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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40-귀국 후2018-12-2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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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귀국  활동 - 518기념재단과 들불열사기념사업회


 다음에 귀국해가지고 여기에 5.18재단 만드는 것까지 여가 나와 있어. 엄청나게  먹었지. 아마 나처럼  많이 먹은 사람 없을 거야. 5 관련단체들이 많잖아. 419 그렇고. 이렇게 보면  상이유공자회니, 전몰유공자회니  많잖아 이런거 . 근데 아주 극소수가 인제 그런 조직을 실무 집행기그를 장악해가지고. 먹고 살지.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같은 사람들 죽이고 싶지. 하여튼 518 기념비 만들면서  무지하게 먹었지. 그래 어쨌든 만들어져가지고 지금 중요한 역할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연구소 만들어서 그거 그렇게 하고, 주로 강연 다니고,  쓰는 것은 싫어하니까. 들불열시 기념사업, 518자유공원에 거기 추모비 세웠는데 봤죠? 대한민국에서 제일 멋진 거여 그게.  평가가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와서 그렇게 해주라고 얼마나 많이들 그러는데.  요즘 들불 기념사업에 사단법인 만들어서 이제 내가 초대 이사장 맡아서 있는데, 들불상 제정해 가지고  년에 천만원씩  주는 .  작업 지금 하고 있고. 지금  일억 오천 모았는데, 이것도 우리나라 운동 관련 상으로는 제일  거여. 천만 원짜리라. 우리나라  아주 남발돼갖고, 백만원짜리 , 이백만원짜리 , 삼백만원짜리 . 그리고 옛날부터 상은 내리주는 건데 올려주는 거여. 손자가 할아버지한테 상주고 그런 식으로.


면담자: 들불상은 어떤 사람한테 주는 상인가요?

구술자: 들불상은 들불관련해서 일곱 분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순서대로 들불 박기순상 모범적인 여성 노동운동가. 윤상원상 모범적인 남성 운동가. 박용균, 이건 고아거든. 그래서 모범적인 소년소녀 가장. 박관현, 모범적인 인권운동가 인권일반. 신양일이는 소수자 인권. 김형철, 이건 빈민운동가 모범적이고. 박효선, 모범적인 문화운동가. 이렇게 해서 매년 그분들 이름을  주고, 일년에 한번씩 주는  만원.

면담자:  명씩당 천만 원을 준다는 거예요?

구술자: .  상이야. 긍게 인자 그러기 위해서 기금을 2억을 마련하고, 회원들 회비를 일념에  원짜리 회비를 대한민국에서 제일  만원이면.  달에  8 7십원  내니까. 그래갖고 운영비를 이를테면  년이면 백만 원도  .  그냐면 전부 자원봉사. 내가 주축이  갖고 문건 작성해 버리고, 전화비 외에는 거의  나가지 우편비하고. 그렇게 해서 인제 주고, 목표액이 5억이여 일단계가 2억인데, 5 모으면  년에  명씩 그래가지고 들불 박기순상을 하나는 국내, 하나는 불쌍한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흔히 옛날 3세계 운동가하고 같이 주는 거지  사람에게,  만원  만원씩. 근디 이런 다른데서는 가난한 나라에 대해서  불짜리는 엄청  거여.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뭔상뭔상 많아.  늦봄문익확 통일상  오백만원도 안돼. 통일 문화상 한겨례  칠백만원, 칠백만원이  거라고. 들불 것이 인제 제일  것이 . 그런데 인제  건강 때문에 요것까지만 하고 나는   뗀다고. 일부 단체도 후원하는  그건 하고.

면담자: 선생님 민족미래 연구소는요?

구술자:  민족미래 연구소는 95년에 열었고, 그것도  인자 주변에서 후배들이 전시회금 마련해주고 우당탕탕 해갖고 꾸며주고 어쩌고 시방  주로 인자 나는 거기서 강연 같은  다니고 그랬어요. 공부하고.  동안에 인제 감옥살이  때마다 공부를 했었는데, 감옥을 뜸하게  십여  안했으니까 옥살이를 공부  많이 했고.

면담자: 그러면 지금은  받은 상태인가요?

구술자:  12 31일부토 닫았지. 왜냐믄 거기가 3층인데 올라 다니기도 힘들고  호흡이  산소 발생기라고 전기분해로. 병원에서는 하루에 열다섯 시간 이상 이거 꽂고 있으래. 산소 호흡기를. 귀찮은데.

면담자: 선생님 이렇게 건강이  좋아지신 이유가 뭔가요?

구술자: 이게 지금 한방에서는 심화,  많이 내고 양방에서는 흡연, 담배 많이 피워서. 이게 폐기종이라는   이삼십년 진행이  거예요 지금. 어느  갑자기 생긴 병이 아니여 지금. 천천히 폐가 나빠 파괴 되는 건데, 인제 내가 94년에 발견을 했는데.

