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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도 차가운디2018-12-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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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농민회에서 윤한봉에게 부탁한 것은 참석자들의 숙소 마련이었다. 준비된 돈은 빤하니 싼 곳을 얻어야 했다. 계림극장 뒤에 창녀촌 비슷하니 급이 낮은 싸구려 허름한 여인숙이 많았다. 윤한봉은 여인숙을 뒤져서 빈 방을 잡아 몇 명씩 잠자리를 분배해 주었다.

숙소 배정을 마친 후, 더 해줄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8백 명의 여덟 끼니 도시락을 해올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순간 떠오른 생각은 11월 추위에 차가운 도시락을 먹이면 안 된다는 거였다.


“날도 차가운디 고생하는 농민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야제, 어떻게 도시락을 먹여요? 차라리 내가 밥을 해줄게요. 식당에 맡기면 아무리 싸도 절반은 이익을 챙겨갈 거 아뇨? 재료비만 주면 내가 청년학생들 동원해서 맛나고 따듯한 밥을 해 줄테니 걱정 마시요.”


윤한봉의 제안에 다들 어이없는 투로 되물었다.

“윤한봉 씨, 밥이나 지을 줄 알아요?”

“나도 중고등학교 때 형, 동생들하고 자취를 했는데 밥을 왜 못해요? 아무 걱정 마시쇼.”

다들 웃어댔다.

“자취가 팔백 명 밥하는 것하고 같으요? 팔백 명 밥하려면 솥이 몇 개나 필요한 줄 아시요? 그릇하고 숫가락 젓가락은 또 어딨어요? 우리 행사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식사인데 식사 시간 못 맞추면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해요. 어떻게 책임지려구?”

모두들 반대했지만 윤한봉 한 사람의 고집과 설득력을 꺾지 못했다. 식사시간에 일 분, 일 초도 늦지 않게 따뜻한 국과 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니 함평고구마 투쟁 때 그의 정확한 실천력을 보았던 여러 농민들이 거들어주었다.

“윤한봉 씨라면 믿을 수 있응께 한 번 맡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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