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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6-탄압국면22018-12-27 11: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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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탄압국면 2

구술자:  다음에   두가지  이야기 해브러야 마무리가 되는데 하나는 이제 내가 돌아가선데, 민청학련사건 2․15조치로 석방돼서 나왔는데, 구속자들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나온 사람들이 있어 재판에 안가고 서울구치소까지 갔다가.  사람들이 이제 대표적인 것이 이제 이현택이라는 농대생 친군데,  다음에 인제 김윤봉, 지금은 이름을 바꿔서 윤환이라고 윤봉인데, 둘다 농대생이여. 둘다 등사기 이걸  못해갖고 이거 민청학련 이거 보면  나오는데,  지기집  빌려주는 애가 윤봉이여. 아무것도 의식도 없는 주먹쟁인데   빌려줬다는  때문에 서울 구치소에서 여기까지  븐거지.  다음에 이제  이현택이라는  윤봉이를 우리한테 소개해준 친구고, 그라고 인자 등사를 처음 해보니까 기름 배합을 잘못해갖고 아물해도 글씨가   나오는거여. 글씨가 뚝뚝 끼고 그라고 날새기를 하고 그랬는데 그때 인자 내가 먼저 해볼게. 달려 들어가지고 한번  해봤던 애야.  친구도 들어가브렀는데.(웃음) 그라고 인자 서울 구치소에서 기소유예로 나왔는데, 구속되자 학교에서 제적을 해븐거여. 같이. 우리하고 같이. 그런데 인자 2․15조치로 나오는데 75년에. 복학을 해줘야 하는 거야 복적을 이놈들이 학교에서 한해주고 있네. 그래서 내가 학교로 가갔고 이름이 무슨 관식 하여튼 새끼 이름이 생각도  나는데 총장이. 총장실 난리가 나브렀지. 나쁜 놈의 새끼들이 없다고. 인제 도대체 형도 확정되기 전에 짤라븐 스승이라는 것들이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냐부터 시작해서 아니 죄가 없으니까 기소를    아니냐 그럼 됐지  복적을  시켜주냐, 인자 우리가 정보기관에 알아봤더니 정보과애들이 누구누구까지를 제적하라 지시해  적이 없다는 거여. 알아서  거지. 그래갖고 사정없이 퍼븟었어 나쁜놈의 새끼들이 없다고.  인제 이놈들이 대뜸 복직을 시켜갖고  친구들은 졸업을 했다고. 인제 나는 아직도 제적을 제적생이지만 어쨌든  학교당국하고 그거하고 부딪힌  있었고,   다음에 내가 아까 이야기를 여기까지 해브러야겠다고 생각했던  중에 하나가.

면담자: 현대문화연구소는 언제 만들어진 건가요?

구술자:  그것은  번째 나오는 이야기여.  번째 징역살고 나와서 이야기여

면담자: 구속자협의회는요?

구술자: 구속자협의회는 인자 첫째 나와 갖고 4 달에 만든거고. 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

면담자: 카톨릭 농님회  이런 것도 .

구술자: 그것은 아니지 그것이 이제 광주지역 전반에 운동하고 연결된 부분인데 함평고구마사건이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의 연결은  번째. 갔다 나와서 이야기여.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관련된 부분은  그렇게 하고. 4 달에 그렇게 했고, 그렇게 했고  모은다고 이런다고 뛰어 다니던 .  다음에 인자 당시에 남주가  경찰서에  골목에 골목에 카프카서점이라는  열었어요. 카프카 서점. 김남주가 그래가지고 당시에는 사회과학서적이 없을 때라 책장에가 놓여있는게 전부 창비, 신서, 그래가지고 시집들과 전환시대의 논리 등등 인자 그런거 들이겠지. 그래서 그런 책들 놓고 팔고. 긍게 인자 운동권에서는  책이라도 보는게 숨을  쉬는 길이었지. 그런데 남주가 원체 장사능력이 없어 노니까 원체 돈하고는 무관한 사람이야. 전생에부터 이미 경제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아부지한테  받아다가 피땀 흘려    까먹어 버렸지. 망해브렀지. 그란디 거가 인자 카프카서점이 아성이었지 맨날 거기서 장기두고, 인자 나는 인자 그라고 인자 월부책 받을  후배들 방에서 장기나 두고 앉어 있고 속없는 새끼들 그랬지. 어쨌든 광주지역에  탄압분위기 속에서 그러면서도 꾸준히 학내 서클활동을 해쌀라고 서클들을 여러  만들고, 그렇게 해서 고리 나가 븟고.