면담자: 들어 오시자마자 발견했네요.

구술자: 지금 내가 정상인의 호흡에 5분의 1밖에 못해. 긍께 5분의 1가지고 사는 거지. 산소로. 그러니까 인제 계단, 육교 같은  올라가면 한참 숨을 헐떡거리고 고르고나서 내려오고. 그러니까 아침에 3층에 있는 연구소 출근하다가 올라가면 바로 열쇠를  열어. 한참  고르고 나서 열고. 하다 보니까 저항력이 약해지니까 겨울 되면 감기 걸리면 감기는 나한테 저승사자지. 그래  해도 호흡량이 적은데, 인자 가래가 기도를 막아 버리니까  다음에 인자 열이 생기면 염증이 생겨서 부어, 허파가.   호흡이 안되지. 자칫 저번에 폐렴으로 가버리니까 119 실려서 가버리고. 인자 사람을  만나. 인자 오늘 여그 왔을  감기 걸린  같으면 쫓아냈지 내가. (웃음) 그러니까 인자 바닷가로 집짓고 살려고 그러는데 공기 좋은데 가서.  어떻게 나는 그런   모르니까 누가 옆에서 땅을 샀는데, 길이 없는 땅을  갖고  문제 가지고 불량한 놈들이 돈을 많이 주라한 거지 인제. 불량해갖고  . 속상해. 무안 쪽으로 아파트 12평짜리 얻어가지고 우선 인자 광주는 공기가 너무 나쁘니까 옮겨가서 책이나 보고, 인자  기공으로 치료 해본다 해가 지고 기수련을 97년부터 시작했는데, 그리고  보고, 산보나 하고. 그려.  얼른 얼른 . (웃음)   내가 책은 줬었지? 하여튼 여기 책에다가 다른  안하고  야기만 빠졌어. 그전 박정희 암살관계로 심리적으로 부담이 컸었다는 비하인드 이야기만 빠졌지.

면담자: 선생님 정확히 들어온 날짜가 언제예요, 선생님.

구술자: 93 5 20일엔가 일단 들어왔다가, 일주일 있다가 나가가지고 인자 보따리 싸갖고 8 달에 들어왔지. 8 17일인가에 들어 왔을 거여. 갑작스럽게 5 행사에 참여해달라고 그래가지고 일단 들어왔다가 나가가지고 보따리  갖고 들어온 거지. 보따리 싼단 이야기는  지역에 인사 돌고, 보따리란  있나 가방 하나 들고 다니는.

 

2-4. 정치활동, 정당에 대한 견해

 

면담자: 선생님 들어올  굉장히 언론에서.

구술자:  그거야 언론의 생리이지. 생리니까 그렇지.   주변에서 다들 나를 아는 사람들 전부 나는 정치판으로 나가는 것으로 순서가 그랬지. 김남주 시인이 죽었어. 인제 그때 김대중씨가 선거에서 92 선거에서 실패하고는 정기 은퇴선언 했잖애. 그리고 영국   그럴 때지. 김남주가 죽었어.  장례식장에 빈소 옆에  있는데 갑자기 김대중씨가  거야.

면담자: 94년도죠 김남주 씨가 돌아가신 .

구술자: 그렇지. 긍께  갔다 왔는가 가기 전인가 하여튼 기억이 확실치가 않애. 그라고 인자 박석무 선배가 국회의원인데 김대중씨 온다니까 나는  짝으로 숨어 브렀어.  조화들 뒤로.(웃음) 계면쩍지.  짠하기는 하지. 김대중씨 짠하게 됐잖아. 다들 불쌍해갖고, 광주 사람들 울고 그랬잖애, 은퇴한다고 하니까. 근데 인자 박석무선배가  한봉아 한봉아 김대중씨 오셨다 인사드려.   없이 인사를 했지. (웃음) 내가  동안에 인자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  인자 날개꺾인 사람인데 짠하지. 불미스러운  있었지만 이해하시라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김대중씨가  집에 한번 오라고. 글더라고. , 그러고  가버렸지.(웃음) 다들 그랬다고. 내가 김대중씨 찾아가면 글로 끝이라 이거야. 무조건 공천, 그럼 무조건 된다는 거지 이거. 국회의원. 미쳤어 내가 정치할라고 하겄냐고 그걸로 끝나버렸지. 하긍게 인자  가까운 초등학교 깨복쟁이 친구들  모지리, 머저리, 굴러온 것을  버리냐  그러냐고. 오란디  가냐고 그랬 샀고. 한나라당이 저번 선거  손학규가 전화해갖고,  이제   열어.  들은 걸로 합시다.

