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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정 많은 형님’이었다2018-12-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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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윤한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맨 먼저 하는 말은 ‘인정 많은 형님’이었다. 밥을 못 먹는 후배들을 보면 밥값을 쥐어주고, 고향 갈 차비가 없는 후배를 만나면 차비를 쥐어주고, 담배 값이 없는 후배에게는 담배 값을 쥐어주는 형님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후배 김정길의 요양을 위해 월부책 장사에 나섰던 형님, 이웃의 불우를 그냥 보지 못하는 눈물 많은 이가 윤한봉이었다고 회고 한다. 광주일고 후배로서 고구마 싸움을 도왔던 황광우는 말한다.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자면 ‘오매, 짠한그!’하는 그 마음이었지요. 자기 가진 것 다 퍼줘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남도 민중의 애잔한 마음, 그 현현이 한봉 형이었습니다.”


보성의 바닥 농민으로 오랜 세월 함께 투쟁해온 후배 조계선은 이렇게 말한다.

“한봉이 형이 참 무지하게 원칙적이고 강한 사람인데 정이 그렇게 많아요. 남 안쓰러운 거 못보고. 나 농민회 열심히 하라고. 광주 올라오고 그러면 한봉이 형이 밥 사주고 차비를 줬지. 만 원을 주든 오천 원을 주든. 근데 이 돈을 보니까 자기가 어디서 만든 게 아니라 결국 자기 식구들 돈이더만. 막 찬조를 받고 그랬던 게 아니고 자기 식구들 성가시게 해가지고 뺏은 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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