면담자: 선생님 여기가 75년도까지 이야기죠 이게.

구술자:  다음에 이제 기독교 학생 총연맹.  부분인데 서울에서 인제 나상기 선생님이 거가  뭐야 KSF 기독학생총연맹이라고 그러기 거기 활동을 했었는데, 민청학련관련자야. 나상기도 여기 광주출신이고, 근데 나상기가 와서 부탁을 해가지고 인제 광주에도 기독학생운공을  하고 싶다. 그래서 인제 몇몇 후배들을 거리 Ep 줬지. 그래갖고 인제 광주에 인제 기독학생 총연맹이라는 단체가 생기면서 교회운동이, 학생운동 대학에가 교회운동의 시작계기가 됐고, 하여튼 대학에는 하여튼 여러 갈래의 서클들을 만들어갖고 여학생들도 많이 참여하게 만들고, 그래가지고 후배들을 많이 키워냈지. 클럽활동 하고 옥바라지 꾸준히 하고,  번다고 엄한 짓거리들 많이 하고,  그때 비참했지. 클럽활동 하고 옥바라지 꾸준히 하고,  번다고 엄한 짓거리들 많이 하고,  그때 비참했지. 정말 비참했지. 비참했고,   다음에 인제 75  이야기까지 오늘 마무리해야겠구나. 인자 해수욕장 이야기가 나오는데, 8월이  가지고 7? 탄압 상황이라는 , 교도소에서 얻은 피부병이 밖에 나와서 병원에 다니면서 아무리해도  낫는 거여 이제. 교도소 피부병이 아조 고약한데, 근디   이게 알아보니까  바닷물에 가서 해수욕을  하고. 모래찜질을 하고  그라면 낫는다. 그래서 , 그럼 가자 그래가지고  우리가 수영복이 있어 . 그때만 해도 인자 레저 그따위 소리 단어도 모를 땐데,  인자   마리, 산채로 사서 들고, 솥단지, 냄비, 뻔하지 그때 살림들이. 그라  우리 스타일이 그래갖고  남들이야 보듬 말든 그래갖고 인자 모여드는데. 버스회사에서 형사들한테 연행돼브렀어.

면담자: ?

구술자: 그때 상황이 얼마나 인자 황당했냐를 이야기 하는 거여. 그래갖고 광주경찰서 지금 동부경찰서로 끌려갔어요. 인자  취조를 하는거여. 누가  먼저  제안을 했냐, 자금은 어디서 나왔느냐,  주도자가 누구냐, 이런  사람이 개0끼들아 패브러 맞아븐거여. 물으면 답을  새끼들아 다른   자격 없어. 아까 인자 변호사도 뚜들어 맞는 판에  그래갖고   시간을 시달리고는 나가라는 거여. 나오니까  바닷가에  생각부터  생각이 아니라 와냐 기가 막혀 분거여. 떡심풀려블고. 그래갖고 그때 후배 자취방에 들어가 갖고 거의  시간을 전부  벽에다가 기대로 이라고 앉아서 교도소방에서 이렇게 이라고 앉었듯이 이라고  시간씩 앉아있었다. 서로 쳐다보다가 고개 도로 숙여블고.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에 답이 없는 거여.  이것 갖고 목숨 걸고 싸운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어디 하소연 할때도 없고,  법적으로 어떻게 어떻게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긍게  설명이  될건게. 아까 장준하 선생님 추모모임이야기하고 똑같은 건데. 이런 황당한 꼴이 어딨냐 이거지.  정도로 당하는데 그것을 신문지상에서는 하나도 다루지 못하는 거여. 다루지 못하고 그렇게 엉망진창인 상황 속에서 독심 하나 외에는 이걸 지켜낼 수가 없었어. 지켜낼 수가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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