대행진의 포기

 

91년 봄이 되자 한청련,한겨레와 국제연대위는 89년 7월에 국제평화대행진을 마치고 판문점에서 개최한 국제평화대회 때 2년마다 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선포한 대로 제2차 국제평화대행진을 7월에 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국제연대위는 맨 먼저 남. 북부조국 정부와 주한 UN군 사령 부에 제2차 국제평화대행진을 협조해 주고 행진대의 판문점 통과를 허용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그 서한에 대해 남부조국 당국에서는 회답을 보내오지 않았다. 주한 UN군사령부에서는 “남북 양 정부 당국이 동의하면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의 지극히 외교적인 회답을 보내왔다. 북부조국 당국에서는 비공식적으로 “89년 행진 때와 달리 지금은 범민련이 있다. 따라서 국제평화대행진은 범민련의 주최로 해야 한다.”는 내용의 회답을 했다.

국제연대위는 많은 논의를 거쳐 대표 한 사람을 파견해 “국제평화대행진은 Korea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행사이고 국제연대운동이다. 범민련이 주최가 되면 민족 내부 행사,민족 내부와 운동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국제평화대행진은 국제적 관심을 끌지 못할 뿐 아니라 행진에 참가한 타민족형제들의 의미도 민족내부 행사에 초대된 외국손님의 의미로 축소되어 버린다. 따라서 범민련이 후원한다면 몰라도 주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북부조국 당국은 범민련 주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많은 고민 끝에 한청련,한겨레는 5월에 임시대표위원회와 중앙위원회를 긴급히 소집하여 그동안의 진행 경과를 검토한 후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범민련이 주최하는 국제평화대행진은 반대한다. 한청련,한겨레는 국제평화대행진에 참가하지 않는다. 대신 조국의 분단 문제,미군과 핵문제,휴전체제와 군사긴장 문제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한 문화선전대를 만들어 서유럽과 호주에 파견한다. 문화선전대 활동은 국제연대위의 이름으로 하고 대내적으로는 해외한청련 연합사업으로 한다. 문화선전대는 호주,유럽,미국의 3개 지역 한청련 회원들로 구성하고 공연물 이름은 ‘해방의 소리’로 하며 모든 경비는 해외 한청련과 한겨레에서 부담한다.”

그러한 결정을 내린 후 우리들은 국제연대위에 회의 결과를 설명하여 동의를 받았다. 국제연대위는 북부조국 당국에 행진 포기 결정을 공식 통고하고 ‘해방의 소리’ 순회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국제연대위와 해외한청련은 3개월간의 준비 끝에 정승진 문화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문화선전대를 파견했다. 문화선전대는 91년 9월-10월에 걸쳐 50일 동안 ‘해방의 소리’를 가지고 유럽의 룩셈부르크,독일,프랑스,네덜란드, 벨기에,아일랜드 등 6개국 10개 도시에서 17회, 호주의 멜버른과 시드니에서 4회의 공연을 했다. 밑반찬까지 야무지게 준비해 간 ‘해방의 소리’ 문화선전대원들은 현지에서 구입한 중고 밴을 타고 다니며 밥을 직접 해먹는 등 고생을 하면서 우리 문화운동사상 최초로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장기간의 문화선전 활동을 자랑스럽게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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