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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5-송백회를 만들다2018-12-27 1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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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황석영과 여성운동가 조직-송백회

구술자:  이야기 하기 전에 여자들을 동원할  있었던 배경은 인제 설명하는데. 그때  번째 징역을 살고 나왔더니 고생했다고 그래가지고 구협 동지들이나 시골로 강진으로  있으니까 찾아와서 이말저말 부탁을 하는 거에요.  가지 부탁을 하더만. 긍게 여러사람이 이야기를 한디 일치된 것이 두가지여. 하나는 지금 해남에 장길산을  황석영씨가 왔다. 장길산을 감옥 안에서 재밌게 읽었거든요. 연재가  끝나진 않았지마는. 그런데 자지들이  바로는 이거는 원광석이다. 이걸 갈고 닦을 사람이 없다. 야생마 같은데 갈고만 닦으면 멋진 보석이   같은데.  일을 맡아주라 그러야. 근디 그것이 첫째고.  번째가 인자  안에 있는 동안에 여자들, 여성들, 여성운동단체를 만들어보려고 남편들이 이제 여러차례 시도를 했던 모양이야. 결혼들을 하게 되고 그러니까 왜냐면 자꾸 갈등이 생기는 거야. 근데 이건 의식의 차이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들도 모여서 나름대로 학습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래가지고 의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그러기위해서는 이제 모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차례 시도를 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런데 모이면 남자들 성토장이 되고 남자들에 대한 정보교환장이 되어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남들은 발을 한번 닦는데 당신은 일주일에 한번밖에 안닦냐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쓸데없는, 생일 선물 누구는 줬다는데 당신은 뭐했어? 그런 엉뚱한 쪽으로 튄다는 거에요. 그래서 실패했단 거에요. 그래서 나가지 말라고 해가지고 이렇게 다시 . 그러니 날더러 여성들 조직  해달라는 그것이 대표적인 두가지. 알았다 그래가지고 황석영씨는 해남으로 찾아가가지고 하룻밤 이야기해가지고  휘어 잡았죠.  나름대로 황석영씨하고 저녁  이야기를 해보고  사람이 서울 무대에서 활동하다 내려왔기 때문에 서울지역의 재야 , 문화, 문학 예술 분야 이런데 발이 넓어요. 우왕꾼이라. 그래서 이제 구라도 좋고. 그래서 , 전남 운동과 서울 운동의 교류협력하는데 있어서는  양반이 상당히 역할을   있겠다 판단이 되고.  지역의 운동에도 많은 도움이   같다고 판단이 되고. 앞으로 이양반을  접촉을 해야겠다. 죽어라고 계속 그걸 그렇게 해나갔죠. 황석영씨하고 서울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황석영씨가 성깔이 괴팍한데다가 변덕이 심해요. 넘의 말을 이상하게 하는데. (면담자 웃음) 성격이 쎄요, 상대적으로. 인제  꼬라지,  죽끓듯한 변덕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데 나는 그걸  각오를 했기 때문에 장점도 강점도 많은분이고 재주도 좋은 분이고 정치감각도 뛰어난 사람이에요. 어쨌든 그렇게 황석영씨 문제는 풀어갔고.  다음에 여성들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그래가지고 인제 그때 당시에 여성운동 관계 서적이라는  신비의 여성, 여성 시리즈가 몇권 있었어요. 지금 이름도 잊어버렸는데, 자유로운 여성  여성 어쩌고 하여튼 그런 책들이 어서 구해다가 보고 하이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너무 많고, 에이씨 내식으로 하자 그래갖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한 일종의 결집. 이런 이렇게 내세우고   털양말짜기를 시작했어요. 털양말짜기 이게 뭐냐면 민청학련 때도 경험했고  번째 들어갔을 때도 경험했지만  시월 정도 되면 벌써 재소자들이 동상에 걸려요. 