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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운동화와 똥가방2019-01-0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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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와 똥가방


나의 생활은 민족학교 초기에는 좀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해결되어 85년부터는 별 걱정 없게 되었다. 생활이라 해봤자 가족도 없고 집도 절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통장이나 수표도 없는 데다 술도 체질이 특이해 전혀 못 마시기 때문에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되고 담배만 있으면 충분했다.

나는 조국에서 운동할 때처럼 가방 하나 달랑 어깨에 메고 운동화나 고무신을 신은 채 드넓은 미국 땅을 누비고 다녔다. 그 가방에는 손톱깎이,빗,이쑤시개,칫솔,치약,양말,속옷과 필기 도구,자료철,책 한두 권이 들어 있었는데 모두들 그 가방을 똥가방이라 불렀다.

각 지역 마당집이나 회원들과 후원자들의 집에서 자고 먹었다. 옷은 얻어 입거나 중고품 옷 중에서 골라 입었다. 신발과 담배 또한 주위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한번은 전남대 송기숙 교수님이 오셨을 때 나는 고무신을 신은 채 라스베이거스 관광을 시켜드린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환락의 도시와 고무신이 영 안 어울리게 보였는지 송 교수님은 돌아오는 길에 무조건 나를 신발가게로 끌고 들어가셔서 “운동을 하려면 운동화나 신고해라.” 하시며 반강제로 운동화 한 켤레를 사주셨다.

활동비 문제 또한 시간이 갈수록 회원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이 늘어 서서히 해결되어 갔다. 철따라 옷을 선물해 주신 분들, 자동차로 나를 태우고 다니느라 수고해 주신 분들,정성으로 대접해 주고 재워 주신 분들,그리고 활동비에 보태 쓰라고,용돈으로 쓰라고,보약을 사먹으라고 하면서 쓸 데 안 쓰고 절약 한 돈을 내놓은 전진호 형과 같은 분들,땀 흘려 번 돈,특히 사업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사간을 낼 수 없어 행사나 학습이나 회의에도 잘 나오지 못하고 가끔 나왔다 하면 피곤에 못 이겨 꾸벅꾸벅 졸 정도로 잠 안 자고 번 돈을 내놓은 강병호씨 같은 회원들과 후원자들 그리고 이름을 숨기고 몰래 내 똥가방에 돈을 넣어 놓곤 하는 고마운 분들 덕분에 나는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분들 덕분에 나는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조직 관리도 하고 사업 활동지도도 하고 학습지도도 하고 수련회도 하고 후원자 관리나 상근자들 격려도 하고 대중강연도 하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탄압 속에서 고생한 조국의 운동가들이 손님으로 오면 관광도 시켜드리고 조국의 옥중에 있는 친지들에게 영치금도 보내주고 건강이 안 좋은 조국의 운동가들에게 가끔 보약도 사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증명서와 영주권을 받다


나는 그동안 청년운동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가고는 싶었으나 신분 때문에 못 간 캐나다와 유럽과 호주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망명자 여행 증명서(Refugee Travel Document)는 88년 초에 나왔다. 유효 기간이 1년뿐이어서 1년이 지나면 반환하고 새로 발급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여행증명서였다. 여행증명서의 5쪽에는 여행 제한란이 있었는데 여행 불가 지역 세 곳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세 곳은 다름 아닌 쿠바,베트남의 공산주의자 장악지역,Korea 공산주의자 장악지역(Communist Portions of Korea) 이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까닭은 미국은 북부조국이나 베트남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공산주의자가 장악한 지역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은 후 독일과 스위스,호주에 두 번씩 다녀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행증명서를 가진 망명자는 일반여권을 가진 사람들과 달리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비자신청을 하자 캐나다 정부는 아예 입국을 거부했고, 프랑스는 최소한 2개월을 기다리라는 차별 대우를 했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어떤 나라는 정치 망명자는 테러나 납치 등을 하거나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어떤 나라는 다른 이유를 대며 아예 입국을 거부하기도 하고,또 어떤 나라는 망명자의 신원을 망명자의 본국과 망명 허가국에 알아본 후에 입국 허용 여부를 결정하기도 하고,또 어떤 나라는 시간을 끌어서 입국 자체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운동의 필요상 캐나다에 갈 일은 많은데 여행증명서를 가지고는 갈 수 없다는 걸 알고는 90년에 영주권을 신청했다. 영주권만 있으면 캐나다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92년 3월에야 영주권을 취득하였다. 그러나 영주권을 가지고 캐나다의 토론토를 몇 차례 방문하는 등 영주권의 혜택을 누리기 시작한지 1년여 만에 나는 영주권을 반납하고 말았다. 내가 조국으로 귀국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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