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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4-서울의 봄2018-12-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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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세 분석

 

인제 이 정세분석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는데. 내가 뭐 정세분석이나 뭐니 축산학과 다니던 내가 뭘 알아야. 운동도 갑작스 게 뛰어들게 됐고. 그런데 감방가고 감옥살이 할 때마다 이제 많은 걸 느낀 것이 뭐냐면 서울 출신들 그리고 교회 관련이 재판할 때건 교도소에 있을 때건 면회 오건 그러면 듣고 와서 소식을 나누거든. 완전히 신문도 못보고 라디오도 못 듣고 할 때니까. 궁금하죠, 바깥세상이 어떻게 될까. 근데 서울 사람들, 면회 자주 오니까. 그 다음에 교회 쪽. 여기는  인제 해외 창구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거든? 교회쪽이. 다른 사람들은 여권이나 비자를 받아서 미국이나 유럽에 갈 여력도 없고. 경제력도 없고. 여권도 안주고. 인자 목사 신부 이런 사람들이 주로 많이 나가니까. 근데 야튼 한마디로 말하면은 재판받거나 교도소에 있으면서 정세분석을 주로 서울 중심으로 하는데 내용은 첫 번째 들어갔을 때고 그러고 두 번째 들어갔을 때도 그러고 세 번째 들어갔을 때도 똑같애. 뭐냐면 낙관적이야. 굉장히 밝아. , ! 심지어는 새벽 3. 4. 그리고 곧 석방. 그래가지고 이번 삼일절에는, !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침) 이번 815에는,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침)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침) 인제 석방될 것이다. 그러고 인자 그렇게 미국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거예요


인제 알지도 못한 놈의 미국 상원 의원 케네디가 중심이 되가지고 한국인권문제에 대해서 결의안을 채택해서 제출을 했느니 뉴욕타임즈에 뭐라고 나왔다느니 카터 정권이 어쩌고 저쩌고 해가지고 박정희가 코너로 몰리고 있어가지고 어쩔 수 없고 뭐 여당도 동요하고 있고 뭐 그냥 듣고 있으면 신문도 없고 방송도 없으니깐 면회 갔다온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전부, 곧 이야, . 그런데 100% 그 말을 안 믿지만 내가 모르는 이야기니까. 솔곳하니, 나간다니 싫어할 사람 없지. 곧 좋은 세상 온다는데. 새벽 몇시라는데. 근데 아니나(*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짐), 맨날 헛방이야. 틀려. 그럼 인제 김 팍 세지. 우울해. 그런 날은. 한번 두 번 그런 것을 겪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 에엣, 나쁜 놈 시키들. 나쁜 놈들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엉터리들이지. 나는 인자 느그들 말 안 듣는다. 관심도 안 가져. 귀도 안 기울이여. 씨잘데기 없는 소리 하지마. ! 사람 김 빼게. 좋았어. 정세분석 내가 스스로 하겠어. 남이 해 놓은 거 듣고 앉아서 고개 끄덕끄덕 하고 기대 걸었다가 망신사고 그러지 않겠다. 그래서 정세분석을 내가 스스로 하겠다. 그런데 인제 내가 무슨 사회과학을 공부했던 놈도 아니고 내가 무슨 그런 쪽에 오랫동안 운동권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유신 쿠데타 때문에 갑자기 끼어든 놈이. 그래서 뭐 정세전망을 했다가 이럴 것이다 했다가 틀려불면 또 나만 망신되고 똑같지. 그래서 인제 혼자서 연습을 했어. 그래가지고 대외적으로 발표를 않고 속으로 이렇게 될 것 같다. 저렇게 될 것 같다. 이것 보면 이거 이렇게 이렇게 되니까 아마 이럴 것 같다. 그래가지고 인자 맞는가 틀린가 확인을 혼자서 보는 거에요. 한 번, 두 번, 속으로 그걸 계속 하다보니까 상당히 인제 맞아떨어져. 그 재미라는게 남에게 말을 안했지만 내 스스로 아~여지 없이 정확히 봤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 먼저는 안해. 가만히 듣고만 있는 거야. 속으로. , 나는 저렇게 생각 안하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보는구나. 근데 누가 봐주면, 보자. 교수니 뭐 내 노라한다는 각 유명한 유명인사들, 서울서 내려 온, 모여 앉으면 주로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지. 그러니까 서울서 내려온 놈들이 완전히 지방 촌놈들 데꼬 앉아서 못 들은 이야기, 뭐 안국동 윤보선씨 집 안방에서 누가누가 만났는데 어쩌고 뭐 어느 목사가 유럽을 산업선교회 관계로 갔다 왔는데 뭐가 어떻고. 여기서는 도저히 못 듣는, 언론에도 없는 이야기니까. 언론에도. 그냥 혹 해가지고 촌놈들이 이라고 듣고 있는 거지. 그때 당시에 일반적인 거였어. 정보의 집중이라는 게 권력의 집중이거든, 바로. 인제 서울이 완전히 그렇게 장악하고 있었던 거죠. 촌놈들이 그냥 헬렐렐레 해가지고. ~미국의 무슨 인권목사가 왔는데 뭐라 뭐라.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조용히 남아서 이야기를 들으니까 미국이 어쩌고 저쩌고 상원의원 몇 명이 어쩌고 어쩌고. 내 이야기하고 틀려. 그럼 인제 누가 들어맞는가 보자. 한번 두 번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고. 그것이 70년대 내내 지속이 됐어요


