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회 소식

제목-재미 한청련 원로 고 장광선 선생님(1945년 생) 추도사 - 오수경2019-08-29 11: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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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6일 재미 한청련 원로이신 장광선 선생(1945년 생)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이 추모의 글은 현재 나카섹 버지니아주 책임자로 있는 동포 2 오수경씨가 것입니다오수경씨는 전에 필라델피아에서 한인 청년 풍물패 소리모리, 한청련, 미교협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광주- 윤한봉- 한청련 역사와 정신이 2세들에게 연결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쁨과 감동을 느끼신 강완모 선생님께서 사업회에 메일로 전달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광선 선생님에 대한 헌사(조사)

나카섹(미교협, 워싱턴 D.C), 민족학교 (L.A), 하나센터(시카고) 한국과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견결한 활동을 펼치셨던 장광 선생님께서 2019 8 16일에 운명하셨다는 슬픈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우리는 유가족 여러분들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김정옥 사모님, 장혜란, 장시온 자녀분들, 장경단, 장맹단, 장광민 형제자매분들, 그리고 명의 손자분들께.

선배님, 선생님으로 불리셨던 장광 선생은 1946 전남 장흥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하셨습니다.

선배님께서 사람 중심의 운동에 헌신하신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2년에 걸친 이승만 독재 치하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승만은 1960년에 학생들이 주도하는 민중봉기에 의해 하야하였습니다. 새로운 헌법이 공표되고 선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1961 5월에 박정희 소장은 민주주의 정부를 전복하고 26 간의 군부독재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군부독재가 이어지던 1976년에 선배님은 미국 캔사스주로 이주하셨고, 후에 뉴저지에 정착하셔서 세탁소를 운영하셨습니다.

 

  선배님께서는 평생동안 해외 운동의 기반을 닦기 위해 수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예를 들어, 1980년대에 선배님께서는 5.18 상규명위원회(1980 5 18,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 독재 정권의 계엄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진행하였는데, 전두환은 1979년에 미군과 한국군을 이용한 쿠데타를 준비했었다.) 김대중 구명위원회를 위한 미국에서의 연대의 장을 마련하는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김대중 씨는 훗날 1997 남한의 대통령이 되어 남한에서 평화적 정권 이양의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씨는 1980년대에 정치범이었습니다. 선배님은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동포들을 조직하여 미국의 전두환 독재 정권 지원에 항의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호소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장 선배님은 남한의 정치적 망명자 윤한봉 선생을 만났습니다. 선배님은 해외 동포 사회에서 풀뿌리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윤한봉 선생의 노력이 필라델피아 지역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장 선배님께서는 회원들을 모집하 윤한봉 선생의 정치 교육과 동포 사회 관련 활동을 지원하는 상당한 도움을 주셨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동포 미래세대들이 자신들의 문화 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미국 사회에 참여하고 진보적인 운동에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1994 재미 한청련과 재미 한겨레 운동 연합 나카섹을 설립하기로 결정했을 , 선배님께서는 전략적 지도와 동포 지도자들을 발굴하기 위한 멘토 역할을 꾸준히 전개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선배님께서는 불의에 맞서 싸우는 법을 가르치셨고 누구나 자신의 역할을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배님께서는 한국의 문화 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가르치시면서도 민족주의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그는 낡은 사고 방식에 갇히지 말고 현재의 정세를 관찰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선배님께서는 필라델피아에서 반전 운동이 펼쳐질 당신께서 하셨던 것처럼, 타민족 형제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라고 장려하였습니다. 우리는 님의 본보기를 통해 타민족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법을 배웠습니다. 선배님께서 (지금 하나센터로 알려진) 시카고 마당집  건립을 돕기 위해 주변을 조직하여 10달러 지폐들을 모은 봉투를 건네며 상부상조 정신을 우리가 배웠듯이 말입니다. 선배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운동에 대한 열정을 갖도록 키워주신 것처럼 원예 작업 능력이 뛰어나 식물 재배를 좋아하셨습니다.


선배님과 운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선배님의 성찰에 대해 많이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을 클릭하여) 선배님의 에세이를 읽어보세요. https://krcla.org/en/history/yku2.


