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봉선생을 추억하며

 
 
 
제목그리운 그 모습 (최종수)2018-12-21 10: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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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 모습

최 종 수/목사, 필라델피아 거주

 

합수 윤한봉 형을 처음 만난 것은 19851, 추운 한겨울이었습니다.

형이 젊은이들 몇 명과 함께 내가 시무하던 교회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였지요. 형은 서부지역에서 점차 동부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조국의 자주 민주 평화통일 문제를 가지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미주 각 지역 한국 청년연합 조직을 위한 길에 나섰던 것으로 압니다.

미 동부지역에서는 뉴잉글랜드, 뉴욕을 거쳐 필라델피아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 날 나의 기억으로 필라에서는 장광선 님의 동생들인 장맹단님과 어린 장광민 학생이 동행하였고, 뉴잉글랜드에서는 저와 먼 사돈이며 한국 모()교회 후배였던 예일대학교의 정기열 목사가 뉴욕 유니온신학교에 유학 와 있던 한호석님과 함께 합수 형을 모시고 온 것으로 압니다.

장맹단님과 장광민 학생은 구면이었고 한호석님과 합수 형은 초면이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사람을 만납니다. 소개를 통해 직접 만나기도 하고, 멀리서 소문만 듣고서도 만나며, 글을 통해서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 날 합수 형과 만남은 역사적 만남이었어요. 왜냐하면 이 날 합수 형과 만남은 저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180도 바꾸어준 만남이었기 때문입니다.

 

형을 처음 만난 그날 형은 아무 말도 없었지요. 그저 묵묵히 귀 기울여 듣기만 하였습니다. 오히려 함께 따라온 초면의 한호석님이 도대체 교회를 통해서 조국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당돌한 질문으로 나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결국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합수 형이 시작한 국사학습에 참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런 난방시설도 없던 구범서님이라는 한 동포가 경영하던 디스카운트 스토아 3층에서 한겨울 밤 그 추운 빈 방에 모여 조그만 칠판을 앞에 놓고 두꺼운 겉옷과 담요를 두른 채, 형의 인도로 우리 역사 학습에 열을 올리던 일이 어제만 같습니다.

그 날 이 후 우리들은 세 번의 사이클에 걸친 국사학습을 통하여 분단 조국의 비극적 아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역사의식과 분단극복을 위한 실천적 행동을 다듬어 나가게 되었고, 마침내 합수 형이 이끌던 국사학습에 참가한 이들이 주체가 되어 1985년 필라델피아 한청련이 조직된 것입니다.

 

그 뒤 우리들은 많은 연령 차이에도 아랑곳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한데 어울려 밥도 나누어 먹고 김경지 동지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신나게 운동가요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민 현장에서 열띤 학습 토론을 벌이면서, 실천해야 할 과제들을 부여받아 열심히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와 신학 속에서 외래문화, 특히 미국문화에 세뇌되어 얼이 빠진 줄도 모르고 살던 내게 한국의 역사와 현실인식은 물론 한국인으로서 문화주체 의식을 일깨워주었던 것입니다. 합수 형의 지도는 45살 늦은 나이의 나를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에 빠뜨렸지요.

 

뒤늦게나마 내게 분단 조국의 아픔을 깨닫게 해 주었던 형. 형 자신의 말로 전라도 촌놈 합수’(거름)라고 하는 별명 그대로 조국의 거름이 되고자 하셨던 형은 미국 생활 10여 년 동안 한 번도 침대 위에서 자 본적이 없고, 와이셔츠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어 본 적이 없던 분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압니다.

 

5월의 영령들이 고이 잠들지 못하는 현실에서 아직도 독재에 시달리는 수많은 조국 동포를 생각하면 편한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옷은 동포들의 세탁소에서 찾아가지 않는 헌 옷 가운데 아무 것이나 집어 입었고, 신은 언제나 운동화만 신었습니다. 오죽하면 합수 형의 자전적 미국 정치 망명기의 제목이 운동화와 똥가방이었겠습니까!

