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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6-DJ의 추악한 중상모략2019-01-0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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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추악한 중상모략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을 기화로 노태우 일당의 교활한 중상모략이 계속되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큰 피해를 보고 있던 나와 민족학교와 한청련 회원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훨씬 더 큰 타격을 주는 모함을 당했다.

서의원 방북 사건에 관한 수사를 받기 위해 8월 3일 안기부에 구인된 평민당 총재 DJ가 나와 민족학교를 터무니없이 공격을 했던 것이다. 안기부 수사관과 DJ 사이에 오간 문답 내용 중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본다. 이 자료는 8월 4일자 각 신문들에 실린 안기부 발표 전문에서 나온 것이다.


수사관: 윤한봉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가?

DJ: 서경원 사건이 문제된 후 미국 LA에 살고 있는 강대양 (55세. 주유소 경영)이 최근 본인에게 연락하기를 서경원이 지난번 미국 왔을 때 민족학교 윤한봉하고만 만나고 인권위원회 하고는 연락도 없었다고 하여 왜 지금까지 그런 말을 안 했는가라고 하니까 중상모략 하는 것 같아서 그때 말을 못했다고 하면서 서경원은 뉴욕에서도 인권위원회에 들르지 않고 한청련 하고만 접촉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82년 12월 미국에 갔을 때도 윤한봉은 나를 가리켜 친미주의자,사대주의자라는 등의 유인물을 만들어 비난했기 때문에 우리와는 담을 쌓고 있는 형편이며 현재까지 한 번도 접촉한 사실이 없다. 윤한봉은 민족학교의 리더 격으로 활동하며 한국인 2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로 북한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으며 친북 성향이 제일 강한 인물로 알고 있다.


수사관: 윤한봉의 구체적 반한 활동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가?

DJ: 윤한봉의 연설 내용이 실린 유인물에서 미국은 제국주의자고 한국은 식민지라는 등의 북한 주장과 동일한 것을 본 일이 있다. 윤한봉은 북한 찬양을 일삼고 있고 또 윤한봉이 북한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교포가 있다. 민족학교의 설립 목적은 자세히 모르겠으나 관여하는 사람들은 친북인물이다.


수사관: 민족학교의 성향을 어디에서 들었나?

DJ: LA에 거주하는 인권문제연구소 강대양,황재선 등으로부터 들었다.


수사관: 윤한봉이 북한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 얘기는 누구로부터 들었나?

DJ: 84년 LA 올림픽 당시 성명은 기억할 수 없으나 재미교포로부터 들었다. 


수사관: 윤한봉의 민족학교와 반한 단체들에 대한 관계를 아는 바가 있는가?

DJ: 미국에 있는 친북단체들이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조총련까지 관련돼 84년 LA 올림픽 때 조총련이 응원단까지 파견하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수사관: 평민당 소속 권노갑,정상용 의원이 윤한봉의 입국을 추진한 것은 진술인의 지시에 의한 것인가?

DJ: 윤한봉은 북한에도 다녀오는 등 친북 성향이 강한 인물로 5공청산 증인으로 청문회에 부르기 위해 입국을 추진했으나 나는 그가 입국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수사관: 진술인을 모략하던 윤한봉을 소속의원들이 입국을 추진한 이유는?

DJ: 윤한봉이 압국하면 나의 지역 토대인 광주에서 나를 비난할 테니 나로서는 불리한 입장이며 안기부가 윤한봉의 친북성을 가장 잘 알 테니 불리할 것이라고 판단,안기부에 문의토록 한 것이다.


같은 날 안기부에 구인되어 심문을 받은 평민당 부총재인 문동환 목사와 안기부 수사관 사이에 오고간 문답 내용 중 나에 관련된 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수사관: LA 민족학교 윤한봉을 아는가?

문 목사: 광주사태 시 밀항해서 미국에 간 사람으로 교민들을 설득해서 민족주의자로 만들고 있으며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이틀간 나의 집에 체류시키면서 이야기했다.


