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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7-항쟁이 발발하다2018-12-2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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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광주항쟁 발발과 피신


그러고 다시 연락하마고. 그래 가지고 그날 모임이 끝났는데  이틀 후에 17일날 밤에 기습을 당한 거예요. 그러고 나서 나는 인제   그대로 이미 준비 다하고 있었어. 목욕도 하고 문건들  사지도  치워버리고 집도  내가  곳에서 다니던 사람도 아니고 동가숙서가식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냥 이집 저집 갔는데 17일날 19일에 있을 농민시위, 대규모 시위에 맞춰서 준비하기 위해서 농민회 간부들이  광주로 올라왔어요. 구례 최성호씨부터 시작해서 함평 각지에서 올라왔는데 그래갖고  사람들이 인제 카톨릭센터 같은데서 모여 앉아서 구호, 피켓 포스터, 프랭카드 뭐라고  것인가 논의하고 학생들 학생들대로 연대 시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고.  문제 갖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 , 인제 연락이 왔어. 서울에서 서울역 회군 이후에 전국 총학생단들이 전부 이대에서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거기를 인제 신군부가 급습을  거지. 그래서 많이도 잡혀들어갔는데 용케 관현이랑은 피했다고.  소식을 들었지.  이놈들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그날 저녁에 나는 농민회의 간부들 최성호씨하고 누구 세명하고 정용화  후배하고  농민운동 간부들이 왔는데 광주에서 돈없는데 여관에서   없을 테고 그러니까 문병란 선생님 집이 있으니까 문선생님 집가서 잡시다 그래가지고 농민회 간부  세명하고 용화하고 나하고 문병란 선생님 집에 갔어요. 가서 그때 12시가  되었을 땐데, 11시가  넘었을 텐데 티비를 보고 있는데 그때 인제  미스 월든가? 여자들 수영복 입고 왔다 갔다 하고 그럴 때인데 아니 후보를 선발할 땐가 하여튼 그거 비슷한 거였어 하여튼. 그래가지고 그거 보고 있는데 밑에 자막에서 계엄정국확대, 의회해산, 휴교령, 이게 나온 거에요. 그런데  전에 인제 전국  대학들이 만약에 휴교령이 내리면  다음날  시까지 돌멩이 들고  앞에 모인다 약속들을  했었지. 그런데 이제,  자막이 나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리는 거예요. 열두시 되기 전이여. 인제 광주에서 집에다가 전화 놓고 있는 사람이 문병랑 선생 송기숙 교수 황석영씨  사람 밖에 없었어, 당시에는. 그리고 텔레비전 많은 집도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흑밸 텔레비전지만. 우리야  집도 절도 없는 놈들이니까. 그라고 인자 전화를 받으니까 누구 잽혀갔습니다. 깜짝 놀라가지고 조금 있으니까  누가 전화하고. 그러니까 여기저기 연락하다가 전화가  거예요. 형님 지금 눈에다 불을 쓰고 찾고 있습니다. 누구 잡혀 갔습니다. 근데 형선이,  매제지.  매제는 사업하느라고 보성건설에 들어가 가지고 사업한다고 뛰어다니고 있는데 갸가 잽혀 들어갔다고 하고 김상윤이 잡혀갔다고 하고. 근데 나는   듣고도 사업하고 있는 놈을 잡아갈 정도면  잡아간거다. 기습 당한거죠.  이거.   앞에 캄캄해져불죠.  그냐면 기습을 예측을 못했으니까.   눈으로  새우고 새벽에 이제 집에서 빠져 나가 가지고 시내 용화 후배네 집에 가서 잤어요. 안전한 곳에 가서 동태를 살펴 보니까 엉망이지.  잽혀들어가불고. 전대 조대   없이 전부 접수되버리고 학생회 간부도 일부 도망가고 일부  잽혀불고. 긍게 인제 박살나분거야, 박살이. 아무 준비없이.  그때처럼 내가 후회스러웠을 때가 없었어. 왜냐면 나는 21일부터 25일로 봤지, 17일날 밤에 당할 것을 생각을 못하고, 기습에 대해서는 예측을 못했거든. 그래가지고 19일날 아침에 새벽에 빠져나갔지, 광주로.  인제 연락할 길이 없는 거야,  잽혀 들어가분 것은 파악되었기 때문에. 그때만 해도 전화도 없을 때고 전부  단칸방 자취하고 그랬는데 그래서 이제 나주로  가지고 나주에서, 도피하면서 몰려다니는 것은 바보짓이니까 용화는 어떻게 할꺼냐고 물어보니까 친구네 집에 돼지 키운다고 그럼 그쪽으로 가라 나는 일단 서울로 가서 보고 다음 대책을 논하자. 연락하마 하고 열차타고 서울로 향했죠. 가다가 아무래도 대전에서 내려가지고 대전 상황을 보고 올라가는 것이 좋을  같아서 대전에서  내렸더니 역에  검표하는데  군인들이  가지고 명단  들고 벌써 그러고 있어. 