콘크리트 건물이라 여름에 달아오를 때는  견딜 정도로 덥고, 춥기 시작하면 냉해가지고 온기가 없으니까 햇빛  받고 약해져 놔서   인제 여지없이 인제 동상에 걸리는데, 그런데 이거 나일론 양말 이런 것은     신어도 이차가운 기를  없애요. 그런데 내가 그거 좋다고 털양말이 한겨울 동상 걱정 없이 넘어 가니까 발이 따뜻하니까 몸도 좋고. 그래서 내가 나와서 인제 알아봤더니 인제 그걸 사는 거냐 그랬더니 털양말을  데가 없다는 거에요. 짜야한다고. 그래서 내가  털양말을 가지고 가방에 담고 다니면서 신고 다니던  갖고 교도소에서 겨울나기가 얼마나 힘든가부터 동상약이야기 하다가 털양말 이야기 끄집어내서 이놈을 하나 신어노면은 한겨울 동상도  걸리고 넘어간다. 기가 막힌 거다. 그게 빵은 한겨울 동상도  걸리고 감기  걸리고 넘어간다. 기가 막힌 거다. 그게  넣고 사과 넣고 그런거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지. 양말하나 넣어준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그래가지고 양말좀   없냐, 양말  짜서 넣자. 그럼 여자들이 대부분  한사람도  안할란다 하지를 않아. 그런데 하긴 하겠는데 양말짜본 적이 없다 이거여. 어떻게 짜는지를. 그러믄   아는 사람들이 있을  아니냐 이거 보면 모르냐,부터 해가지고 어찌어찌 하다보니까 누가 짤지를 안대. 어떻게 짤지 서로 연결을 해갖고 짜는 기술을 배운 거예요. 그럼 처음에 내가 ,  순모를 사다 줬어 이제. 사다줬더니 다음부터는 이제 털실 필요없다, 우리가  샀다고. 그래가지고 나는 처음에 광주교도소에 있는 장기수부터 정치범들  40 있었을 땐데. 여기만 생각을 했어요.  줄라고. 그래서 자기 샂ㄱ했는데, 이를 테면광주 운동권에 관계된 사람 부인들  애인들, 그다음에 YWCA 이해신 돌아가신 이해신총무부터 김경천 간사부터 안희옥 총장  이런데 간사부터 아예 일하시는 여자분들, 안성례씨를 비롯해서 저쪽 기독병원 일하시는 분들 하다못해 목포에 한산촌 결핵 요양원이 있는데 여기까지도 부착을 하고 황석영씨 부인부터 시작해서  목사님들 부인부터 천지사방에다 인자  여동생부터  교회운동 하는 기독청년회 여사들부터 이렇게, 그래서 어떻게 인자 짜고 있으면 같은 직장 동료가 뭐하냐, 그럼  자랑을 하는거죠. 의미 있는 일을 하니까 이래저래해서 짜면 가만히 들어보면, 양심수들이 어쩌고 저쩌고 감기도  걸리고 나도   해볼까 이런식으로 해갖고, 나중에 147갠가가 나왔어요. 147컬레, 실값만 해도  많은 건데 나는 인제 딸랑 하나 인제 황석영씨 부인 지금은 이혼해갖고 계시는데, 빨리  짜주라 그래갖고 완성된  들고다니면서 봐라고 말이야 인자  이렇게 해가지고 딴딴하게 짜게 만들고 그렇게 해서 많이 짰어요. 그래서   놈을 나를 준다고 가져가라고 그래서. 다음단계로  것을 나한테  것이 아니라,    일날 광주교도소 앞에서 만나자.  자기가   가져오고 주민등록증 가져오라고. 직접 넣어라, 그러면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죠. 감옥 안에 있으면서 남자들이 와서 빵사고  넣는거하고 여자들이  놈하고  다르다. 받을  기분이 다르다, 그랬어. 그래갖고  여자들이 넣으면 냄새도 다르고 향수도 있고,  어쩌고 저쩌고 기분도 좋아하고 그러니까 그리 오라고 그래가지고 교도소에서 인제 내가 미리 장기수들 하고 정치범들 명단을 입수한 놈을 놓고  명당 다섯 명씩 고르라고. 그래갖고 골라서 나는 정씨니까   어쩌고 다양하니 그렇게들 해갖고  이름들 넣게 하는 거죠. 자기 이름으로. 그것이 이제 송백회 결성 1단계작업이었어요. 그래갖고 남은 놈하고 전북 교도소 전주에서까지 전주교도소 전주교도소까지인자 소문이 나니까 보내주라고 그래가지고 보내고 그랬는데, 고걸 끝내고 나서 인제 그때가 인제 추워지기 전이거든요. 추워지기 전에 넣어야 한다고 그래가지고 넣은 거것이 그때가  10 달엔가 넣었을 거에요. 그러고 인자  생산자 대회 밥일을 하는 과정에서  인자 묶에 세울  있겠다 판단해서 남자후배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 힘도 동원할  있게 되니까 자신이 서서 내가 밥을 하겠다. 그래갖고 인자 모든 책임을 준다 그러더라고. 근게 인자 여자들만 그때만 해도 송백회라는 조직을 만들기 전잉요. 만나갖고 이야기를 한거에요. 이래저래해서  지식인 운동과 민중운동, 농민운동과 여성운동, 청년 학생회운동의 연대차원에서 연대연합을 위해서 이번에 우리가 이사람들에게 여덟끼 따뜻한 밥과 국을 맛있게 끓여줘야한다. 그런데서 신뢰가 싹트는 거지, 시위한다고 같이 악스고 그런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는 말이야. 