선배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한국의 민중 가요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노래는 5.18 광주 민중항쟁 직후에 만들어져 순식간에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상징곡이 되었습니다.


선배님!

우리는 계속 선배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겠습니다. 내가 깨어날 , 나는 뜨겁게 외칠 것이다. 계속 전진하자. 나를 따르라!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A Tribute to Kwang Sun Jang (1946 2019)


NAKASEC, Korean Resource Center, and HANA Center are profoundly sad to report that Kwang Sun Jang, a steadfast champion for democracy and peace in Korea and the U.S., transitioned on August 16, 2019.  


We extend our deepest condolences to his family: spouse Jung Ok Kim, children, Heran Jang and Sion Jang, and siblings, Kyung Dan Jang, Meang Dan Jang, and Kwang Min Jang, and three grandchildren.

 

  Mr. Jang, known to many as Jang 선배님 (sunbaenim) or 선생님 (sunsaengnim), was born in 1946 in Jangheung County, located in Jeolla Province.

In college, Jang 선배님 studied agriculture.

 

To understand why Jang 선배님 was so devoted to building a people-centered movement, it is critical to remember that he lived through 12 years of authoritarian rule under Syngman Rhee.


  In 1960, Rhee was overthrown by a student-led popular uprising. A new constitution and elections were held; however in May 1961, Major General Park Chung Hee overthrew the first democratic government, and ushered in 26 years of military-based dictatorial rule.

 

During this period is when Jang 선배님 migrated to the U.S. in 1976, starting in Kansas and eventually settling in New Jersey where he operated a dry-cleaning business.

 

And for the rest of his life, Jang선배님 played numerous roles to support movement building.

 

For example, in 1980, Jang 선배님 helped start solidarity chapters in the U.S. of the May 18th Truth Commission (on May 18, 1980, the people of Gwangju began mass demonstrations to protest martial law under dictator Chun Doo Hwan, who in 1979 used U.S. and South Korean troops to stage a coup in 1979) and the Kim Dae Jung Support Committee.

   

Kim Dae Jung would later become South Koreas President in 1997 marking the countrys first peaceful transfer of power to a democratically elected opponent. In the 1980s though, Kim was a political prisoner.

 

Jang 선배님 never gave up the hope of democracy and organized Korean Americans to advocate for peace and to call out the U.S. governments involvement with propping up a corrupt and dictatorial government.

   

Jang 선배님 met Yoon Han Bong, a political asylee from South Korea. Jang 선배님 recognized that Yoon 선생님s efforts to foster a grassroots organizing among Korean Americans needed to happen in the Philadelphia area. He lent considerable support in recruiting others and supporting political education and community engagement work.

 

Jang 선배님 believed that future generations of Korean Americans needed to proudly recognize their heritage and engage in American society and progressive movements too. When Young Koreans United and Korean Alliance for Peace and Justice decided to establish NAKASEC in 1994, Jang 선배님 continued to support by providing strategic guidance and mentoring emerging Korean American leaders.

 

For many of us, Jang 선배님 taught us to fight and that everyone can play a part. He taught us to be proud of our Korean heritage but not be nationalistic. He taught us to observe what's going around and not get stuck in old ways of thinking. He encouraged us to reach out and be in solidarity with others, as he did when organizing anti-war protests in Philadelphia. We learned from his example to give and ask others to give - like when he would mail envelopes stuffed with $10 bills from his network to help build up the Korean Resource Center or KRCC (what is now known as HANA Center). He had a green thumb and liked to grow plants, as much as he grew the spirit of movement building in others.

 

To learn more about Jang 선배님 and his reflections on what movements need to do, read his essay here: https://krcla.org/en/history/yku2.

 

His favorite Korean movement song was 임을 위한 행진곡 loosely translated as A March for the Beloved. This song quickly became the anthem to the South Korean democracy movement, written after the Gwangju Uprising.

 

Jang 선배님, we all continue to live in your light. As I wake up, I shout a hot cry. Go ahead and follow me!Rest in peace and power.

   

- written by Sookyung Oh, NAKASEC VA Director (formerly active with SoRi MoRi, Young Koreans United, and NAKASEC in Philadel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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