면담자: 요즘 선생님 민노당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구술자: 민노당은, 내가 여기 사람들(필자와 일행을 가리킴)있는 사람들 정치적 성향을 내가  몰라. 이거 말하기 그런데, 나는 인제 아까 87 대선 때도 독자 후보 주장하다가  . 아니, 후보 단일화. 그래서 백기완 선생 독자후보론으로 갔다고. 그럴 바에야 멀리보자.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된다. 백선생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  뒤로 계속  주장은 뭐냐면 우리는 분단냉전특수상황 때문에 우주에서 유일하게 진보정당이 없는 나라다.  다음에 김대중 씨와 그것이  거슬러 올라가면 한민당도 그러는데, 대한민국 야당은 의사 진보 특수를 누렸다. 내가 맨날 하는 이야긴데. 진보정당이 아닌데, 진보정당을 대중들은 갈망하는 거여.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해줄 정당이 없으니까. 찾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정당인양 하는 거지. 가짜지. 그래갖고 선거 때마다 재미를  것이 우리나라 한국의 야당사야. 노동자 농민 옛날에는 노동자 소릴 못쓰니까 농민, 근로자, 서민의 정당의 한국 야당의 의사진보특수라고 그래요. 그래가지고 선거 때마다 언제든지 진보 표를 얻어 묵어. 김대중씨가 그걸 아주 이득을 무지하게 봤지. 그래서 진보정당을 만들자는 움직임에 대해서 여당보다는 항시 야당이 사이비야당 진보정당이  박해를 가했다고. 훼방부리고. , 있는데   만들라 하냐고. 쉽게 말하면 광주에서 전국에서 제일 약한 진보 민노당 표가 적게 나오는데 대한민국에서, 긍게 민노당이 숨을  쉬어.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 합법화됐으니까. 내가 와서 보니까 불쌍해서   브러. 진정추 애들 진보정당 좌파 애들 대한민국에서 제일 약한 데야. 좌파. 사회 경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봐서는 여가 좌파가 제일 강한 데여. 강해야할 곳이야. 그런데  약하냐. 김대중씨의 표를 갉아 묵는 놈들이라 이거지. 인자 나쁜 놈들이야 쥐새끼같은 놈들이야. 근데 대중들은 무조건 독자정당 진보정당 이야기만 갖고 나오면 인자 죽일  살릴 놈이여.  그냐믄 저놈들이 한나라당이나 민정당표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공화당을  김대중씨  갉아먹는 놈들이야. 사실이 맞거든. 한나라당 찍을 놈들이 민노당 진보정당 찍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쪽수가 적다 이거야. 저쪽보다. 경상도보다. 그러니까 인자 저가 에를 들면 투표율이 80퍼센트면 우리는 99퍼센트를 해야 이길까 말까한테, 거기서 새끼들이 구멍을  갖고 갉아먹고 있다 이거야. 요놈 나쁜 놈의 쥐새끼 같은 새끼들이 이렇게  갖고 여기서는 무조건 진보정당은 욕을 먹어. 비판 흔히 말하는 배신자 반역자 프락치.  프락치 소리 무지하게 많이 들었지. 백기완 선생부터 영삼이  묵고 나왔다느니 통일교  묵고 나왔다느니부터 시작해서 무지하니 박해를 받어요. 의사진보 특수를 누린 사람들 입장에서는  특수를 깰라고 누가 불쌍한 사람들을 대변하는지가 드러나 브니까. 그걸 깰라고 그런 거여. 그러니 나는 들어오자 마자부터  내가 독자후보 지금 진보정당을 주장한지 알고,  귀국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7  받았는데, 5만명인가 7만명인가 받았는데 그걸 진정추 애들이 받았다고, 좌파애들이. 긍게 자기 성향이 같은  알고, 내가. 그래갖고 국회에도 제출하고 그랬지.  귀국 전에. 그러니까 들어와서 보니까 얼마나 웃긴  알아. 이거 일환데 나는 인자 십여  만에 왔으니 광주 떠난  십삼 년이지. 도피생활까지 하면은 누가 누군지를 모르는데, 여기에 NL계에 전국연합회 계통에서  인자 비서처럼  사람 붙였어. 그래갖고 인자 일정을 관리를 . 나는 인자  누가 누군지를 어떻게  것이여. 친구들 얼굴을 잊어버려 가지고고 한참을 보고 알고 그랬는데. 근데 이라고 있는데 저기 누가 와갖고는  진정춘데요.  그래. 저희들하고 이야기할 시간을  내주세요. 약속해. 무조건 갈게. 인자 어디 끼어들어갖고 진정춘데요. 그럼 이게  물어봐. 운동하는 친구들한테  민청 민청부터 요즘  진정추 애들 어떻게 지내? 그러면 뭐라   알아? 자기들기리 서로 얼굴 요러고 쳐다보면서 요즘도 걔들이 있나 그래. 광주가 현실이 그래. 요즘도  애들이 있나야.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브러. 관심 . 그래서 내가  애들 만난다고 하니까 그래? 만나서 뭣할라고? 이런 식이지. 그래서 내가 무조건 후원회장이 되었지 내가. 민노당 후원회장 이었어. 광주. 그래갖고 선거 앞두고 후원의 . 얼마나 비참한  알아? 여야 국회의원들 하면은 무등산 관광호텔, 이런데서 . 한복 입은 여자들도 수없이 동원 많이 되고, 거기서  천장 빌려서 .  전체가  나와. 시당 차원에서 지구당이 아니라.  얼마나 모이냐 돈이.   사십 만원 냈다, 내가 누가한테 이야기해서 백만원 내라했다, 백사십 만원 빼고 나면 오백만원이나 모여. 최고 많이 모일 때가 팔백만원이라니까. 시당 후원의  행사에. 없어. 글고 인자 비참한 것이 NL계는 그렇게 탄압받았어도 분단 냉전 특수상황 때문에 맥이 있어 맥이. 민족을 내세우니까  민족이 갖는 신비감 때문에라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일으킨다고 그것이 작용을  갖고  속에서도 맥이 이어져. 긍게 NL계는 국회의원도 있고, 장관도 있고, 여그 저그 들어가 있어.  뽈갱이는 싹쓸이를  버렸거든. 좌파는. 그란께 선배라는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NL 놈들을 얼쩡얼쩡하다가 선배한테 차도 얻어먹고 짜장면도 얻어먹고 취직자리 부탁도 하고 다니는데, 70년대 이후에 학생운동권에서 배출한 뽈갱이들은 노동운동쪽 나이가 지금 많아도 50이야. 지금 노회찬이  세대들이야 중심이. 그리고  위에 권영길씨니 모두 뽈갱이가 아니거든 중간이지. 중도야 거기는. 긍게 지금 40 후반 정도가 1세대들이야. 맥이 끊겨 브렀으니까 일제하에서부터 싹쓸이 당해갖고.   사줄 선배도 없어. 취직 부탁할 사람도 없어. 예를 들면 내가 와서 보니까 진정추 애들이  것이 뭐하냐면 만화방,  다음에 생수배달, 목공소, 두부장사 대개 이래. 자본도 없겄다,  봐줄 사람도 없겄다, 취직도  되고 그래갖고 뽈갱이 누가 취직을 . 그래가지고 바닥 박박 기는 거지. NL 애들은 달라. 근데 하여튼 어떻게 어떻게 해갖고 민노당에서 인제 지방자치단체만이라도 비례로  가지고 처음에 인자 광역에  명씩 들어가고 그랬지.  조카가 지금 윤난실인데 거기 하나 들어가고 그랬는데. 조금 살만해지지. 그런게 인자 70년대부터 진보정당 수립 이야기만 나오면 운동권에서 브레이크를 걸어 븐게 NL계였다고. 무슨 소리하고 있어,   중앙이 있고 어쩌고 노동당 이야기죠. 조선노동당. 이러니   따로 만드냐 이것이야. 혁명소조처럼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지 말이 많이 이런 식이지. 비슷한 논리를 사이비 진보정당 그러니까 의사 진보 특수를 누렸던 애들이 그걸  강조한다고. 김대중 장학생이었던 김근태부터 시작해서. 김대중장학생이지. 국회의원 되기 전부터  달에 오백만원씩 줬는데, 문익환 목사하고 둘이.  사람들 입장에서 시기상조론 무용론 아주 교묘한 논리, 민주대연합론 이렇게 애매한 소리 하면서 그걸 계속 막아왔잖아. NL계가 아주 이를 갈았지. 애국자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 김대중, 김대중.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  특별히   있나.