깊은 신뢰는 이런데서 오는 거니가 일하자, 여자들이 나보고 하이고   저질러 논다고 말도 팔백명 밥이라는   똑같은 소리하는게 남자들이 했던 이야긴데 거기다 덧붙ㅇ이더라고 여자들이. 깍두기 담을라믄은 얼마나 필요한지 아냐고 남자들은 묻는디 여자들은 뭐라고 하냐면 무가 리아카로  개가 되냐부터 다라이가  어쩌고 저쩌고. 그래좋다 그럼 어려우니 만큼 의미가 큰거 아니냐, 우리가 하면은. 그러니까 같이 하자. 그라믄 인자 마당에 파같고 솥단지를 인자 솥을  솥은 내가 구한다. 국통은  구한다. 왜그냐믄 집에가믄 다라이다 있지 않느냐. 목욕한다고. 집에 집집마다 있는 솥단지부터 빌려오면 될거 아니냐. 그러믄 거기서  나무는.  학생운동 출신중에서 여그 전남전남에서 대학다닌 애는 아닌데 영석이라고  친구 지그 아버지가 제재소를 해요, 광주에서. 제재소에 가면 인제 나무 목재 빼내고 남은 껍데기 피죽인가 그런것들이 많이 있어요. 고거 리아카로 실어나르면 되지 않느냐. 고놈 때믄 된다. 그릇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봤더니 대인시장 같은데 가면 하루에 얼마씩 해서 수저 젓가락 국그릇밥그릇전부 빌려준. 그러다 분실하면은 배상하는 거죠. 하여튼  책임질테니까 하자. 그래갖고 인자 설득했더니, 그라믄 이미 그렇게 약속해브렀다. 해보자고. 한사람 두사람 이렇게 끄집어 내고 남자들 , 여자들 앞장서서 남자들 잔심부름 다해. 실어나르고 리어카에다 피죽 실어나르고 대인시장에 가갖고 이것저것 사는데 재밌어요 인제. 영수증이 필요한거 아닌가 돈을 받았으니까 증거가.  영수증이 어딨어, 꼬추장에다가 도장 이거 해갖고 아줌마들거 받고  거름종이 찢어가지고 꼬추장 그래갖고 얼마 그래갖고 일벌렸다고 난리여. 다라이들 밑에다가 문병란, 쓰고 그래갖고 괭이로 북동성당 앞에 마당에다 파고 솥단지하고 국단지하고 걸고, 국솥걸고, 하여간에 난리를 꾸몃어. 그래가지고 밥을 하는데 밥국을 하는데 그릇 씻을  내가 앉아서 인자 여기서는 대충 붓고, 여기서 대충해갖고 여기서 비누칠하믄 넘기믄 행구고 이런 식으로 그때 인자  동원이 됐어. 43명이 동권해서 인제 빵잽이들부터 대학후배들까지 전부다 동원해갖고  근데 인자 국통 들고 난리다가 잘못해서 손이 빠져갖고 엄지발가락 빠져브렀는데 하여간에 그래가지고 첫날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 여관에서 자고들 여인숙에서 자고 왔는데 밤에 눈이 와브렀어요. 첫눈이 나무가  젖어블고 그랬지. 근데 그만큼 일찍도 나갔어. 젖은 나무막 불어가면서 밥을 해가지고 농민들이라 일찍 일어나요. 일찍들 . 밥이 예를 들어 7시부터 8시사이에 먹는다 그러면 6 경부터 와브러. 오는대로 이미 준비 되는대로 해갖고 따뜻한 국에다가 인자 간부들이 자기들끼리 회의하고  인자 오늘 큰일나븟다 인자  제때 안될  같은데 눈까지 와브러가지고 그라믄 우리 회의 일정에  차질이 있나 자기들이 온거예요. 와서 보니까는 여기저기서 있고아이고미 아직  안됐고만. 그래와서  보니까 이미 밥다 먹었다는 거에요. 자기들이 늦게 온셈이 되는거지 인자. 그래갖고 인자 놀라고. 여덟  밥을 받았는데, 안에서 밖에서 싸늘했었지 추워가지고 고생한 놈들 악쓴다고 여덟끼 따뜻한 밥주고, 국주고, 남은 쌀가지고 떡을 만들었어요. 인절미를. 그래작고  인자 마지막 끼니 인절미를  나눠주고. 한푼 안남기고 한거니까. 그전에 인자 도시락 깍두기 담고 여자들 난리 꾸미고 남자들은 인제 씻어 날리고 실어 날리고 잔심부름 다하고 설움까지 당했는데 여자들한테. 인자 그걸 끝내고 나서 자연스럽게 우리 모여서 뭔가를 앞으로 해야 되지 않냐 그래가지고 송백회라고  거에요. 그것이 인제 내가 맨날웃으면서 조선 엠네스티라고 그랬는데, 옥바라지, 근게 양심수뒷바리지하는 조직원들 이렇게 뜬거에요. 그것이 인제 11 말인가 12월인가 하여튼 78. 그래가지고 인제 거그 현대문학연구소 78 6월에  79년이구나 현대문학연구소. 나중에 인제 송백회 사무실 겸해서 현대문학연구소에서 쓰게 됐는데  현대문학, 송백회. 인제 송백회 결성하고,  다음에 거기 인자 교사들이 여자교사들이 중고교 교사들이 여러명 들어왔어요. 와이에 있는 정명화부터 이윤정이 거기도 인제 나중에 송백회  다음에 와이로 들어갔는데.  다음에 인제  강목사 사모님 초대회장 맡어쌌고 하여튼 운동관련 부인들은  아내들 다들 고생을 하죠. 교사들이  들어왔는데, 인자 송백회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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