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회 소식

제목<한겨레 신문 - 이길주 이사장(L.A 민족학교) 인터뷰 및 출판기념회 보도 기사>2019-11-22 14: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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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봉 선생 ‘더불어 살자’ 외침 새삼 되새겨지네요”

등록 :2019-11-21 18:48수정 :2019-11-21 19:11

 

[짬] LA민족학교 전 이사장 이길주씨
이길주 전 LA민족학교 이사장이 지난 19일 광주 합수윤한봉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윤한봉 선생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김용희 기자
이길주 전 LA민족학교 이사장이 지난 19일 광주 합수윤한봉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윤한봉 선생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김용희 기자
1983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문을 연 ‘LA민족학교’는 ‘바르게 살자, 뿌리를 알자, 굳세게 살자, 더불어 살자’라는 구호 아래 재미 동포들과 저소득 이민자, 유색인종 공동체 강화를 위해 설립됐다. 초창기에는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민족문화 보급에 앞장섰지만 점차 활동 영역을 넓혀 현재 전 세계 이민자들에게 봉사, 의료, 교육, 주택, 문화활동 등을 지원하는 복합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LA민족학교를 모태로 1984년 결성한 재미한국청년연합(한청련)은 미국 10개 지역과 캐나다, 호주, 유럽 등지에 지부를 세우며 재외 동포 활동의 구심점이 됐다. 1988년에는 ‘핵무기 철거요청 10만 명 서명 운동’을 시작, 이듬해 7월 11만 명의 서명을 미국 의회에 전달했고 1989년 7월에는 백두산에서 판문점까지 행진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을 주도했다.LA민족학교와 한청련의 활동 배경에는 ‘5·18 마지막 수배자’인 망명객 합수 윤한봉(1948∼2007) 선생이 있었다. 그는 동포사회에 흩어져 있던 민족 의식을 결집하고 광주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죽을 때까지 헌신했다.19일 합수윤한봉기념사업회가 광주에서 연 국제평화대행진 30주년 기념 ‘재미한청련 회고 3부작’ 출판기념회에서 이길주(74) 전 LA민족학교 이사장을 만나 윤한봉 선생과의 인연과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김용희 기자


광주 ‘재미한청련 회고’ 출판회 참석 “1983년 한인교회에서 첫 만남 회상” 윤한봉 제안으로 민족학교 설립 참여 “정세 강의 들으며 살맛 나는 나날”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한 합수의 정신” “지금도 그분 떠올리면 가슴 벅차”



합수윤한봉기념사업회가 지난 19일 연 ‘재미한청련 회고 3부작’ 출판기념회에서 참가자들이 ‘북·미 평화협정을 둘러싼 국제정세’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 김용희 기자
합수윤한봉기념사업회가 지난 19일 연 ‘재미한청련 회고 3부작’ 출판기념회에서 참가자들이 ‘북·미 평화협정을 둘러싼 국제정세’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 김용희 기자

“그는 참 소소한 사람이었어요. 항상 두손을 모으고 상반신을 앞으로 구부린 채 어색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가더라고요.”이길주 전 이사장은 윤한봉과의 첫 만남에 대해 어색한 분위기를 먼저 떠올렸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인 남편을 따라 1970년 엘에이로 건너간 이 이사장은 1982년 어느 일요일 한인 교회에서 윤 선생을 처음 만났다.

이 이사장은 “교회에 11대 서울시장을 지낸 김상돈 장로가 계셨는데 같이 지내고 있던 윤한봉 선생을 어느 날 교회로 데리고 오셨다. 나는 그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이니 자꾸 눈길이 갔다. 훗날 김 장로 집에서 윤 선생이 연 좌담회에 참석하며 추종자가 됐다”고 회상했다.


합수 윤한봉. <한겨레> 자료사진
합수 윤한봉. <한겨레> 자료사진

이 이사장은 윤한봉이 사람을 홀리는 언변을 지녔다고 했다. 찬 마룻바닥에 앉아 정세 분석을 듣고 있으면 2∼3시간이 금세 지나갔다고 기억했다. 윤한봉은 평소 깍듯하게 예절을 지켰지만 정치 논쟁에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청년들에게는 인상 깊었다.1983년 초 윤한봉은 이 이사장에게 엘에이 민족학교 초대 이사로 참여해줄 것을 제안했다. 당시 이 이사장은 고운 미모와 빼어난 노래 솜씨로 교회 내에서 ‘미녀 새’라는 별명이 있었다. “나는 순전히 노래만 하는 여자였어요.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죠. 그런데 윤한봉 선생은 절 눈여겨보고 있었나 봐요. 민족학교 이사를 맡으면서 정식으로 역사 강의와 정치 교육을 받았어요. 살맛 나는 나날이었어요.”6년 뒤 ‘미녀 새’는 민족학교 2대 이사장이 됐다. 한국 정부와 동포사회에서 학교를 반정부 단체로 낙인 찍어 버리자 초대 이사장인 최진환 박사와 윤한봉 등이 후선으로 물러난 것이다.“그때 한국영사관 직원 중에 서울대 후배들이 여럿 있었어요. 자주 만나서 차도 마시고 대화를 하며 소통을 했어요. 다행히 영사관 직원들이 학교나 정치에 대해서는 묻질 않았어요. 그렇게 20년 이상 민족학교 이사장을 했어요.”이 이사장은 2016년 이사장직을 내려놓았지만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이사장은 윤한봉 때문에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날 광주를 찾은 까닭도 윤 선생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윤 선생에 대한 추모사업을 성대하게 해야 하는데 여건상 그렇게 하질 못했어요. 이번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즉시 승낙을 했죠. 항상 그분만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올라요.”이 이사장은 “‘더불어 살자’고 강조하던 윤한봉 선생의 말씀이 더욱 와 닿는 시기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차별받고 있고 한국도 정치적인 문제로 국민이 갈라졌다고 들었다. 너무 쉽지만 실현하기는 힘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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