 

3-1. 요즘 근황

 

면담자: 선생님 토요일  무안 내려 가신다구요? 이번  토요일날요? 장기적으로  있을 생각이세요?

구술자: 거기서 산다니까.

면담자:  집은 처분하신건가요?

구술자: 아니 여그는  아내가 살고 주말에 만나는 거지. 주말에 내려오고.

면담자:  선생님 결혼이야기도 들어야 되는데. 그것만 듣고 끝내면  될까요? 선생님의 연애사도 잠깐.

구술자: 뭐가,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네. 한가로운 소리 하고 있어.  총체적 난국에.(웃음)

면담자: 아니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서 (웃음). 선생님 그러면 아예 그쪽으로  잡으시려구요? 그러면 지금 하시던 것은 들불사업회.

구술자:  요것만 하고.

면담자: 선생님 은사님 있잖아요. 김용근 선생님

구술자:  회장직  내놨어.

면담자:  내놓으셨어요? 그럼 이거(들불사업회) 하나만 하시는 거예요?

구술자: (들불기념사업회 글을 읽으심) 저의 폐기종과 천식이 갈수록 악화되어  이상 사회활동을   없게 되었습니다. 들불 기념 사업회 활동만 빼고는 모두 일에서 손을 떼고 요양생활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민족미래연구소도 7 31일을 기해서 문을 닫습니다. 모금액이 2억원을 돌파하면 이사장직도 사퇴하고 요양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저의 요양생활을 도와주는 셈치고 모금활동에 조금만  힘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웃음)

면담자: 가슴 절절히 쓰셨네요. 선생님.

구술자:  인자후원만 내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실상사 작은 학교, 민족문제 연구소,  등등 그런  한달에 얼마씩 보내는 것만 하고.

면담자: 선생님 수익이 있으세요?

구술자:  아내가 벌지.  아내가 버는데 우리 집은 이중경제야. 북하고 비슷한데, (웃음) 가정경제는  아내가 꼬마들 영어 갈쳐 그룹과외해서 우리는 먹고 살고.  활동비, 품위유지비, 그런 것은 인자 후원해준 사람들 있으니까 그걸로. 근디 나를 우습게 보지 말어. 내가 비록 동가숙서가식 했지만 518전부터 국내에서 봉급생활 안하면서 자급자족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사람이야. 운동권에서. 나는 YMCA에서 근무한다던가, 어디서 근무한다던가, 출판사를 한다든가 그런 것도 아니고  사람  사람  사보라고 얼굴이 그게 뭐냐 보약 사먹어라, 속옷도  갈아입어라, 그렇게  돈들 모아서  활동비 쓰고, 옥바라지도 하고 주변에 후원 활동비도 도와주고 현대문화연구소 꾸려가듯이. 고런 생활을 이미 70년대부터 했었다고. 미국 가서 칫솔하나 달랑 차고, 가가지고 12  동안에   굶은적 없고, 얼어죽지 않고,  지역에 센타 만들고, 지금 민족학교 같은 경우는 일년 예산이  십만 불씩  지금. 그렇게 돌아와서 재단 만드는데 3 4 모금하고부터 이거 2 모금 김남주기념사업회 들불 추모사업회 모금하고 그런  내가 앞장서서 하지. 인자 그거야 돈이라는 것은 사람보고 . 프로젝트 보고 안줘. 전두환이가 하면  안준다고. 믿을만한 사람이 해야  주고. 그래서 나는 이를테면  되거나 추석 되면 형님  쇠는데 보태쓰쇼 그라고 이렇게 봉투   사람이  많고. 이번에도 병원에 들어가 있는데, 대외적으로 절대 비밀이여 챙피하게  폐렴으로 쓰러져갖고 감기 옮은게 아무도 오지마라 그랬는데 어떻게 아는 사람들 어떻게 어떻게 투병에 보태 쓰십시오, 입원비 쓰고도 돈을 상당히 벌었어. 나는 그렇게 살아. 인자 그렇게   갖고 후원도 하고. 내가 술을 안해버리니까 그라고 내가 잡스런데다는 돈을 안쓰는 사람으로 소문난 사람이거든. 화투를 친다던가  퍼먹고 객기 부려갖고 노래방 가서  쓴다던가 그런 것도 없어. 내가 옛날에는 승부욕이 강했다고. 바둑, 장기 같은  지면 밤새도록 두자고 하고  자게 하고 그런데 운동하면서부터는 진짜  승부가 뭔지를 안거야.  나라의 운명을 가지고 민족의 운명을 가지고 밀고 당기고 싸우고 있는데 바둑갖고 쌈하고 앉었고 이런  우습게 보여가지고  다음부터는 인제 누가 심심해서 두자하면은 즐기면서 두지. 이길라고는 안하고. 그러다보니까 나한테 돈이 오면 쓸데없는데다가는  쓰는 사람이라는걸 아니까, 인자 그런 신뢰가 쌓이니까.  다음에 내가  양복입고 머리에  바르고  잡고 다녀야 그런데다 돈을 쓰는데, 지금도 나는 구두부터 시작해서 전부 얻어입고 그라고 옷은 겨울 되면 골덴바지 얼마나 따뜻하냐고. 속에는 양동시장에  삼천원짜리 내의 보온메리라고 해갖고 옛날 70년대 나온 두꺼운 내의가 있어. 인자 고거 떨어지면 품절되면    같아갖고 지금  벌을 사놨어. 지금 죽을때까지 입어블라고. 그놈 입어블고. 내가 그러고 산디 누가 뭐라고 할거야.  집도  여동생이 사준거라고. 금호지구에 12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았거든. (TV)받침 요것은 양동 가구시장에 가갖고 여기가 이라고 상처를 입어갖고 여기 한쪽에다  박아 뒀드라고. 반품한다고. 싸게  놈인데 우리는  시절을 잊지 말자고 하고 악착스럽게 이사하면서 갖고  갖고 살아.

면담자: 선생님 미국쪽에 선생님이 아직까지 관여하고 있는 것은 없는거죠?

