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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5-천사들의 도시, 음모, 비방, 의혹을 딛고2019-01-0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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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천사들의 도시

 

김동근, 김진숙 부부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나는 윤한봉의 밀항을 오디세우스의 모험에 비유하고 싶은 유혹을 자주 느낀다. 오디세우스는 10년 동안 지중해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윤한봉은 12년 동안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떠돌아다녔다. 칼립소의 섬을 빠져 나와 고향으로 가던 중 난파한 오디세우스를 구해 준 이는 공주 나우시카였다.

한국의 마산항을 빠져 나와 시애틀에 도착한 윤한봉을 맞이해준 이는 김동근의 아내 김진숙이었다. 김진숙은 덤불 속에 쓰러진 오디세우스를 발견하고 옷과 음식을 제공한 공주 나우시카아와 같은 존재였다. 말 그대로 생명의 은인이었다. 1981년 11월, 윤한봉은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윤한봉은 감사의 눈물로 작별을 고했다. 이역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키우던 토끼 한 쌍은 농장하는 한국인에게 맡겼다.


윤한봉을 품어준 로스앤젤레스의 보호자는 김상돈이었다. 김상돈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 만들어졌던 반민특위의 부위원장으로 친일파 청산에 앞장섰던 사람이었다. 경찰의 방해와 이승만의 탄압으로 반민특위가 아무 성과도 없이 해산된 후 김상돈은 반독재 투쟁에 뛰어들었다. 4‧19학생혁명 직후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 초대 시장으로 당선되었으나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시장에서 물러나고 감옥살이까지 한 후 1972년 도미한 인사였다.

미국 내 한국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고 있던 김상돈은 팔순의 나이에도 형형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가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가 된다며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인물로 존경받던 김상돈은 ‘적에게는 서슬 퍼런 맹장이요 동지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하고 아낌없이 내주는 사람’으로 불렸다.

 

윤한봉은 김상돈의 따뜻한 환영을 받고 그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윤한봉은 회고한다.

김상돈 장로님은 소탈하고 관대한 분이었다. 분은 나를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셨다. 토론을 할 때마다 내가 버릇없이 대들어도 항상 너그럽게 받아주곤 했다.”

김상돈은 1년 간 윤한봉을 품고 있으면서 교민 사회에 그를 소개해주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집회에도 데리고 갔다. 그는 김일민이라는 가명을 버리고 새로운 가명 김상원을 사용했다. 윤한봉이 자신의 가명을 김상원으로 바꾼 것은 먼저 간 광주의 동료 윤상원을 잊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로스앤젤레스는 ‘천사들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로스앤젤레스의 한인타운에 사는 교민들은 특이한 정신적 질병을 겪고 있었다. 남북 분단이 낳은 집단적 분열 증세였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먼저 의심한다. 저 사람은 누구 편이냐? 대한민국 편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편인가?


역시 김상원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밀항 사실을 의심했다. 한국정부로부터 수배를 받은 정치범이 마산항을 빠져나와 미국에 입국하다니! 그때 일본의 월간지 《세계》가 윤한봉의 밀항이 의심스럽다고 보도했다. 의혹은 증폭되었다. 안기부의 요원이라는 음모론도 떠돌았고 북에서 온 공작원이 아니냐는 황당한 이야기도 돌았다.

윤한봉을 이해해준 사람은 치과의사 최진환이었다. 최진환은 강력하게 윤한봉을 옹호했다. 그는 윤한봉을 만나 광주민중항쟁과 밀항에 관련된 이야기의 전말을 들었다. 어느 날 밤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상원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격론이 나왔을 때 최진환은 강력히 주장했다.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어온 투사가 맞습니다. 확실합니다.”

교민들 사이에 신뢰가 깊었던 최진환의 단호한 발언은 원로들의 싸늘했던 시선을 다소 완화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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