인자 나는 바보짓했지. 거기서. 인자 내가 아조 복학했다 제적당한 학생에다가 감방살이 해가지고 꾀죄죄 해가지고 학생같이  보여, 이놈들이 보면은. 혹시  몰라가지고 바보짓을 했지 내가. 명단 뽑아가지고 뭐라뭐라 하드라구. 쓸쩍 명단을 이라고 본게 당신 뭐야~ 그래서 아니, , (엉거주춤한 행동을 흉내내심) 그러니까 빨리 가라고. (* 일동 웃음) 그래가지고 나와서 보니까 차를  대가  대져있고 일부 수상하다고 생가하는 놈들 잡아다놨고  군데 들렸드니 다방 같은데 사람들이 말이 없어 말이. 조용해. 가라앉아가꼬 분위긱. 침묵. 아이구야, 이런 상황에서 서울 가봤자 사람 만날 수도 없것다. 도로 어디로 갈까 하다가 우선 도로 내려가는 기차를 탔어. 그런데 한참 타고 가는데  가방이 똥가방인데 하도 내가 동가숙 서가식이라. 손톱깎이부터 속옷   사전부터 시작해서 , 이빨쑤시개 등등 담은 가방을 항상 갖고 다니는데 올려놓고 이라고 앉았는데 저쪽 자리에가 저쪽 보고 이쪽 보고 맞보는 의자가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앞쪽 보고 있는 의자에 앉았는데 갑자기 어떻게 하다가 앞에 사람하고 눈이 마주쳤어. 이쪽보고 있는 사람. 어디서  얼굴이야. 얼른 고개를 숙이는데  사람도 ? 놀래는 표정을 짓더라고.  사람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나보다 나이는  많은데 궁리를 하다 보니까 목표를 내가 가끔 다닐  인제 버스 정류장에 내가 목포  도착하면 나와있는 형사야. 여기서  타면 연락하고 그러니까. 항시 감시당할 때니까. 아이쿠야. 근데 마치 이사람들도 주말에 어디 갔다가  거에요. 일행들이.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저쪽 보고 앉은 놈들이 여리 돌아보고 그래. 고개 숙이고 있으니까. 와메, 어떡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어쩌고 저쩌고 해쌌드만  사람이 일어나가지고 나를 이렇게 내려다보고 그러면서 , 복도를. 통로를. 거기 공안들이 타고 있으니까. 아마 이야기를 할라고 하는 모양이야. 휴대폰이 있으면 그때 진즉 끝나버렸지. 근데 그땐 없을 때니까. 그러니까 나도 꺼구로  사람들 있는 쪽으로 걸어나왔지. 입구가 그쪽 이니까. 왜냐면 인자 내가 고등학교  유도부에 있었기 때문에 낙법을  하니까. 여차해서 뛰어내려불라고, 영화에서처럼. 가방 놔둔 채로 지나오면서  사람들 얼굴   보고는  열고 나오니까 열차가 속도를 줄이면서 서요. 아이구야 살았다.  서기도 전에 뛰어내렸어. 내려보니까 장성역이야. 어딘지도 모르고 내렸어, 하여튼. 그대로 뛰쳐나가가지고 있는데  아줌마 한분이 애기 업고  잡을라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있어. 같이 갑시다 타가꼬 광주로 들어왔지. 그래갖고 운암동을 거쳐 내려왔지. 가만있어봐, 운암동인가 어딘가 생각 안나네. 들어와 가지고 검문 한번 거치고 나서 택시 갈아탔어요, 아저씨,  내가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임동 쪽으로 갑시다. 그런게  쪽에 난리났는데요. 왜요 긍게 거가  붙어갖고  쓸어부렀다고. 갑시다. 그래갖고 이제 임동 쪽으로 와가지고 8 독잔데 농대 다니는 후배가 있었는데   집으로 가가지고 그래가지고 그날  거기서 새고  다음날 낮에는 나는 쪽팔려가지고 도저히 인제 돌아다니지 못하니까 저녁부터 돌아다니고 있는디 MBC불타고 그럴때 시내를 갈고 다녔는데 연락을 누구한테 취해야지, 나는 시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도  동지들을 찾아내야 하니까. 그래야  준비를 하고  하니까. 아무리 연락을 할라고 사람을 찾아다녀도 없어. 그래서 문병랑 선생님 댁에 갔더니 거기도 아무리 불러도 없고. 알고보니까  지방으로 도망가부렀드라고. 그래 인제 의대 앞에 있는  동생 집에 갔지.  동생집에 갔더니 난리야. 옆집 대문 요만큼씩 칼로  파분 것처럼 그렇고.  동생은 집에서 난리고. 개죽음 당할라냐고 오늘  번이나 났다고.  사진 주라고도 오고. 옆집이 대문에  저러냐 한게 군인들한테 돌맹이 던졌던 사람이 도망오니까 군인들이 쫓아들어와가지고   아저씬데 들어가서  잠그니까  부수고 들어가가지고 이불 둘러쓰고 잇는 것을 대검으로 찔러부렀다고. 인제 그러면서 나보다 난리야. 벽장에  너넣고 잠가불고 나가. 한참후에 우리 작은 형님이 오시더라고. 한봉아 너는 지금 잡히면 무조건 죽음이다. 개죽음이다. 너도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빠져나가라. 그래갖고 인제 아침에 느닷없이 광장이 형님이  양복입고  조카 없는  여동생하고 같이 부부행세해가지고 빠져 나가가꼬 백운동쪽으로  가지고 거기서  택시타고 남평으로 나주로 이렇게 갔는데 그래가지고 이제 21일이지.