구술자: 나는 인자 일종의 고문이지. 그래가지고 맨날 회원들 오고 가고.  년에 내가 한번씩은 가고. 그리고 여기 들불은 현재 1 5 얼마 모았는데 미국에서 재미동포들이   만원.  이백만원 모았구만. 같이 . 북녘 동포돕기 운동 하게 되면 내가 여그서  모아서 보내고. 내가  삼천만원 모금했을거야. 우리는 유엔 통해서(보냈어).

면담자: 선생님 518관련해가지고 선생님 보상받거나 그런 거는.

구술자:  받았어. 나는 인자 안할라 그랬는데 우리 작은 형님이 신청을  놔가지고. 할수 없이 내가 건강이 이래버리니까. 저거  개가 슬로우 쿠커 여그다가 인자 도라지 더덕부터 시작해서 온갖 폐에 좋다는거 모과,   댓가지 넣어서 여덟시간 중탕을 해가지고 짤순이  쓰레기 물짜는 건데 한약 짜서 마시고 요런 것만 해도  달에  사십 만원 들어가. 약재로. 환자가  노니까.

면담자: 선생님 일년 내내 이러신건 아니죠?

구술자: 겨울이 힘들어. 겨울이. 그렁께 내가 보온메리가 어쩌고 추위에 신경을 쓰는 거야. 다섯 겹을 입어. 내가 나갈 . 감기는 저승사자야 나한테는. 담배연기는 독가스고.

 

3-2. 5.18 재단에 대한 평가

 

면담자: 마지막으로 518이랄지 재단이 잘하고 있는가랄지 선생님에 대한 견해랄지 선생님이 저희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 해주세요(웃음).