긍게 내가 79년에 내가 대외적으로 내가 처음으로 인제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될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했어. 그 동안에 내공을 좀 쌓아가지고 거의 맞았는데 그게 뭐 였냐면 이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란의 혁명이 성공했을 때 이야기예요. 인자 미국이 심어놓은 어떻게 보면 강력한 말뚝이었는데 근게 이제 빠진거지. 팔레비 왕조가 미국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무기 구입 계약을 맺어놨다는 것을 내가 신문에서 봤다고. 페르시아 영화를 꿈꾸는 인자 석유자본으로 팔레비가 이란이 완전히 중도 중심국가가 될 것처럼 야망에 불타있을 땐데. 글다보니까 이제 군사력도 엄청 강화하고 그러기 때문에 미국의 참 훌륭한 고객이지. 군수산업에. (*사모님께서 커피를 내오심. 면담자가 준비한 과자와 음료수도 꺼냄. 사모님께서 목소리가 쉬었다고 하시자 윤한봉씨가, 말을 이렇게 많이 해 본적없이 없어서 그렇다고 대답함. 일동웃음) 그래 인제 그랬는데 카터 정권이 들어서면서 주한미군 철수공약을 내세웠잖아요 인제. 단계적으로 철수하도록. 그러니까 정부에서 철수철폐 국회 결의안이 나오고 난리가 났지. 근데 나는 인제 딱 이란 혁명이 성공하자 주한미군 철수는 끝났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 왜냐. 인자 사람들이 왜. 상당히 운동권이 들떠 있었다고 인제. 미군철수에 대해서 주장을 했었던 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인자 미국 군수단의 입장에서 본다면 큰 고객이 하나 떨어져나갔다


그러면은 당현히 그걸 대처할 새로운 고객을 찾을거 아니냐. 인자 무기라는 것은 만들어 놓은 재고를 파는 것이 아니라 견본만 내놓고 주문을 받아서 생산을 해서 파는 거거든? 인자 발주 생산이라고 그러는데. 그게 이건 이미 팔레비가 살려고 해놨던 최신 전투기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걸 팔아먹어야지 않냐. 그라면 인제 결국은 어디다 팔 것이냐. 용도가 있는 곳에다 팔아야 햐난데 우리가 지도를 놓고 아무리 봐도 긴장, 군사긴장, 그래서 저놈이 때릴라고 하니까 너도 몽둥이를 들어라 식으로 어디 꼬드길 데가 있어야지. 그러다보니까 한반도다. 그럼 한반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그만큼 한반도에 전쟁 발발 위험이 적다는 것을 전제로 한 자신만만한 것에서 비롯된 것인데. 인제 무기 팔아먹으려면 어떤 북의 남침, 또 북의 군사력. 북의 남침이 높고 북의 군사력이 강하다라는 걸 강조를 해야 팔아먹을 수 있는 건데. 미군 철수하면서 북이 강하다 북의 군사가 강하다 무기가 현대화됐다 그러니까 사라 할 순 없는 거 아니야. 결국은 철수 한다고 공약은 했지만 그건 백지화 될 것이다. 그리고 이란으로 갈 무기 우리한테 다 온다. 하니까 에~뭐 어쩌고 저쩌고, 철수에 대해서 이의제기했던 장군이 소장인가 준장인가 한 사람이 보직 해임되어 버렸다고. , 카터한테 대들었다가. 주한미군 철수 반대하고 그랬다고. 그런 분위기였는데. 그 사람이 무슨 참모장 이었는데. 어쨌든 그랬는데 이제 나중에 아니나 다를까 미국 뉴욕 타임스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북에 갑자기 탱크 수가 막 인제, 예를 들면 천대에서 이천대로 나오고. 보병 사단이 전투 사단이 예를 들면 20개 사단에서 위성으로 확인한 결과 30개 사단이라느니 요상한 장난이 계속 나오면서 결국 끝에 가서 철수 중단!. 그 다음에 카터 와가지고, 오니까 뭐 인권 대통려이 오고 어쩌고 저쩌고 해가지고 뭐가 어쩌고 기대가 운동권에 잔뜩 들었는데 무기 팔아먹고 쌀 팔아먹고 갔지. 그때 이제 아~ 어쩌냐 내말이 맞았지. 그래가지고 드디어 내가 정세 분석을 대외적으로 하게 되고 인정을 받게 되었는데. 이제 그런 시각에서 부마항쟁이 나한테는 굉장한 의문이었던거죠. 왜 도대체 가능하지 않은 일이, 꿈에도 못 꿨던 일이 어째서 발생했는 가야. 그래서 이제 현장까지 가보고 그런 과정을 거쳤던 거죠. 그럼 내가 어떻게 뭣을 잘못 봤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고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제 아,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치심) 광주가 터진다.