수사관들은 문 목사님께 나에 관해 물었다가 이용할 가치가 없는 답변이 나오자 더 이상 묻지 않고 단 한 번의 물음으로 끝내 버렸다. 문 목사님은 나를 집에서 재워주셨을 뿐만 아니라 민족학교를 방문하시는 등 나를 몇 차례 만나보시기라도 했으나,이는 자기 말 그대로 나를 만나본 적도 없고 나와 전화 한 통화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DJ는 수사관이 나에 관해 물었을 때 잘 모른다고 했으면 문동환 목사님의 경우처럼 더 이상 묻지도 않았을 것을,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주어서 고맙다는 듯이 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묻지도 않은 민족학교에 대해서까지 그것도 자신이 직접 들은 것들도 아니고 소문으로 들은 것들을 가지고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아 수사관들로 하여금 신이 나서 계속 묻게 만들고 자신 또한 계속 대답했던 것이다.


DJ는 안기부가 자신을 구인하여 심문하는 까닭이 서의원의 방북을 지시했는가,서의원 방북 사실을 사전에 알았는가,서의원 방북사실을 사후에 보고 받아 알고 있었는가,서의원 편에 북에 메시지나 친서를 보냈는가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처구니없게 사건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나와 민족학교에 대해서 그렇게 황당무계한 진술을 계속했던 것이다.

나는 83년에 미국에 온 DJ가 84년에 LA에서 강연회를 할 때까지 강연회 준비를 적극 돕는 등 협조적인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DJ가 5,18을 자기가 체포되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주한미군철수를 반대하는 등 미국에 아부하는 발언을 하고 다니고 통일을 주장하면서도 동포들의 혈육상봉을 위한 방북마저 반대하는 것에 분개해서 친미 사대주의자,기회주의자로 비난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인물을 만들어서 비난한 적은 없었다.


DJ는 자신이 미국에 있을 때 내가 비난했던 것과 87년 대선 당시의 분열 행위에 대해 내가 강력하게 비판했던 것 때문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적인 감정이 있다손 치더라도 제1야당 총재의 신분으로서,노태우 일당으로부터 당장 억울한 탄압과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으면서 낯선 땅을 헤매고 있는 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정적이나 원수를 향해서 하듯 안기부 요원들 앞에서 그렇게까지 터무니없는 공격을 하다니 …

나는 DJ에게 공개적인 항의를 할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그런 행동 자체가 노태우 일당의 이간, 분열 공작에 놀아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여러 차례 망설였다. 그렇지만 참고 침묵하면 나와 민족학교에 대한 DJ의 비난을 시인하는 꼴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겨레신문의 광고를 통해 해내외 동포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공개질의를 하기로 결심하고 문안까지 작성했다.


그러나 결국 광고비 1만 불(800만원) 정도가 있어야 광고가 가능하다는 걸 알고 한숨을 쉬고는 포기해 버렸다. 수천 불의 빚을 지고 있던 당시의 나에게 1만 불은 너무나 큰돈이었다. 그래서 대신 한겨레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자청해서 DJ의 공격을 반박하고,나와 민족학교에 대한 해명을 했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반박과 해명을 가지고 명예를 회복시키기에는 나와 민족학교와 한청련,한겨레가 받은 피해와 상처는 너무 컸다.

DJ의 그런 진술 내용이 보도된 뒤로 회원들은 가족과 자주 충돌하게 되었고 일부 후원자들은 우리를 기피했으며 일반 동포들은 나와 민족학교와 한청련에 대해 친북이니,북의 앞잡이니 빨갱이니 하며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로 인해 내가 입은 피해는 해외에서만이 아니었다. 노태우 일당은 DJ의 진술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러저러한 혐의로 구속되어 수사를 받고 있던 김현장-김영애 씨 부부와 홍성담 씨,고현주 씨 등을 DJ까지 윤한봉이 친북 빨갱이라고 했는데 왜 너희들은 시인하지 않느냐며 두들겨 팼다. 나의 여동생 경자와 매제 박형선을 안기부로 연행해 신문하고 나의 옛 동지들까지도 참고인 조사 형식으로 차례차례 호텔로 불러 신문하는 교활한 탄압을 자행했다.