 

합수 형은 도무지 거드름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소탈하기 이를 데 없는, 그야말로 소박단순한 촌사람이라 가까이 함에 거리가 없었어요. 언제나 만나 반갑게 손잡고 얼싸안으며 마냥 행복한 그런 분이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분을 "" 또는 "합수 형"이라고 호칭하게 된 것입니다. 1986년 여름에 LA에 회의 차 갔다가 민족학교에 들렀을 때에도 형은 뒤뜰 텃밭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한 형의 모습들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모습은 텃밭에서 호미를 들고 우리 조국의 채소들을 가꾸던 모습입니다.

 

나는 합수 형이 탁월한 화술(話術)을 가진 타고난 혁명가라고 언제나 혼자 감탄하곤 했답니다. 특별히 필라델피아에 방문하러 오거나, 동북부 지역 한청련 연합 수련회에 와서 펼치는 형의 이야기는 며칠을 계속 들어도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야기를 듣고 난 뒤면 언제나 "난 오늘도 좋은 목회학 강의를 들었다"고 했지요. 책에서나 읽었던 체 게바라나 까밀로 또레스 신부가 보여준 혁명은 곧 이웃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형에게서 보고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합수 형을 만나면 의식(意識)하는 의식이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의 품성(사람됨)이 문제라는 것을 보고 배웠지요. 형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정세분석의 안목은 언제나 감탄으로 대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뿐만 아니라 합수 형의 조직역량과 주도면밀한 계획적 훈련은 우리 한청 한겨레 회원들을 힘 있는 회원으로 크게 자라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합수 형이 이해하는 운동이란 내 민족은 물론 다른 나라 모든 민족을 포함한 이웃의 고통, 심지어 우리의 이웃인 자연의 동식물의 고통까지 함께 하려는 생명 살리기 운동임을 다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러한 고통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우리의 운동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형의 지론에서 우리는 형이 단순한 혁명가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형이 펼치던 운동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처음에도 실천(솔선수범), 마지막에도 실천이었지요. 그리고 합수 형의 이러한 역량은 바로 뼈아픈 자기반성과 자기과오의 인정에서 온다는 것도 우리는 알게 되었어요. 잘못된 판단에서 나온 잘못된 행동에 대해 회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기반성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제 어디 가서 합수 형의 구수한 이야기와 배꼽을 쥐며 웃음을 자아내는 몸짓을 볼 수 있을는지요?

 

합수 형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20년 전 1987년경부터였던 것으로 압니다. 때 아닌 감기와 치아의 이상, 그리고 허리가 자주 불거지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본인은 한 번도 과거 수차례 감옥생활과 고문의 후유증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으나, 형의 건강이 나빠진 것은 그러한 후유증에다가 몸을 돌볼 사이도 없이 뛰어다니던 과다한 활동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형은 한 번도 언짢은 내색이나 아프다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어요. 2002년 조국방문 때 유연복 화백과 남도 여행길에 광주 민족미래연구소로 형을 찾아 갔을 때에도 형이 위장병 때문에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고 없어서 기다렸던 일이 기억나는군요. 가뜩이나 허약한 몸에 폐기종까지 겹쳐 악화일로를 걷던 건강, 만사 다 제쳐놓고 건강을 회복시키는데 전념하겠노라 다짐하시던 형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건만.

 

형은 스스로 아무리 괴롭고 힘들지라도 5월 영령들과 지난 12년의 망명생활과 헌신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청련’ ‘한겨레회원들을 생각하며 이겨나갈 것이라고 다짐 했건만, 폐 이식 수술을 성공리에 끝내놓고도 200762759세라는 한창 젊은 나이에 할 일 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였으니, 과거 군사정권 시절로부터 쌓인 분노와 여전히 암울하기만 한 민족의 현실 앞에서 하늘이 형에게 평안을 내리기 위함인가요, 아니면 먼저 가서 조국의 각박한 땅에 합수(거름)되기 위함이었나요. 남기고 가신 그 많은 일들은 어떻게든 이제 우리의 몫이라 여기지만, 쌓이고 쌓인 일들을 형 없이 우리가 어찌 다 감당하라고 이렇게 빨리 서둘러 먼저 가셨는지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합수 형, 이제 그 가난하고 힘겹던 똥가방일랑 훌훌 내려놓고 형이 평소 소원하던 영원한 그리움의 바다와 더불어 가슴 속 깊은 이야기보따리들을 흥겹게 풀어 놓으며 영원의 안식을 누리소서. 그 곳에서 평화롭게 계실 줄 믿고 있겠습니다. 그리운 합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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