광주항쟁을 예감을 한 거에요. 그게 3월 말 경이에요. 그래가지고 인제 확신이 딱 선 것이 아, 광주 터진다. 간단한 거예요. 이 전두환 일당 12 12 쿠데타를 통해서 1단계 성공을 시킨이들이 절대 물러날 수가 없다. 다음 단계로 간다.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군부가. 신군부가. 근데 이제 변화를 갈망하는 70년대 내내 민주화의 열망을 키워 온 각계각층 인제 그 절망의 분노가 있는 거죠. 절망하게 되면 분노하게 되고 폭발하게 되는데. 근데 그런 상황에서 광주가 가장 그 열망이 컸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어느 지역보다 컸기 때문에. 차별과 소외, 빈곤의 대표적인 곳이기 때문에. 여기서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충돌하고, 무조건 진다. 어떻게든, 피바다가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였죠. 그럼 이걸 어떻게 하느냐. 대책이 없어, 대책이. 왜냐면, 내가 내린 답이 막을 수도 없고 이것을. 그렇다고 이 항쟁을 지도할 능력도 없고. 광주 사람들이. 운동권이라고 하는 게. 그러니까 조직되지 못한, 봉기의 항쟁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광주가 피바다에 잠긴다. 그렇게 된다. , 우려가 몇 번을,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정리해보고 정리해 봐도 정세전망이 그렇게 나오는 거라. 인제 터진다. 그래갖고 광주는 피바다에 잠긴다. 그 불안 속에서 인자 80년이 된 거에요. 80년 초에 그 즈음해서도 뭐 불안 속에서 걱정만 할 수는 없으니까. 일은 해야겠다. 대표적인 게 이제 현대문화연구소가 중심이 돼서 적극 밀었던 게 극단 광대 조직사업에 이제 1월에 801월에 결성을 했어요. 박효선 중심으로. 인제 극단 광대를 만들었는데 하튼 풍물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인제. 그걸 일체 내가 투자를 해서 샀어. 연구소에 놔두고 활동하라고. 그래가지고 창단 공연을 하자. 그래가지고 인제 그때 당시에 돼지값 폭락으로 시골이 난리가 났었거든. 돼지 새끼를 팔러 갔는데. 하도 형편없는 가격으로 팔려고 하니까 집에 도로 가지고 오다가 사료 걱정 때문에 자기 집에서 내리면서 돼지를 차 안에 두고 내려버리고 막 그런 정도였으니까. 하도 똥값이 돼가지고. 이 돼지값 폭락 문제를 소재로 해서 하자 그렇게 한게 돼지풀이를 마당극으로 한 것인데 그때 3월에 YMCA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대단한 성공이었어요.


 농민단체들 초청해서 공연도 하고 얘기도 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랬고. 그런 강연회 등등 이것 저것 조직강화하고 인제 전남민주청년협의회 옛날 구속자협의회가 발전해가지고 한건데 전남 민주청년협의회 조직강화를 위해서 이를테면 감옥에 안간 사람들도 가입을 시켜서 박효선이. 나중에 항쟁지도부에 들어간 정상용, 이양현 이런 친구들이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어려운 시기라고 날더러 회장 맡으라고 해서 맡았는데 그렇게 하고 아주 다양한 조직강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그때 당시 광주 노동운동도 상당히 활발하니. 10.26 이후에 전국적으로 노동운동이 굉장히 활성화됐어요, 인제. 그래가지고 잘 아시겠지만 사복 봉기가 터지고 동국제강 부산 노동자들이 대 투쟁을 하고 이런 분위기가 있었고. 농민운동 쪽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을 못하고 주책바가지로 농민운동 지도자들 중에 일부가 광주같은 경우는 전남같은 경우는 서경원씨였는데 총선에 출마할라고 해가지고 그것 때문에 되게 싸우고 그랬는데. 우리는 인제 미쳤냐고 막고. 그럼 그 운동하는 사람들 다들 아 저 새끼들 정치 할라고 운동했다 그런 소리 들을 거 아니냐. 왜냐하면, 카농(카톨릭농민회) 회장인데 그냥, 막고 그랬는데. 그런데다 정신을 쏙으니 이게 일들이 제대로 안돼지. 농민운동단체들하고 많이 이야기를 해가지고 농민단체도 그때가 519일날 대규모 시위를 광주에서 하기로 그렇게 결정이 되가지고 전남대학교 학생들도 함께 연대투쟁을 하기로. (그런데) 그때 이야기들이 상당히 재밌어요. 농민들이 인제 분무기에다가 농약을 독~하게 타가꼬

 

구술자: 농약이요?(*놀라우면서, 어이가 없어 모두 웃었음)

 

면담자: 이거 분무기로 그래가지고 최루탄에 맞선다고 해서. 아조 전남대 학생이랑 뭐 해갖고 대규모 시위 준비를 하고 그랬어요. 그럼 고놈 맞아불면 최루가스하고 달리 죽, 병원에 입원해야지 인제. 독한 농약응뿌려 불면. 전경들. 하여튼 그런 준비를 해나가는데 나는 계속적으로 불안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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