구술자: 근데 아니 인자 518 어차피 거의  해결됐어. 518. 진상규명부터 시작해서 전두환, 노태우 광주사람들, 518단체들도 사면 복권에 동의해버렸으니까  이상 할말도 없고, 역사적으로 이렇게 정리   것이 없어 지금까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일어났던  아녀. 과거사 진상에서도 광주가 1호가  버렸지. 나머지 부분은 미진한 부분들은 작가들 문인들하고 언론인들 중에서 학자들 중에서  파헤치고  사람은 있겠지만 이미 골격은 완벽하니 나와 있다고. 그런데  동안에 518 정치적인 거품이 많이 끼였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민족 항쟁사에서 유일한 봉우리처럼 만들어 브렀지. 이걸 518. 나머지 것들은  죽지. 그러나 여러 봉우리들 중에서  봉우리일 뿐이지.  거품도 김대중 정권이 물러나면서 인자 빠지기 시작한 거거든. 정리가 되기 시작하고. 아마 정치적 비중은 다음 정권까지 유지될 거예요.  그냐믄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을 하게  건데,  사람들이 호남옹호 차원에서라도 자기 집권 내내 정치적으로 이걸 이용을 할거라고. 그러고나면 정치적인  하품이 빠지지. 인제 역사적으로 정리가 되고. 이번에도 새로운 자료들 나왔다고 하던데 518자료는 별거 없어 내용보니까. 비밀에 묻혀버리고 말지 핵심적인 부분들은. 하여튼 작가, 언론인, 학자들한테 맽기고 . 5 단체들 부분도 이제 비극이지만 일단 보훈단체로 바꾸었다고 입지가. 그래서 인제 그것도 정치적 위상이 이제 바꾸었고, 이제 내는 기념사업  때도 강조해지만 결국 남는  이제 재단이야. 5 기념하는 활동에서는 정신계승 차원에서. 518기념재단이 이제 잘해나가도록  부분은 내가 죽는날까지는 신경을 써야지.  그러냐면 지금 내가 무안으로 병이 깊어가지고고 내려간다고 하니까 호시탐탐하고 있는 못된 사람들이 지금 준동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는데,  사람들 착각하고 있지. 못된 놈들이 이사장 되거나 상임이사가 되거나 사무국장 되거나 어떻게 해갖고, 일종의 권력처럼 기득권처럼 휘두르려고 하는데 그거 용납을  할거니까 그래서 5월이 제대로 기틀을 잡도록. 앞으로 5 정도만  나가면 기틀이 잡혀질 거라고. 왜냐면 이게 사학재단같이 마음대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인 농간만 없으면 여기서  빼먹을 수도 없는 구조고, 재단이. 그래서 그것만  5  막아주면 지금 출범 십년에 엄청 자리 잡았어. 초기에는 날마다 싸움이었지 싸움.  그러냐면 저게 광주에서는 비정치권에서는 최고의 권력이었거든. 대통령이 되거나 어쩌고 하면은 시장하고 같이 대우를 해주니까 총장이  아랫니까 국립대 총장이. 이러고 대통령 앉히고는 한쪽에 518재단, 한쪽에 시장  정도니까. 그러고 전국 어디 가서도 해외에서도 518재단 이사장 그러면 위상이 있다고. 근데 그걸 노리고 장난을 많이  놈들이 있었다고. 내가 악착같이 저승사자가 돼가지고, 싸워서 욕은 내가  먹고. 그러고 재단은 이사진 선출 절차를 제도화 시켜 버렸기 때문에 이를테면 인제 부마항쟁쪽에서 한명, 거기서 추천을 해서. 제주 43에서  ,  다음에 민주 민변에서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들 모임.  다음에 이제 유가협에서    다음에 이제 부산, 대구, 전북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지역 518단체들에서  .  민언련 기자협회에서 한명, 시민단체 협의회에서    다음에  선출직이니까  의회에서   도의회에서   이런 식으로 이사진 선출 자체를 특정 세력이 좌지우지 못하도록 해버리고 거기에 이제 마지막으로 특정세력이  들어갔지. 재단 창립을 했던 모임이 이제 창립 모임이 후원회로 바뀌었어.  후원회에서  .  다음에 인제 유가족에서 한명, 부상자에서   구속자에서  , 후원회에서 네명 이렇게 해갖고 열다섯 명이거든. 그러니까 이제 후원회 네명 구속자, 부상자, 유가족 서이 합해서 일곱명 밖에 안돼. 열다섯 중에서. 5 관련 단체 관련자들이 과반이  되는 거지. 미달이지. 일곱 명이니까. 부산 대구 이렇게 돌아가면서 한다는 것도 후원회  명목 중에 한명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래버리니까 5 관련자들이 5월이 자기들 전유물인양 재단을 전횡을  수가 없게 돼있어.  다음에  단체들에서 추천해 오기 때문에 완전히 전두환 스타일이라던가 사기꾼 같은 애들이 이사장 되거나 그럴 수가 없어. 왜냐면 이라고  보믄 보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야 대부분. 산전수전 겪은 사람들이라 운동권에서 인제 사기꾼이 못돼.  다음에 이제 그런 사람들에게 이번에 이사장 뽑는데 신경을  써야합니다. 누구누구요. 이런 사람입니다 하면 알아들을 사람들이야.  지역에서.  사람들이  사람들이니까. 원로들. 그러니까 미치고 자빠지는 거야  5 단체들이.  그냐믄  5 구속자에 누군데요 하면 모두 모르거든.  