여하튼 이의 공격과 노태우 일당의 탄압 때문에 나와 민족학교와 한청련은 상당 기간 후원자가 줄어들었고 동포사회로부터 고립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동안 불안감에 휩싸인 남부조국 운동권 인사들과의 관계마저 끊기는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

끝으로 당시 써 놓았던 김대중 평민당 총재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서 중 일부를 그대로 실어본다.


_ 전략_


3. 귀하는 윤한봉이가 북한에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방북 의사는 가지고 있으나 방북은 한 적이 없습니다. 방북했다는 증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영주권도 없고 또 밀항해 왔기 때문에 여권도 없습니다. 다만 망명 허가를 받은 후인 88년 초에야 미국 정부에서 발급해 준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여행증명서를 가지고 있는데 그 여행증명서로는 쿠바,베트남,북한을 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만약 불법적으로 북을 방문하면 망명 허가가 취소되어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4. 귀하는 터무니없이 저와 민족학교가 일본의 조총련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여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민족학교는 조총련과 어떠한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5. 귀하는 몇몇 재미동포들로부터 들은 일방적인 이야기들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인용 답변했습니다. “윤한봉이가 북한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또 “민족학교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친북인물이다.”고. 분명한 증거를 제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민족학교에 관여하는 분들도 친북인물들이 아니라 민족주의자들입니다 .


6. 귀하는 저를 친북 인물,친북 성향이 제일 강한 인물,북한 찬양을 일삼는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친북과 찬양의 의미,저와 비교한 사람들의 성격과 범위,제일 강한 친북 성항을 가졌다고 판단한 근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와 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전화 통화 한 번 한 적이 없습니다.


7. 귀하의 답변 내용들을 보면 83년 초 민족학교 설립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와 민족학교에 대해 공관원, 정보원,하수인,사이비 언론 등을 통해 자행한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중상모략의 내용들,그리고 일부 반공,반북 성향이 있는 운동가들의 음해 내용과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귀하는 그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십니까?


8. 귀하는 조국의 자주,통일을 위해서 싸워왔고 그로 인해 수많은 중상모략과 육체적 고통을 당해 왔습니다. 지금도 귀하는 귀하와 평민당뿐만 아니라 노 정권의 탄압과 음해를 당하고 있는 운동단체와 운동가들을 위해서 노 정권과 싸워야 하는 정치적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저와 민족학교, 한청련에 대한 노 정권의 중상모략을 막고 싸우기는커녕,아니 방관 침묵이라도 하기는커녕 도리어 유도 조장하거나 적극 협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아니만 본의 아닌 실수였습니까?


9. 제1야당 총재인 귀하의 발언은 정치 사회적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신중을 기해서 책임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귀하는 무책임하게도 저와 민족 학교에 대한 전 정권,노 정권의 모략선전이나 일부 재미동포들의 일방적인 이야기만을 듣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수사관들에게 옮김으로써 노 정권보다 더 심한 중상모략과 음해를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본의 아닌 실수였습니까?귀하는 이번에 저를 귀하와 평민당이 개정을 주장하고 있는 악법인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노 정권에게 공개적으로 조작,밀고한 셈이 되었습니다. ‘고무동조찬양,‘잠입 탈출’,‘회합통신’ 등으로 말입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본의 아닌 실수였습니까?


10. 귀하는 제가 귀국하는 것을 귀하의 지지 기반을 허물까 보아 싫어하신다고 밝혔지만 저는 꿈에도 그리는 조국,부모 형제와 친구,동지들이 있는 사랑하는 조국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고야 말 것입니다.


1989. 8. 5 윤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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