면담자: 21

구술자: 21 새벽에 광주에서 나왔어요. 그러니까 19  다시 들어왔다가 19  오전에 나갔다가 저녁에 다시 들어왔다가 21  새벽에 나간거죠. 그러니, 그런것들은 여기(『운동화와 똥가방 가리킴) 자세히  있어요. 그래가지고 21  나주에 있는데 차량시위대가 도착해가지고 나주경찰서에서 무기탈취를 해요. 그래서 그거 보고 광주로 다시 들어오기 위해서 인자 구두, 나갈  양복입고 두구 신은  구두 버리고 운동화로 갈아 신고 얼굴 가릴 수건 하나 사고 그라고 인제 버스에 올라 탈라고 하는데 광주에서  차량사위대에 목포에 있는 전남 민주청년협의회 목포 지부장이었던 김남표라고  친구가 느닷없이 골목길에서  손을 잡는 바람에 얼마나 놀랬던지. ,  여기에 있어? 자기도 쫓겨 왔다는 소리를 하면서 그래가지고  친구하고 둘이 차를 타면 저쪽에서 집중 사격을 받으면 위험하니까 걸어서 들어갑시다 그래가지고 남평까지 걸어왔죠. 그때 남평  다리, 건너기 전에 왼쪽에가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주막 비슷하니. 거기 앉아서 음료수 하나 마시고 있는데 헬리콥터들이 와가지고 월남전에서 많이 썼던 고구마같이 생긴, 흉악하게 생긴 , 와서 다시 건너편에 산마루에다가 특수부대들, 공수부대들 투하해놓고. 그러니까 도로 요소 요처를 그렇게 해서 장악을  거예요. 기관총 가져다가. 그래가지고  들어가 버렸어. 그래서 화순 쪽으로 돌아 그래서 그쪽으로 화순 쪽으로 도는데 요소, 요소마다 전부 군인들이 장악을 해버렸어. 벌써. 21 오후가 되면 그렇게 되요.  들어와 광주로. 다시 거기서 걸어서 세지지,  담에  뭐야 금정. 나주. 거리에서 길거리 정미소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영암으로 나왔다가 영암은  광주 진출이 어려운  차량 시위대들이  영암에서  잤어요, 그날 남쪽지역은. 강진으로 가서 인제 김용근 선생님이라고 고등학교 은사 집에서 자고 거기서 용화 만나고. 거기서 다시 광주 진입을 하자. 용화가 그래도 공수부대 출신이라 기대를 걸고 나왔는데 저수지, 거기가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위치를 모르겠어. 지역은  모르니까. 거기 저수지, 한쪽이 저수지 한쪽이 산인데 도로를  통제해놓고 차량시위대   잡아놓고. 두들겨 패고 있더라구. 어디 빠져나갈 길이 없는 거야. 다시  들어갔다가 5 27 광주 함락됐다는 뉴스 듣고 성전, 강진을 거쳐서 버스타고 8 검문 받고 순천으로 갔다가 부산이나 마산 쪽으로 빠질라고 했는데  보니까 검문이 엄청 심하고 그래서  되겠다 싶어서 순천에서 열차타고 서울로 가가지고 서울역 앞에는 완전히 ()들고 검문하고 있어. 그래 『어둠의 자식들썼었던 이철용씨 철용이  집으로 삼양동, 성북구 빈민촌에 있는  양반 집으로 갔어. 갔더니 이제 광주 후배들이. 한봉이형이 살아있으면 이리  것이다 해서 나름대로 도피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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