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봉선생을 추억하며

 
 
 
제목합수 윤한봉을 기억하는 새해 아침 (문규현)2018-12-21 10:36
작성자

합수 윤한봉 선생을 기억하는 새해 아침

문 규 현/합수 윤한봉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합수 윤한봉 선생. 자신을 으로 거침없이 지칭하던 그분은 소위 나의 배후조종자로 몰렸던 분이었습니다. 19897월과 8, 임수경이 전대협 대표로 평양에 들어갔던 임수경을 남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내가 방북했을 때, 이 모든 것을 윤한봉과 한청련이 배후조종했다고 노태우 정권이 중상모략을 한 것입니다. 그분이 내 배후조종자가 아닌 것은 명백했지만, 당시 갑작스런 평양행으로 정신없었던 나를 도와 잡다한 뒤치다꺼리를 해주며 용기를 주었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윤한봉 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80년대 초로 기억합니다. 당시 오송회 사건에 관련되었던 어떤 선생님이 5·18 관련으로 수배되었던 윤한봉씨가 미국에 망명했노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윤한봉이란 사람은 민족통일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분이라고 하더군요. 그리던 그를 1987년에 미국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정열적이고 활발했던 망명객 윤한봉의 모습은 정말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모르는 미국 내 한인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불어넣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통해 남북통일도, 해외동포들과의 유대와 연대도 아무 문제없이 다 잘 되어갈 것 같은 가슴 벅찬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랜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영어를 쓰지 않아 그와 대화하고 싶은 미국인들은 한국인 통역을 대동해야 했습니다. 끙끙거리며 영어를 공부하고 있던 저로서는 그런 합수 모습이 고맙기도 했지만 말할 수 없이 통쾌했습니다. 자신이 꾸리던 민족학교뒤편에 텃밭을 일궈 상추 고추 무 호박 등 채소를 직접 키워먹던 윤한봉, 광주 망월동의 흙을 여러 개의 위패와 함께 모셔두고 있던 윤한봉의 모습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결코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올곧음, 가슴과 행위가 투명하게 일치하는 사람,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사람,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울 만큼 저돌적이고 열정으로 넘쳐나던 사람. 그렇기에 죽음을 느낄 만큼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밀항기간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고, 오랜 망명생활에서도 한결같음과 처음처럼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897, 임수경을 데리고 오기 위해 2차 방북을 하기 전 윤한봉 선생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다시 방북할 일에 심경이 복잡한데 합수는 그게 바로 신부님이 뉴욕에 오신 이유인가 봅니다.” 하며 엄청나게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나저나 신부님은 복도 많습니다. 가보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신부님은 지난달에도 갔다 오시고 이번에 또 가시게 되었으니.” 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간절히 하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으니 제가 부러웠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했지요. “이번 일은 달라요. 책임이 크다고. 그리고 감옥에도 가고.” “그렇겠네요.” 하고 안타까워하던 그는 나와 임수경이 남한으로 돌아와 감옥에 투옥된 뒤에도 미국에서 우리의 석방을 위해 단식농성과 외교활동 등을 통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었습니다.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조국으로 돌아온 윤한봉 선생은 정치적 입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위치였음에도 모두 마다하고 재야에 남기를 고수했습니다. 한결같은 태도로 광주정신의 계승과 민족통일이라는 큰 방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한 것입니다. 참 많은 이들이 힘들고 고된 자리를 벗어나 마른자리와 빛나는 위치에 서려고 부산하던 시절에 그걸 마다했으니 그 강직함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것은 그분이 지금껏 존경받고 우리 가슴에 살아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윤한봉 선생 기념사업에 기꺼이 함께 하겠노라고 수락할 수 있었던 핵심입니다.

 

“5월 정신은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이다.” 윤한봉 선생이 20055월에 인터뷰 할 때 “5월 광주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질문에 답한 말입니다. 그리고 개혁과 진보가 항쟁정신의 한 축이고, 통합과 통일이 대동정신이다.”고 했습니다. 광주의 아픔을 기억할 게 아니라, 그 항쟁과 대동의 정신을 기억하고 오늘날에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시절이 수상하고 어렵습니다. 그럴수록 윤한봉 선생이 그립고, 그럴수록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정신적 유산이 소중하고 소중합니다. 소처럼 우직하고 한결같았으며 소걸음으로 천리를 갔던 사람, 그분이 지금 우리가 가야하고 살아야 할 곳을 가리킵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