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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5-서명운동2019-01-0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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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서명운동


1988년의 4월이 되자 한청련은 한국에 있는 미국 핵무기를 철거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의 일환이었다. 회원들이 서명을 받기 위해 쏟은 노력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서명을 요청하면 보통 네 명 중 한 명 정도가 해주었다. 때문에 회원들은 14개월 동안 약 40만 명의 미국 시민들과 동포들을 접촉한 셈이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자동차로 다니고 밤에는 아예 보행하지 않는다. 때문에 직장 근무를 마친 회원들은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 낮에 시간이 있는 회원들도 사람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받아야 했다. 서명운동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회원들은 공연장, 식료품가게, 행사장, 대학 교정, 중고품시장, 공원, 해수욕장을 헤매고 다니며 서명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의 심인보 회원은 야간에 대학 교정에 들어갔다가 경찰에게 쫓겨나게 되었다. 어두운 대학 입구에 서서 밤늦도록 서명을 받아냈다. 이를 악물고 뛰어 다니더니 혼자서 4,000명의 서명을 받아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한청련은 독특한 시위문화도 만들어갔다. 타 민족 형제들과 함께하는 각 지역의 연합‧연대시위 때마다 풍물패를 앞세웠다. 그 뒤를 하얀 고무신과 하얀 농민복에 하얀 머리띠를 두른 회원들이 다양한 색깔의 독특한 농기들을 들고 따라가면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한청련의 시위대에 집중되었다. 타민족 형제들은 독특한 우리 시위대의 모습과 모든 잡소리를 제압해버리는 위력적인 풍물 소리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는 모든 시위 때마다 타민족 형제들의 독자적인 집회나 시위 때도 우리 풍물패는 빠지지 않고 초청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한청련은 집회 시위가 끝나면 주위를 깨끗이 청소했다. 우리 시위대는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캐나다에서도 급속도로 유명해져 갔다.

 

뉴욕 회원들은 사물을 앞세웠다. 먼저 공원에 나가 한바탕 사물놀이를 벌인다. 다음 구경꾼들에게 서명지를 돌린다. 다시 한바탕 사물놀이를 벌인다. 그 다음 서명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서명을 받는다.
영어를 잘 못하는 회원이 있었다. 회원은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수영복을 입고 누워 있는 미국인에게 그림을 그린다. 모래 위에 유선형의 미사일과 버섯구름을 그린 후 “쾅광” 하고 소리친다. 다시 미사일과 버섯구름 위에 힘차게 X표를 친 후 서명용지를 내민다. 이렇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기어코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야 말았다. 14개월 동안의 고생 끝에 받은 11만여 명의 서명지는 1989년 7월 미주평화행진 때 파란 보자기에 싸서 등에 짊어지고 가 미국 의회에 전달했다.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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