다음에 인자 이사회   보믄 요놈들이 그냥 무식한 소리 해쌌고,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해쌌고, 그리고 광주 지역에서 이사장을 돌아가면서 주로 맡으는데 광주지역에서 원로라는 사람들이 순서대로? 어림  푼어치도 없어. 형편없는 사람들. 그냥 50 초반으로 내려왔는데 금방 금방이지 세대교체가. 노인들은  해봤자 바로 우리들  선배나 이홍길교수 그래 박석무씨 거기 63세대들이고. 지금  세대로 내려  거야. 그라고     있으면 민청세력으로 내려오지. 지금 우리 세대들 60  가지니까.  다음에 긴급조치 9 세대. 이렇게 내려가지. 그래서 보면 열다섯 살에 518 참여했던 애들도 벌써 40이여. 40넘었다고. 인자  애들이 금방 50이야. 근데  애들 중에서는 재단 이사장감이 없어.  그냐면 완전히  들고 뛰었던 시민군들이 인자 악바리들만 있는데 재단을 끌어갈 인물들이 없어. 인제 젊은 고등학생들이나  애들이 일부 참여한 애들이 있는데 애들이 곱게  커브렀어. 너무 굽어버려서 안되지. 그러면 완전히 새로운 세대들로 인자 바뀌겠지. 어떻든간에 재단 이사진 구성 자체 구조가 그렇게  제도화 됐기 때문에 이제는 함부로 못하고. 정치권에서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여건 야건 유명정치인들이 자기 사람으로 재단을 장악해블고  이런 꿈을 못꿔블게  있다고. 다른 공공 기관이라든가 정부 산하기관이라든가 사회단체 중요한 것들은 법인들은 벼라별 문예진흥위원회 어떻고부터 시작해서 전부 정치권 입김을 낙하산 타고 내려온다고. 여그는 못해 왜냐면 시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정부 돈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도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완전히     모아갖고 만든 개미재단이거든. 재단 설립에서 이런 경과를 거쳐서 만들어진 재단이 없어, 아예. 목돈은 내놓지.  돈이라고. 전부 한푼 두푼 모아서 만들었거든. 해외 동포들까지 해서. 그러니까 개입을 못해. 정부권에서고 뭐고. 시장도  맘대로 못하고. 그래서 전망이  있지. 내부에서의 문제점들은 거의 없어.  다음에 인제 직원들도  맘에 안든 직원들이 많긴 하지만 공채 형식으로 했기 때문에 노조결성도 이사장부터 시작해서 노조 결성을 권했으니까. 인자 신분 보장하고. 당연하지 518정신이 뭔데 권위적으로  나가 그럴 수가 없지. 그렇게 해서 안정됐지. 재단이 희망이 있어. 그리고 인제 기금은 80 정도 되는데, 부족하지. 다행히 정부 예산으로 해서 매년 20 이상이 올해는 25 정도 나왔다대. 나오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 운동관련으로는. 여기 활동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운동이야. 범위가  넓긴 하지만. 광주에서도 이렇게 재정적으로 물적 여유를 갖고 운동한데가 어딨어. 이것이 인제 말썽 없이만  하면은 예산이  안깎이거든. 말썽이 생기야 깎이제.  해나가. 그러니까 요즘 아조 흡족해. 왜냐믄 나한테 뭔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나한테 들어오거든 그래갖고 나보고 인제 이것  처리해주시오 부탁하는데 요즘 나한테 연락 없는  보면   돌아가는구나. 인자 선거  되면 인제  후원회에서 이사 네명을 뽑아 올려.  속에  사람은 이사장이고  사람은 상임이사야. 이것이 내규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관행이 됐어 이제. 개똥씨를 우리가 이사장으로 추천합니다. 그러믄 인자 상임 이사는  인자 이사장이  추천을 해서 하니까 셋트로 해서 그라고 올려. 그라고  네명 이사 뽑을때 여그서 인자 표대결을 해갖고 낄라고 장난하지. 여그서 갈라져브러. 재단을 만들 , 5 단체들 관련자들한테서만 돈을 모았던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 그러니까 시민운동단체들이나 운동권출신들한테 참여를 종용을 했거든. 그래갖고 인자 참여를 했어. 근데  사람들 숫자가 5 관련자들 숫자에  정도 . 반정도 되는데  5 관련단체들 속에  전남대 총학생회생부터 시작해서 운동권 출신들 숫자가 많아. 그래갖고 합해보면 요쪽하고 과반이 . 그러니까 인자 선거 앞두고 이번에 개똥이 말똥이 닭똥이 소똥이로 하자, 그러면 그렇게 . 그러니까 인자 그걸 어떻게 뒤집어볼라고 나머지 애들이  짓을 다했는데  차례 깨졌어. 그러니까 인자 포기. 긍게 내가 없어지면 닭똥 소똥이로 결정을 해도 통일적으로  움직이리라는 기대와 희망 속에서 못된 것들이  되니까 벌레 나오듯이 이렇게 고개 내밀고 있는데 코뼈를  분질러버려. 재단은 희망이 있어. 이제  오년만 있으면 안정  거야. 그렇게 되고. 인제 다만 프로그램을 생산적으로  개발해서 나가야 하는데, 돈은 있는데 그것을 알뜰살뜰이  써버리면 문제가 있을 거야. 몇가지 성공적으로 안착된 프로그램이 있지. 예를 들면 518마라톤 같은  아주 성공적이야. 짧은 거리 마라톤이지만. 꼬마들부터 끌어들이라고 젊은애들 글짓기를 하는 것부터. 하여튼 나는 처음부터 기념은 계승이다. 계승은 교육을 통해서. 교육은 젊은 세대들을 상대로 미래를 내다보는것......

