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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다산, 그리고 부끄러움2018-12-1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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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자신의 고향 강진만 유역에 사는 민중들의 처참한 삶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이었다. 부패한 봉건관료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민중들의 비참한 삶을 그려놓은 다산의 시를 읽다가 그만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다. 배고픔을 모르고 살아왔던 부잣집 아들이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자기보다 훨씬 큰 양반집 아들이었음에도 진심으로 민중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 평생을 바친 정약용이란 위인에 대한 감동이었다.


다른 충격은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였다. 농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는 땅 없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밭둑 논둑에도 콩을 심고 연못이나 호수에 뗏목을 띄우고 흙을 얹어 보리도 심고 채소도 심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완전히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연못에 뗏목을 띄우자는 발상은 윤한봉 자신이 어려서부터 생각해온 것 중 하나였으나 목적은 달랐다. 윤한봉은 호수에 띄운 뗏목에 꽃밭을 만들어 거기서 친구들과 음풍농월하며 살고자 했던 것이다. 다산은 모든 것을 백성 위주로 생각하는데, 자신은 사치스런 정원이나 만들어 놀 생각을 했다는 게 그리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독방에 앉아서 며칠 책을 덮어 놓고 앉아 무엇 때문에 자신과 정약용에게 이런 차이가 났는가를 고민했다.


결론은 자신이 민중적인 생각을 못하고 유산계급의 사고방식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보통 사회과학 이론서나 선배들의 소모임 학습을 통해 배우게 되는 민중적 사고방식을 그는 느닷없이 정약용의 시집에서 혼자 터득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으로부터 받은 충격을, 윤한봉은 나름의 철학으로 정리했다. 다시는 조경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결심한 것을 넘어서 자신의 본래 구상을 하나의 자연주의 사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사로잡아온 아름다운 정원의 꿈이란 결국 모두가 함께 사는 자연을 말하는 것이므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대자연을 사랑하자는 웅대한 결론이었다. 윤한봉의 회고다.


“다시는 조경이야기 일체 꺼내지 않기로 하고, 포기. 그러면서 어떻게 마무리를 했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저 정원을 꾸미려고 하니까 호수도 있어야지, 바다도 좀 있어야지 백사장도 좀 있어야지 산도 있어야지, 어쩌고 하다가 보니까 그것이 자연이 돼븐거야. 그러믄 아 이건 내가 혼자서 가질 수 없는 거다, 이미 나는 다가지고 있다, 언제라도 볼 수 있다, 긍게 나는 다 가진 것으로 하고 끝. 이렇게 정리를 해 버렸는데, 나 혼자만 가질 수 없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것, 지구상에 다 있지 않느냐, 이러고 끝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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