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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국제평화대행진 30주년 한겨레신문 기고 - 황광우 상임이사 2019-07-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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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 시민께 드리는 편지 / 황광우

등록 :2019-07-22 17:32수정 :2019-07-22 19:14

황광우
합수 윤한봉 기념 사업회 상임이사

 

 

당신들은 잊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워싱턴 디시에 도착하여 가방에 지고 간 서명 용지를 미국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1989년 7월27일이었습니다. 미국인 11만명으로부터 사인을 받은 서명 용지 뭉치였습니다. 이 서명 용지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었을까요? 젊은이들은 당시 한국에 있던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한국에서 철거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처럼 이후 미국의 전술 핵무기는 한국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이 서명 운동을 주도한 이는 윤한봉이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미국으로 망명한,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말입니다. 윤한봉과 그의 동료들은 “핵무기 철수”와 “평화협정 체결”을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미국인들로부터 서명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1989년 그때 한국인들은 미국의 핵무기 때문에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때문에 불안에 떨게 되었습니다. 30년 전 국제평화 대행진을 이끌었던 윤한봉은 지금 망월동 국립묘지에 누워 있습니다. 만일 그가 살아 있다면, 북한의 비핵화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까요?

 

미국과 북한 간의 적대관계로 인해 고통을 받아온 사람들은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당신들이 아님을 윤한봉은 먼저 말할 것입니다.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이 선언된 이래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의 주민과 남한의 국민임을 당신들은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북한의 인민군을 상대로 총구를 겨누어야 합니다. 수천년 동안 같은 민족으로 살아온 형제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는 것은 참기 힘든 비이성적인 처사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수십조원의 예산을 휴전선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소모적인 짓, 비생산적인 짓을 우리는 확대 반복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미국과 북한 간의 적대 관계 때문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인에게 묻습니다. 적대 관계가 먼저인가요, 핵무기가 먼저인가요? 적대가 먼저였습니다. 적대를 끝장내지 않고 적대의 결과물을 없앤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적대를 끝장내는 길은 당신들의 나라 미국의 결단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윤한봉의 뜻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 시민들에게 호소합니다. 지난 70여년 동안 진행되어온 북-미 간의 적대 관계에서 그 책임의 절반은 미국에도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베트남 전쟁을 종식하는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용감했습니다. 1968년 그때 ‘전쟁을 끝내라’고 외쳤던 미국의 젊은이들은 위대했습니다. 미국 시민들의 용기 있는 외침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국제 관계엔 힘의 논리만이 통하며, 협상은 쌍방의 힘이 대등할 때만 성립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미국과 북한은 대등하지 않습니다. 두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으로 본 경제력은 1000 대 1의 차이가 납니다. 힘의 비대칭이 이렇게 명확한 두 관계에서 진행되는 협상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나라는 어디일까요?평화를 염원하는 동양의 현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존중할 때 평화가 유지된다.” “이대사소”(以大事小)라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그날이 오길 바랍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미국이, 식량도 부족하고 기름도 없는 가난한 나라 북한 주민들을 도와줄 수는 없는 걸까요?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인은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것이 30년 전 국제평화대행진을 추진하던 윤한봉의 꿈이었습니다. 선생이 품었던 이 꿈이 우리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이 된다면, 불원간 꿈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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