면담자: 선생님 앞으로 계획 같은 .

구술자: 가서  닦고 건강관리하고.

면담자: 선생님 건강하세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선생님께 정세교양을 들을  있는 기회가 있기를......

구술자: 정세는 나는 앞으로 그러기로 했어. 하도 남들이 비올 것이다 그러는데 해뜰 것이다 그래갖고 얼마나 그것이 외롭고 고달픈 것인지 몰라요. 이를테면 518때도 그렇고. 87 대선에서도 그렇고. 그런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여 내가. 다들 저쪽이야 동쪽, 나는 서쪽.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옳다는 것이 증명이 . 그믄  사이에는 증명  때까지는 고달파. 그래서 나는 5 이후의 이야기는 안하기로 했어. 너무 고달파. 그것은 이론으로 되는  아니여 전망. 거기는 조끔 직관이라든가 통찰력이라든가 타고난  있어요. 정세분석 해보면 똑같은 정보자료를 제공했는데도 전망에서는 확실하게 차이가 나더라고. 그것 보면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통찰력이든지 직관이 필요하다는 것이자.

면담자: 선생님  동안 몸도  좋으셨는데 세차례 인터뷰 하시느라고 너무 홀가분하시죠? (웃음)

구술자: 홀가분하지. 무안 내려오면 연락해.

면담자: 알겠습니다. 선생님 핸드폰 없으세요?

구술자: 있는데 번호는  갈쳐줘. 이번에 내가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 겁이 나가지고 휴대폰을 준비했다고. 어디 가다가 문제가 생기면 얼른 119 눌러야하니까. 이제까지 없이 살았다가   없이 이번에 했지.

면담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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